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참 언니와 아무런 일도 없었다. 싸운 일이 없는 건 물론 심지어 대화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을 합쳐 일했다. 그런데 일부러 내 이름을 출근 명부에서 누락시키다니.
세상에는 이해 못 할 일들이 있다. 남들은 대부분 나에게 무관심하고 일부는 무조건 좋아하고 일부는 무조건 싫어한다. 고참 언니는 후자였나 보다.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다음 주 속옷 공장에 다시 갔을 때 그 언니는 없었다. 그 후로도 쭉 그 공장에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김상무의 인력 배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더운 7 월초가 끝나자 곧 장마가 시작되었다. 김상무는 장마철에 의류 포장 공장들은 대부분 일이 없다고 단체 문자를 날렸다. 다른 언니들도 그렇게 얘기를 했다.
그런데 나는 그게 답답했다. 이미 내 몸은 일주일에 이틀 막노동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육체노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이런!!!
하루 종일 비가 주룩주룩 혹은 퍼붓는 날씨가 시작되었고 나는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게 우울했다. 원래 우울을 잘 느끼는 성격이라 육체노동을 하면서 정말 좋아졌는데 또 우울해지기 싫었다.
서둘러 다른 알바 자리를 찾아보았다. (그때 유명한 물류 센터 알바도 잠시 하게 되었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하겠다)
이리저리 찾은 끝에 인쇄 공장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이젠 인쇄 공장 알바 따위야 껌 씹는 일이었고 김상무보다 일당도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연락을 한 곳은 인력 알선 업체였다.
먼저 묻는 게 ‘자차냐?’였다. 그렇다고 하니까 바로 내일 출근해 달라고 말했다. 알바 중개 앱에는 20명이 지원했다고 나와 있었다. 인력 알선 업체는 지원서에 있는 내 알바 경력을 보았을 것이다.
다음날 가서 보니 큰 인쇄 공장이었다. 건물도 시설도 훌륭했다. 건물 주위로는 자동차들로 빼곡했다. 역시나 일은 아이돌 앨범 인쇄와 조립 포장이었다. 우리나라 인쇄 업계는 이제 아이돌 산업이 먹여 살리는 것 같다. 인쇄지는 한글은 물론 영어, 일본어, 한자로도 찍혀 있었다.
나는 인쇄 기계 옆에 인력 업체 다른 알바와 함께 배정을 받았다. 인쇄 기계를 돌리는 정직원은 60대 언니로 단단한 프로였다. 우리는 정직원을 도와 인쇄물을 확인하고 노끈 기계에 넣어 묶은 후 팔렛에 쌓는 일을 했다.
나는 그곳이 처음이라 모든 프로세스와 시설물들이 낯설었지만 다른 알바는 몇 번 나와 익숙한 모양이었다. 처음 10분간은 언제나처럼 헤맸다. 인쇄 기계에서 나오는 시디 인쇄물을 받는 것도, 노끈 기계에 넣는 것도, 팔렛에 순서대로 쌓는 것도.
정직원 언니는 ‘처음 와서 그렇지!’하며 천천히 하라고 일러 주었다. 물론 나는 이미 알바 경력이 10 개월이 넘은 차라 금방 익숙해질 자신이 있었다. 역시 금방 익숙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같이 일하던 알바 언니였다. 정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인쇄물을 잡는 손 위치가 틀렸다느니, 팔렛에 물건을 쌓는 순서가 틀렸다느니, 팔렛에 물건 쌓을 때 왼쪽으로 돌지 말고 오른쪽으로 돌라느니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처음 본 나에게 초등학생 야단치듯 야단을 쳤다. 그리곤 정직원 언니가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었다. 왜 친절하게 배려해서 이야기하지 못하고 못돼게 구는가? 많은 언니들이 배려해서 말하는데...
전에 같았으면 주눅이 들고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못 들은 척했다. 내 방식대로 했지만 정직원 언니는 잘한다고 칭찬해 주었다. 이 언니는 그게 화가 났나 보다. 못된 언니였다. (이하 못된 언니)
이야기가 넘쳐 원래 예상했던 20화를 넘겨 6화 정도 추가될 예정입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