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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Oct 29. 2024

텀블벅 펀딩을 시작합니다!

브런치 스토리에서 2024년 1월 6일 연재를 시작한 ‘중년 여성의 품위 있는 알바 생활’이 텀블벅 펀딩을 시작합니다. 이 에세이는 원래 10월 말 11월 초 발간이 예정되어 10월 둘째 주까지 표지 디자인을 비롯해 내지 편집 그리고 추천사까지 모두 준비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한국 문학계의 경사로 발행이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어려움을 겪게 된 출판사의 사정으로 텀블벅 펀딩을 먼저 진행합니다.     

 

이 글은 브런치 스토리 연재 34만 조회수, 다음 메인 직장인 ‘베스트 글 1위’를 했으며, 밀리의 서재 ‘밀리 로드’ 연재 시 3월 월간 탑 10 1위를 8일간 하고 순위 안에 한 달간 머물렀습니다. 브런치와 밀리로드에서도 약 200개의 댓글이 달렸었지요.      


‘우연히 한 회를 읽고 전 회차 완독했습니다. 생생한 등장인물들과 그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어요.’


‘글이 잘 읽히고 이런 일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흥미로운 주제라서 너무 좋았어요!!’ 등등.     


 


제 가슴이 벌렁벌렁했던 내용이 많았어요.      


브런치 스토리에 연재된 원문과는 달리 발행될 책에서는 저의 20대 회사 생활 이야기가 대폭 들어가 있습니다. 공황 장애가 올 정도로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았는데 그걸 또한 극복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어렵고 힘든 시절을 보내는 20대들에게 조금이나마 힘과 지혜를 보태주기 위해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와우 라이프’ 출판사 대표님과 추천사를 써주시는 바람에 수정본을 먼저 읽은 소설 ‘세 여자’의 조선희 작가님은 원본보다 훨씬 더 재밌다고 칭찬을 하셨어요. 회사에서 왕따 당해서 죽을 만큼 힘들었던 남의 20대 얘기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휴...     



‘중년 여성의 품위 있는 알바 생활’ 수정본 1회 일부    

 

50대 여자. 아이들은 다 커서 집안에 할 일이 없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어렵지도 않다. 매일 돈을 써서 놀러 다닐 수도 없고 함께 놀러 갈 친구들도 마땅치 않다.     


40대 중반 나는 나름 잘 나가는 회사를 아이를 키우기 위해 그만두었다. 10여 년 전 아이가 둘이 있고 너무 어려 계속 일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동안 내가 버는 월급은 거의 고스란히 베이버 시터 비용으로 들어갔다. 베이비 시터들은 사정이 자주 생겼고 새로운 베이비 시터를 구하면 아이들이 울며 출근하는 내 손을 놓지 않았고 계속 아팠다. 또 믿을 수 있는 베이비시터를 만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 둘만 키우자 우울해졌다. 나는 회사에서 일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여자였다. 20년 가까이 그렇게 살아오기도 했다. 집안에서 아이만 보자 사회에서 탈락했다는 패배감이 들며 우울해졌다. 사회적으로 아무런 성취감을 느낄 수 없는 그런 상태. 경력 단절 여성이 느끼는 패배감과 우울감 말이다. 땅 속으로 파고들 것만 같았다. 30여 년 전, 대학 4학년 때도 이랬다. 깊은 우울과 패배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    

 

대학교 졸업을 1년 앞두고 나는 언론사 진출을 준비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신문사를 비롯한 언론사는 대학생들의 선망의 직장이었고 우리는 ‘언론 고시’를 준비해야 했다. 스터디에 참여해서 거의 1년을 준비했고 줄줄이 떨어졌다. 7명이 시작한 언론사 스터디는 하나씩 성공해 빠져 나갔고 마지막으로 남자 선배 하나와 내가 남았다.      


그 해 마지막 언론사는 우리 모두가 선망하던 신문사였고 남자 선배와 나는 필기시험을 함께 보러 갔다. 약 한 달 후 나는 친구를 통해 그 선배가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른 멤버들이 하나씩 합격할 때마다 조금씩 절망하던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인생이 패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이 에일 듯 춥던 겨울밤, 한강 다리를 찾아갔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던 한강 다리를 걸어 중간에 서서 다리 아래를 쳐다보자 검은 물이 무섭게 흐르고 있었다. 저 속에 몸을 던질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그냥 돌아서 나왔다.     


학교 다닐 때 서서히 활성화된 인터넷으로 대학교 취업 게시판에 들어가 정보를 확인하고 대기업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 떨어졌다. 남자 선배들은 여러 개 회사를 지원해 합격 통지를 받은 후 하나를 골라 가던 시절이었다. 나는 여자여서 서류 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게시판에 올라온 회사 중 듣도 보도 못한 영문 잡지사에 지원했다.     


면접을 보러 가니 사장은 무조건 합격시키는 분위기였다. 당연하다. 중도에 포기했지만 미국 어학연수까지 다녀와서 자기 회사에 지원한 사람은 나 하나였으니 말이다. 나는 영어로 듣고 유창하게 말하는 건 못한다고 밝혔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사장까지 포함해 4명의 직원이 있는 회사였다. 편집장을 겸한 사장과 취재 기자 한 명, 사장의 친척인 경리와 그리고 나였다. 나에게는 외국 매체 기사 스크랩과 인터뷰 일정 조정을 시켰다. 그리고 사장이 인터뷰 나갈 때 카메라를 쥐어 주며 말했다. 사진을 찍으라고. 주로 외국 대사를 만나는 인터뷰 자리에 가서는 나를 사진 기자라고 소개했다.     


