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공동집필하려면?
혼자서 쓰던 미니 시리즈가 있습니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 2부까지 쓰고, 3부의 절반을 쓰던 중에 나 혼자서는 좀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진행 중인 다른 프로젝트가 있어서 자꾸 집필이 미뤄지는 것이 첫번째 이유였고요. 이번 이야기 특성상 로맨스가 왕창 들어가야 하는데, 제가 그 부분에 있어서 올드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게 두 번째 이유였습니다.
방법은 공동집필 파트너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가 될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공동집필로 인해 더 좋은 작품이 더 빨리 나올 수 있다면, 고료와 크레딧을 나누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다는 게 제 평소 지론이거든요.
저는 아주 오래 전부터 공동집필을 꿈꿔왔습니다.
실제로 단막으로 데뷔를 하고 몇 년 지났을 때 동료 작가와 공동집필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둘이서 시츄에이션 드라마를 기획하고 집필했는데, 결과는 안 하니만 못했습니다. 서로 자존심만 세우다가 결국엔 맞춤법과 띄어쓰기 문제로 감정이 상해서 팀을 깨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인위적인 조합으로 공동집필을 하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는데, 대개가 작가들이 머리 끄댕이 잡고 싸우다가 결국 등을 지는 사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무사히 잘 끝내면서 좋은 결과를 내는 공동 집필팀도 여럿 보았습니다. 홍지나 홍자람 작가, 홍정은 홍미란 작가 팀은 둘다 자매 지간이라 호흡이 잘 맞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 굵직한 히트작을 낸 김영현, 박상연 작가팀은 뭔가 서로의 장점이 서로의 단점을 절묘하게 커버해주며 최상의 결과를 내는 것 같았구요.
그 외, 여러 작가팀들이 나왔는데,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난 팀일 뿐 더 나은 히트작을 내기 위해 공동 집필을 이어나가는 팀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공동집필을 하려면 서로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 리더도 필요합니다. 공동집필에서의 최악은 서로를 배려하는 것입니다. 딱 죽도 밥도 아닌 극본이 나오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제는 공동집필을 해도 잘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공동 집필 파트너를 구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에 있어서 공동집필은 보통 다른 공동집필과는 다른 시스템을 필요로 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작업에 제가 들여야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공동 작가와 만나서 회의하고, 헤어져서 서로 뭔가를 써온 뒤에 맞춰보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면 정말 하세월입니다. 그래서 같이 앉아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한 작업 공간도 마땅치가 않았습니다. 뭐, 카페에서 안면몰수하고 하면 되긴 하지만, 각자의 노트북을 보면서 작업하는 것은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더라구요.
일단 저의 목표는 3부 반까지 쓴 극본을, 로맨스를 강화하는 식으로 수정하는 것이고, 그렇게 4부까지 완성해서 제작사에 넘기는 것이었습니다. 근데 제가 얼룩소도 써야 하고, 일주일에 하루지만 강의도 해야 하잖아요. 그 외 기타 등등 여러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그때 떠올린 것이 온라인을 활용한 공동집필 시스템이었습니다.
일주일에 딱 두 번 정해진 시간에 온라인에서 만나 작업을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때 떠오른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인터넷이 시작되기 전엔 1984년, 공포물의 두 거장인 스티븐 킹과 피터 스트라우브가 피씨통신(뭔지 모르는 분이 태반일 거라 생각이 듭니다)을 통해 공동 집필을 해서 <부적>이란 소설을 냈었거든요. 킹과 스트라우브는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는데, 피씨 통신이 시작되자 그 가능성을 높이 보고, 공동 작업을 해냈던 것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피씨 통신으로 작업을 하다가 막히면, 전화통을 붙들고 몇 시간이고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요즘엔 인터넷도 훨씬 발달했고 좋은 프로그램이 많으니까, 훨씬 진화된 방식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일단 우리는 구글 미트(줌과 같은 겁니다)를 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구글 미트에 접속해서 서로 얼굴도 보고 대화도 나눌 수 있게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구글 미트의 기능 중 하나인 화면 공유를 했습니다. 그 화면 공유는 제 컴에 있는 스크리브너 프로그램을 하기로 했습니다. 기존에 제가 쓴 대본이 주요 텍스트가 되기 때문에 그것을 보면서 고쳐야 할 부분을 체크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 공유화면에 뜬 스크리브너 화면은 나만 수정할 수 있고, 파트너는 수정할 수가 없는 게 문제였습니다.
굳이 원격조정을 사용하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더라구요. 게다가 스크리브너는 개인 작업용으로는 끝내주지만, 공동 작업용으로 적합하지가 않습니다. 일단, 맥용과 윈도우용이 호환이 되지도 않고 말입니다.
그래서 스크리브너는 필요할 때 내가 작업을 하고, 파트너는 내용을 체크하고 조언을 하는 용도로만 쓰기로 했습니다.
공동 집필은 구글 독스(구글 문서)로 하기로 했습니다. 구글 미트로는 스크리브너 화면을 공유하는 창으로 사용하고, 구글 크롬에서 구글 독스를 띄운 인터넷 창은 집필용으로 쓰는 것입니다.
구글 독스는 공동 작업자를 초대하면, 공유된 화면에 서로 주거니 받거니 글을 쓸 수 있거든요.
저는 울트라 와이드 모니터를 쓰니까 한 쪽에는 구글 독스를 띄우고, 한 쪽에는 구글 미트로 공유한 스크리브너를 띄우니까 딱 좋았습니다.
본인 캡쳐
구글 독스에서는 아이디어도 막 써놓고, 대사도 남녀로 나눠서 주고 받으면서 작업을 합니다. 그러니까 캐릭터도 살고, 대사빨도 좋아지더군요. 하하하.
그렇게 만든 결과물은 제가 스크리브너로 옮겨서 완성을 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글 쓰는 것이 더 이상 괴로운 고행의 과정이 아니게 놀이처럼 되더라 이 말씀입니다.
웃고 떠들고 글을 쓰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더라구요.
오, 이런! 벌써?
우리는 일단 오늘 작업을 기분 좋게 끝내고는, 다음 작업 시간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매우 효율적인 작업 방식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제가 개발(?)한 공동 집필 시스템을 응용해서 여러분도 한 번 공동집필에 도전해 보시는 것은 어떠실까요?
일단, 맘에 맞는 파트너를 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머리 끄댕이 잡고 싸우지 않을, 그런 파트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