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한 나만의 공간
서울 생활, 햇수로 6년 차.
KTX를 타고 건너오며 바라본 한강의 반짝임이 주던 설렘은 서울역 정문 앞 서울스퀘어를 마주하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곳에서 이러고 있나'싶은 짜증으로 변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일도 위치도 자격도 없는 내가 다시 그것들을 찾기 위해서 혹은 내가 바라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돌아와야 할 곳도 이곳, 서울이다.
다행히 나에겐 월세 걱정 없이 누울 방이 있고, 그 안에 나를 채우고 밀어줄 것이라 생각되는 책이 한가득이고, 여전히 봐야 할 것들이 무수한 넷플릭스를 즐길 수 있는 TV와 모니터도 있으니까.
이런 내 방은 엄마의 청춘이고, 눈물이며 회한이다. 농사를 짓거나 도시에 나가 공부를 하거나 무얼 하건 아들들에겐 십 수억의 땅이 주어졌지만, 20대 청춘을 농사일에 받친 딸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 어렸고 잘 모르던 엄마와 자매들은 아들에게만 재산을 주는 부모에게 자신의 몫을 주장해보지도 못했고, 시간이 흘러 어려운 형편에 땅을 조금이나마 갖고 싶었던 엄마에게 집안의 장남은 몇십 년 전 그땐 왜 가만있다가 지금 와서 달라느냐는 식의 말을 했다.
결국 외할머니 몫으로 남아있던 땅 하나, 돌아가신 후 농사일을 하는 아들과 딸 셋이 나누기로 했으나, 엄마에게 돌아온 몫은 겨우 1/8이었다. 그렇게 받은 돈이 내 전세자금이 되었고, 난 그걸 6년의 서울 생활 동안 깔고 누워있다. 엄마의 청춘과 눈물과 회한을.
하지만 이 덕분에 좁고 작은 집이라도, 월세 걱정 없이 그만큼 나는 더 쓰고 누리며 살고 있다. 누군가는 몇 채를 갖고 투기하고 투자하는 시대에, 그래서 누군가는 억대의 빚을 내어 집을 가져야 하는 시대에, 누군가는 지옥고에서 여름에는 더위와 겨울에는 추위와 맞서야 하는 시대에 그나마 내겐 엄마의 눈물로 지은, 오후가 되면 햇살이 진하게 들어오는 서향의 집이 있다.
엄마의 집에 비하면 방한칸보다 조금 큰 공간이지만, 없을 것 없는, 그래서 이런저런 것들로 너무 가득한 조그만 나의 공간. 따뜻한 엄마의 밥과 강아지의 재롱과 아빠의 챙김이 가득한 집을 떠나 오롯이 나 혼자만의 집으로 오는 길. 설렘도 사라진 지 오래라고 했지만, 이젠 그만큼 서울 이곳에 편안함과 익숙함이 더 크게 자리한다.
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앞으로 내가 걸을 하루하루가 여전히 한 치 앞도 안 보이지만 그냥 하루하루를 신나게 열심히 살아보려 다짐한다. 오늘도 그런 하루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