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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Dec 24. 2023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쓰기 23.

영웅서사로 1막분석3

이번 회차에서는 다양한 작품을 영웅서사로 분석해 보고, 공부삼아 각 포인트에 엣지를 주는 방법을 시전해 보겠다. 

굳이 영웅서사로 스토리를 짜지 않아도, 여러번 수정하면서 스토리를 업그레이드하면 자연스레 영웅서사의 구조를 갖게 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럴 바에는 아예 첨부터 영웅서사로 스토리를 짜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얘기도 했다. 


그런데 보통 전자의 경우는 영웅서사로 분석해 낼 수는 있어도, 각 포인트가 엣지 있게 들어가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원작자의 의도일 수도 있다). 때문에 동일한 스토리를 첨부터 영웅서사로 짠다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고찰해 보겠다. 


그리고 시작에 앞서 이번 회차의 소개되는 작품을 쓴 작가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야겠다. 


"작가님께서 쓰신 작품은 매우 훌륭한 작품입니다. 나는 작가님의 작품을 흠집을 내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망생이들을 위한 공부 차원에서 이런 분석을 하는 것이니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 드립니다." 

드라마 포스터


<비방 : Vivant>


일드 <한자와 나오끼>의 주인공 사카이 마코토가 주연한 어드벤처 물이다. 비방(vivant)는 생존자라는 뜻이 있는데, 아마 중앙아시아 사막에서 음모에 휘말린 한 일본인의 생존기라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이 드라마를 소개하는 이유는 정신적 스승을 독특하게 활용하고 있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보통세상 : 우리나라에서 삼성 쯤 되는, 엘리트들이 다니는 대기업에 직원 노기(사카이 마코토)가 다니고 있다. 그곳에서 중앙아시아 발카(가상의 나라)라는 곳에 있는 사업체에 원래 액수 10배의 금액을 잘못 송금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노기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카로 날아간다. 


근데 잘 생각하지 않으면, 잘못된 송금액인 차액 90프로를 찾아오라는 미션이 모험의 소명으로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직원이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소명을 받고 자시고 할 것 없다. 때문에 노기는 바로 발카로 날아간다. 


그곳에서 노기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돈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험의 소명 :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친구인 CIA 요원의 도움을 받는 것. 


소명의 거부 : 노기는 고민한다. 단순한 송금 실수 건을 조사해 줄까 하고.  


정신적 스승 : 이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떠돌아 다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경우, 혼잣말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거나 해야 하지만, 후자는 사막이라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자인 혼잣말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혼잣말이 잦으면 드라마의 텐션이 사라지고, 설명적인 드라마가 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사카이 마코토의 1인 2역으로 나약한 자아를 대변하는 노기와 강한 자아를 대변하는 가상의 노기가 등장해서 고민이나 갈등적 상황을 해결한다. 이런 아이디어는 단독씬으로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혼자 고민하는 장면보다 훨씬 텐션이 있는 장면을 쓸 수 있다. 문제는 한 장면에서 1인 2역으로 보이는 장면이 어색할 수 있다는 것인데, 실제 드라마를 보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연기도 잘하고 연출도 잘 했다. 


이 드라마에서는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는 강한 자아의 노기가 바로 정신적 스승이다. 


강한 노기가 고민하는 약한 노기에게 CIA 요원에게 연락을 하라고 다그친다. 


첫관문의 돌파 : 노기는 CIA 요원이 알려준 대로 세돌이라고 하는 도시로 모험을 떠나는데, 이때부터 고난이 시작된다. 가는 길에 사기를 당해 사막에 홀로 버려지고... 그곳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나, 이번에는 폭발사고의 주범으로 오인을 받아 쫓기는 신세가 된다. 


if....


이 스토리를 구성할 때 영웅서사로 했다면, 모험의 소명의 부분에서 CIA 요원의 도움을 받는데서 강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표현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정신적 스승인 강한 자아가 그 요원한테 부탁을 하라고 하자, 바쁜데 그런 일을 해주겠어? 하는 정도의 거부 같지 않은 거부를 한다. 


하지만 소명의 거부가 강력한 반대급부 때문이라면 어땠을까? 


"그 요원은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대가를 요구할 거야. 우리 회사의 기밀 하나를 달라는 식으로."

"그건 나중 문제고. 지금은 돈의 행방을 찾아야 하잖아!"


이런 식으로 설정을 하면, 이야기가 더 힘을 받았을 것이다. 아직 끝까지 보지 않았는데, 후반부에 이야기가 무너진다는 정보가 있다. 만약 스토리가 무너질 때 이때 만들어 놓은 설정을 쓰면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드라마 포스터



<소년 시대>


충청도를 배경으로 한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매력적인 부여의 한 고등학교를 바탕으로 벌어지는 가짜 일진 스토리. 


보통세상 : 허구헌날 얻어터지는 찌질이 장병태(임시완)은 맞지 않고 학교를 다니는 것이 소원이다. 그런 그가 부여로 이사와 전학을 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모험의 소명 : 새로운 고등학교에 가서 매맞는 생활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소명의 거부 :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다. 


정신적 스승 : 아버지가 맞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경찰차까지 태워서 학교에 보낸다. 


첫관문 돌파 : 전학온 교실에서 쎈 놈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에 학생들은 그가 아산 백호라는 가공할만한 싸움 실력자라고 오해를 한다. 


 

if...


<소년시대> 역시 모험의 소명과 거부가 엣지 있게 표현되지 않았다. 


