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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걸 좋다고 말해야 하는 사람

주접의 역사

by 청설모

친구와 고베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애초에 오사카 여행을 계획했던 먹짱 친구와 나는 고베규(소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져, 일부러 고베 당일치기 동선을 추가했다. 입에 넣자마자 녹아 없어지는 고베규를 먹고 크게 감동받은 우리는 연세가 지긋한 사장님 앞에서 연신 물개 박수를 쳤다.

"저희가 이거 먹으려고 한국에서 왔나 봐요!"


우연히 한국 젊은이들의 주접을 듣게 된 옆자리 노부부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사장님은 쑥스러워하며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해 주셨다. 우리가 다 먹고 자리를 뜰 때까지, 사장님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는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꼭 찬사의 말을 건네곤 했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한 맛이라고. 내가 여기 살지 않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여행지에서만이 아니라, 언제든지 마음에 쏙 드는 게 생기면 표현해야만 했다. 말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리뷰나 후기로라도 꼭 흔적을 남겼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해야만 속이 풀리는(?) 성격이어서 본의 아니게 동행인을 부끄럽게 만든 적도 있다.


직장 근처에는 밀크티가 맛있는 곳이 있다. 몇 번 사 먹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사장님에게 여기 밀크티가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다고 눈앞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때부터 사장님은 내가 그곳에 방문할 때마다 갑자기 밀크티 소믈리에가 되셨다. "이번에 레시피를 바꿔봤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어요..." "뫄뫄 티백 단가가 올라서 이제는 뫄뫄를 쓰기 시작했어요" 따위의 말들을 건네며 그다음에 이어질 나의 평가를 기다리셨다. 옆에서 지켜보던 동행인은 너 때문에 사장님이 우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고 부끄러워했다.


좋아하는 걸 큰 소리로 말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마케터가 되면 정말 좋다. 더군다나 자신이 맡은 브랜드가 본인의 가치관에 맞는다면 훨훨 날아다닌다. 내 경우가 그랬다. 나는 이곳에 취직하기 훨씬 전부터 후원자로서 먼저 이 기관을 접했다. 후원자였을 때도 주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이곳에서 마케터로 마음껏 자랑(?)할 수 있으니 더 좋다.


처음에는 어린이들을 돕는 일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와 함께하는 동역자(후원자)들이 좋아진다. 그래서 옛날부터 '언젠가는 우리 후원자들을 자랑하는 캠페인을 꼭 하겠다' 마음을 갖고 있었다. 세상은 개판이고 곳곳에서는 절망이 피어나는데, 이 사람들 때문에 인류애가 되살아난다고 꼭 얘기해주고 싶었다.

이걸 만든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작년에 후원자들을 마음껏 자랑하는 캠페인을 하고야 말았다. 후원 단체의 기본 공식인 불쌍한 어린이나 결핍되고 가여운 모습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신념을 갖고 세상을 바꿔가는 후원자들의 면면이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되었다.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생각보다 결과가 잘 나왔고 목표를 넘는 수치를 달성했다.


자신이 믿고, 좋아하는 걸 말할 때 나타나는 '진심'은 힘이 세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우리 후원자들의 진심에 설득이 됐을 것이라 생각한다.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감정일지라도, 좋은 걸 좋다고 말하다 보면 어느새 주변도 함께 동화된다. 그렇게 삶이 아주 조금 풍성해진다. 러니 마음껏 주접을 떨어도 된다. 당신의 거움은 주변 사람도 즐겁게 만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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