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본 적이 많다. 특히 작년에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한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은 참 재미있었다. 전시회의 타이틀이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였는데 전시회를 다 둘러보고는 왜 그런 타이틀을 붙였는지 이해하고 재미를 느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미켈란젤로와 같은 로마 시대의 미술가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나 성서와 같은 신들의 영역을 완벽한 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렸다. 그때를 바로크 시대라고 한다. 이후 귀족들을 그릴 때에도 신처럼 완벽하게 그려주었다. 비천한 평민 따위는 그림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바로크 후기로 가면 그림 속에 신이나 귀족들의 완벽한 세계가 아니라 비루한 인간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그림이 카라바조의 ‘도마뱀에 물린 소년’이다. 그림 속 소년은 훌륭하고 완벽한 표정이 아니라 놀라고 당황한 얼굴이다. 게다가 하급 계급답게 험상궂게 생겼다. 그때 설명에는 하인 정도였던 소년이 뭔가를 훔치려다가 도마뱀에 물린 순간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화가들이 완벽한 신이나 귀족의 고상한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비천하고 비루한 하급 인간의 인간적인 모습도 그리기 시작한 거다. 이 그림을 그린 카라바조는 젊은 때는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림으로써 명성을 날리고 돈도 많이 벌었는데 술과 도박에 빠지는 바람에 말년에는 돈을 다 날리고 가난하고 비루해졌다고 한다. 그의 노년기 자화상은 늙어 빠진 주름 가득한 노인이다.
그림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 더 나아가 태지원 작가( 유랑선생)가 쓴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은 그림 속에서 인생의 지혜를 낚아낸다. 예를 들면 19세기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인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대표작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보며 ‘인간은 신비하고도 위대한 자연의 뜻을 거스르기보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의 변화를 바라보며 기다려야 하는 존재 일지도 모른다 (p209)’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설명은 ‘삶에서 마주치는 재해나 인생의 고통은 명확한 원인을 찾기 어려운 것이 대다수다. 앞으로의 예측이 어려운 존재다.... 내가 손댈 수 없는 것과 있는 것을 구분하여 손댈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 작고 사소한 일에 집중한다면 하루쯤 더 견딜 힘이 생긴다’로 이어진다. 태지원 작가가 쓴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에는 이렇게 그림을 통해 얻은 인생의 지혜를 전해 주는 책이다. 흔한 자기 계발서와는 다르다.
나는 특히 5장에 나오는 글 ‘내 인생의 장르를 살짝 바꾸는 방법’에서 던져주는 지혜가 좋았다. 작가는 17세기의 네덜란드 화가였던 프란스 할스의 ‘웃고 있는 기사’를 설명해 주며 사실 인물 속 귀족은 웃고 있는 게 아니라 수염만 양쪽이 올라간 거라고 말한다. 입은 전혀 웃고 있지 않다. 단지 웃는 수염을 그림으로서 장르를 코미디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날 화나게 만든 상대를 향해 에라이, 이 웃기는 놈아!라고 생각하며 적당히 흉을 본다... 이런 자기 합리화가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몹시 유용하다. 적당히 뻔뻔해지면 비극이 사라진다. 삶의 장르가 살짝 바뀐다’라고 얘기한다.
얼마나 현실적인 지혜인가. 이 책에는 이런 부류의 반전적인 지혜가 펼쳐져 있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대목들이다.
브런치에서 유랑 선생으로 활동하고 있는 태지원 작가는 나와 온라인 친구이다. 고등학교 교사인 태지원 작가는 과중한 업무 중에도 여러 권의 청소년 교양서를 쓰고 있고 (현재 진행형) 요즘은 강의도 나가고 있다. 아이도 기르고 있어서 나는 그 많은 일들을 다 어떻게 해내고 있는지 놀랄 뿐이다.
그 와중에도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잃지 않고 다정하게 글들로 풀어내고 있다. 2021년 발간한 이 책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은 제8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이다.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대해 경쟁적이고 승리 지향적 관점이 아니라 반전적이고 현실적인 새로운 지혜를 담고 있다. 그래서 대상을 받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