워낙에 찌질이라 그 어느 학교에 가도 두렵기는 할 것이겠지만, 소명을 더 강력하게 주었으면 어땠을까 한다. 가령, 장병태를 받아주는 학교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 받아준다고 나온 학교가 하필이면 학교 폭력으로 맹위를 떨치는 최악의 학교인 것이다. 게다가 이 학교의 악명은 병태가 부여로 오기 전 온양부터 들어온 데라면?


아마도 소명의 거부가 더 강력하게 일어났을 것이다. 지금 드라마처럼 평상에 앉아서 대충 말로 때우지 않고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학교에 안 가겠다고 생난리 부르스를 추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드라마가 훨씬 더 임팩트가 있었을 것이다. 


정신적 스승인 아버지도 아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설득했을 것이다. 내가 너 절대로 맞지 않게 해줄게. 아버지를 믿어다오.


그리고 첫관문 돌파... 


비오는 날 경찰차를 타고 첫 등교를 하는 것보다는, 월요일 아침에 전교생이 조회를 할 때 경찰차를 타고 오는 게 더 첫관문 돌파 같았을 것이다. 어차피 설정이니까, 경찰차에서 내릴 때 얼굴에 반창고 같은 거 붙이고, 수갑까지 차고 내렸으면 어땠을까? 순경이 사람들 들으라는 듯... (수갑을 풀어주며) 너 여기서도 말썽 피우면, 그땐 나도 더 이상 너를 보호해줄 수 없어. 알아?


이렇게 첫관문을 돌파하면, 어땠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드라마 포스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대본도 좋고, 연출도 좋은 웰메이드 드라마이다. 


대개의 의학 드라마가 의사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반해서 이 드라마는 정다은(박보영)이라는 간호사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따라서 의학 케이스와 그에 대한 치료로 스토리가 전개되기 보다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친화적인 스토리로 이어진다. 


정신병 환자들은 육체적 치료가 아닌, 마음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임을 볼 때 매우 영리한 선택이다(원작 웹툰이 그렇게 그려져 있는 것 같긴 하다). 


다중의 인물들이 나름대로의 비중을 가지고 등장하고, 때문에 주인공 정다은의 비중은 여타의 다른 드라마에 비해 적은 편이다. 그리고 영웅서사로 분석하기에 그 단서가 매우 미미하게 표현되어 있다. 


보통세상 : 1화는 정다은이 정신과로 첫 출근을 하면서 시작한다. 정신과를 소개하고, 정신과에서 해야 할 일들을 배운다. 그녀의 꿈(목표)는 정신과에서 잘 적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첫 환자로 조울증을 가진 여자를 받는다. 하지만 환자에게 따귀를 맞고, 환자가 싼 오줌 위로 넘어지는 봉변을 당한다. 


모험의 소명 : 자신에게 봉변을 준 여환자를 다시 돌봐야 한다. 


소명의 거부 : 병실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인다. 


정신적 스승 : 표현이 되지 않았다(내가 못 찾았을 수 있다). 


첫관문의 돌파 : 환자를 돌보기 위해 병실로 들어간다. 


if....


사실 드라를 봤다면, 당신도 느꼈겠지만 굳이 정다은의 스토리를 바꿀 필요가 없고, 이대로도 매우 좋다. 하지만 공부를 위해 영웅서사로 굳이 바꿔서 생각해 보는 게 앞으로 당신이 쓸 드라마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굳이 해본다. 


영웅서사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시청자(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에 몰입하게 만드는 방식(장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통세상 : 정다은은 내과에서 3년이나 있었지만, 정신과는 처음이다. 기대도 되지만,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그런 그녀가 첫날부터 환자에게 따귀를 맞고, 오줌 바닥에 뒹굴기도 한다. 내가 왜 정신과에 왔을까 후회가 된다.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불안하기까지 한다. 


모험의 소명 : 다음 날 출근해서 그 환자를 다시 돌보라는 오더가 떨어진다. 동료 간호사가 하기 싫으면 자기에게 부탁하라고 하지만, 괜찮다고 나선다. 


소명의 거부 : 하지만 병실까지 가는 길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고...  문 앞에서 문 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동료에게 부탁하려고 돌아서는데...


정신적 스승 : 문이 열리며, 어제 그 환자(정신적 스승)가 나와서 어제 일을 사과한다(드라마에서는 병실에 들어갔을 때 사과를 한다).


첫관문 돌파 : 정다은은 차마 되돌아 가지 못하고 그 환자의 병실로 약을 가지고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영웅서사로 엣지를 주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런 분석에 익숙해지면, 무엇보다 자기 작품을 업그레이드하는데 도움이 된다. 


프로 작가들도 그렇지만, 망생이들은 자기 작품이 똥인지 된장인지 판단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자기가 쓴 작품을 배우자나 베프에게 리뷰를 부탁한다. 


그것은 배우자나 베프에 있어서 모험의 소명이다. 


배우자나 베프는 소명의 거부를 한다. 자칫 리뷰를 잘 못했다가는 이혼을 당하거나 의절을 당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불안감이 올바른 평가로 당신이 작가가 되는데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을 압도한다. 


그래서 배우자나 베프는 마음의 소리(정신적 스승)에 귀를 기울인다. 이혼이나 의절의 길로 가지 말고, 아부의 길로 가라고... 


그래서 배우자나 베프 들은 작품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하지 않는다. 


결국, 당신은 당신 스스로가 당신의 작품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이런 영웅서사 분석법은 홀로 고독한 작가의 길을 가는 당신에게 엄청난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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