사장이 시키는 일들은 전통 언론이 하는 일이 아니었고 구질구질했다. 나는 취재를 뺀 온갖 잡스러운 일들을 다 했고 월급은 작았다. 용산에 있었던 사무실 옆 식당에서 나는 누릿한 육개장 냄새를 맡으며 매일 나는 우울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3년을 버텼다. 이곳을 그만두면 갈 곳이 없는 우울감에 다시 빠질 것을 알았고 적지만 버는 돈이 좋았다. 돈을 버는 일이 내게 피를 돌게 했다.     



50대인 나도 적은 돈이나마 벌고 싶었다. 돈을 벌며 패배감과 우울감을 벗어나고 싶었다. 아직 뭔가를 할 체력은 충분하고 노후 준비도 생각났다. 그래서 생각하고 생각하다 알바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핸드폰에서 알바를 중개하는 앱을 다운로드하여 들여다보니 첫 화면에 대형 물류 센터 알바 여러 개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다른 건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50대 여자로 회원 가입해서 그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알바는 힘들다고 소문이 나 있는 자리였다. 나는 망설였다.          


요양 보호사 자격증이 없어 돌봄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식당 알바도 여러 개 보였지만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여 년을 집안일을 했는데 또 비슷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려 몇몇 콜센터 구인 광고를 찾아냈다. 월급은 나쁘지 않았지만 매일 출근을 해야 하고 하루 종일 전화 응대를 해야 한다. 긴가민가했다.      


그러다가 지역 기반 물물 판매 앱에서도 알바 자리가 올라온다는 생각이 났다. 얼른 들어가 검색어에 ‘알바’ 쳐 넣으니 진짜 몇 개가 떴다. 대부분이 작은 공장 포장 알바였다. 왜냐하면 나는 경기도 외곽의 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산다면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루 8시간 근무에 일당 10만 원이라는 돈도 나쁘지 않았다. 일 소개에 어렵지 않은 포장일이라는 내용이 있어서 알아보겠다는 심정으로 공장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이는 공장이 아니라 인력 알선 업체였다.     


20대 영문 잡지사에서 3년 차가 되던 날,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같이 졸업한 대학과 동기들은 이미 직장에 안착해 연락을 해 왔다. 나는 열등감에 연락을 받지 않았다. 대학교 취업 게시판도 자존심 때문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신문에 나는 채용 공고를 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종이 신문에 기업 채용 공고가 많이 올라왔다)     


한국 대기업은 포기하고 외국계 회사만 지원했다. 당시 외국계 회사들은 한국 회사들보다 연봉도 높고 근무 환경도 훨씬 좋았으며 남녀 차별을 하지 않아 여자 동기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영어도 잘 못하고 경력이 좋지 않아 마음을 졸였다.     

 

작은 미국계 회사에 지원을 했는데 다행히 면접을 보라는 연락이 왔다. 특급 호텔 비즈니스 룸에 면접을 보러 가니 대기실에 10여 명이 있었다. 정장을 빼 입은 그들은 유창하게 영어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움츠러들었다.     


나도 준비해 온 자기소개를 영어로 중얼거리며 연습했다. 그때 옆에서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뭘 그렇게 열심히 해요!’ 하며 설렁거리고 있었다. ‘저런 미친놈!’하고 속으로 욕했다. 그가 나중에 회사에서 보는 Y였다....



소설 ‘세 여자’의 작가이시자 씨네 21 편집장, 서울 영상원 원장, 서울 문화재단 이사장을 하셨던 조선희 작가님은 추천사를 이렇게 써주셨습니다.      



‘추천사’     

20-30대에 외국계 회사 마케팅 일을 했던 여성이 아이 키우느라 전업주부로 40대를 보내고 50대 ‘경단녀’가 되어 ‘알바’의 세계로 나선다. 이곳은 또 하나의 신세계! 외제차 모는 언니, 집에서 놀면 뭐 하냐는 건물주 언니, 못된 왕언니, 천사 같은 반장 언니, 드물게 남자, 빌라에 방 얻어 합숙하는 불법 이민 노동자. 그리고 매일 아침 전화 한 통으로 이들을 빈자리에 꽂아주는 인력알선업체들.     


우울한 얘기도 경쾌하게, 찝찝한 얘기도 솔직하게, 그래서 재미나다. 모처럼 인류학 보고서의 풍부한 디테일을 가진 에세이를 읽었다.      


조선희(작가, 전 서울문화재단 대표)     


                                

어제 인기 프로젝트 1위가 카카오 엔터의 ‘이 세계 아이돌’입니다. 글쎄 73억을 넘게 모금했어요. 텀블벅이 이렇게 돈이 많이 모이는 플랫폼입니까?     



 2위는 ‘문익환 30주기 기념 문집’입니다. 목표액의 9556%를 달성했어요. 쉽게 가는 프로젝트도 있군요. 섹션 중에 ‘독립 출판’ 부문도 있고 목표 금액은 50만 원부터 시작합니다. 해 볼 만하겠더라고요. 밑으로 내려가면 간간히 책 출판이 보이는데 금액이 그다지 크진 않아요.      


‘중년 여성의 품위 있는 알바생활’은 표지 디자인은 물론 내지 편집까지 끝난 책의 발행을 이대로 미루어 둘 수는 없어 텀블벅 펀딩을 먼저 시작합니다.     


 https://link.tumblbug.com/gfCBZWXO4Nb


이 책은 12월 16일 출간됩니다. 펀딩을 하시면 금액에 따라 책을 보내 드립니다. 텀블벅으로 미리 책을 예약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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