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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Feb 25. 2024

16화. 못된 언니 2

물론 못된 언니는 일을 잘했다. 벌써 몇 번이나 왔기 때문에 익숙한 탓이 컸다. 퇴근 무렵이 되어 정직원 언니가 어제 왔던 알바 언니는 오늘 왜 안 왔냐고 물었고 못된 언니는 집안에 일이 있어서 못 왔다고 대답했다. 거기까진 오케이.     


정직원은 내게 다음날도 올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보통 이런 업체들은 알바들이 매일 나와 주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일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매일 일하지 않는 나는 불리한 입장이었다.     


원래는 일을 연속으로 하지 않는데 내 원칙을 어기고 다음날 오기로 했다. 여기는 김상무 구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날 출근하자 못된 언니는 물론이고 집안에 일이 있는 언니도 출근해 있었다. 


그날도 나는 못된 언니와 함께 시디 박스 포장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여기는 어제보다 프로세스가 더 복잡했다. 역시 처음에 조금 헤맸다.      


예를 들면 시디 박스를 박스 안에 넣는 방법이라든지 포장지 접착제를 버리는 쓰레기통을 찾는 거라든지. 


반장은 주요한 일만 가르치고 세세한 것까지는 가르치지 않았다. 반장이 멀리 가버리자 옆에서 일하던 못된 언니가 또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쓰레기 통을 자기 앞에 가져다 놓았으면서 내가 제대로 쓰레기를 안 버린다는 둥, 새로운 시디는 오른쪽 것 말고 왼쪽 것을 가져오라는 둥. 남들이 듣지 않게 앙칼지게 속삭였다.   

  

‘이런 것도 못해요!!’     


어쩌라고! 나도 합리적으로 지시하면 잘 따르는 사람이다. 내가 얼마나 일을 잘하고 의류 포장 공장 반장들한테 인정받은 능력 잔데! 기가 막혔다. 옆에서 일하던 순한 얼굴의 언니가 나를 불쌍하게 쳐다봤다.  

   

점심시간이 되자 알바들끼리 근처 식당으로 가게 되었다. 장마 비가 휘몰아쳐 다들 우산을 쓰고 가는데 못된 언니가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다. 인쇄 기계 옆에서 일하던 집안일 있던 언니가 못된 언니에게 우산을 씌어 주었다.    


 


그런데 못된 언니 비 안 맞게 하느라 집안일 언니는 비를 다 맞고 갔다. ‘왜 저러지?’      


식당에 가서도 못된 언니는 테이블에 거만하게 앉았다. 대신 집안일 언니가 식판에 밥과 반찬을 담아 오더니 못된 언니 앞에 놓았다. 그렇다! 못된 언니는 권력자였고 집안일 언니는 시녀였다.     


밥을 함께 먹는데 못된 언니는 다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어휴! 내가 진짜 얼마 (꽤 센 일당) 받느라고 개고생 한다’     


그러자 함께 밥을 먹던 다른 언니들이 입을 다물고 못된 언니의 눈치를 봤다. 그때 나는 대강 눈치를 챘다. 여기는 알바마다 일당이 다르구나. 그러나 나는 광고를 통해 채용되어 이미 그 금액이 통장에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글쎄 말이에요. 나도 얼마 (꽤 센 같은 액수) 받느라고 힘든데...’   

  

못된 언니가 나를 노려봤고 다른 언니들은 기가 죽었다. 공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녀 언니가 못된 언니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언니 고마워요! 덕분에 오늘 출근했네.’     



그렇다! 못된 언니는 인력 알선 업체에게 말을 옮기는 사람이었다. 만일 어제 인쇄 기계 정직원이 다음 날도 올 거냐고 묻지 않았다면 나도 잘렸을 것이다. 그걸 물었기 때문에 인력 알선 업체에서 출근하라고 연락한 거다.     


오후에 포장장에 들어가서 일에 익숙해진 나는 못된 언니 못지않게 일을 잘했다. 끝날 무렵이 되자 반장이 내게 다음날도 출근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원칙대로 안 된다고 대답했다.   

   

이후 그 인력 알선 업체에서는 다시 연락이 없었다.           


* 이 글에는 시간의 흐름상 약간의 각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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