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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May 05. 2024

원포인트레슨 10 : 미니 아이디어 검증법

미니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유잃한 방법

제가 미니 시리즈의 아이디어를 찾는 방법 세 가지를 알려 드렸죠? 


하이컨셉을 찾는 법로그라인을 발전시키는 법, 그리고 캐릭터를 이용하는 방법 말입니다. 다른 방법을 더 알려 달라고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이것들이 기본이라서 이 방법들이 능숙해지면 새로운 방법은 스스로 터득하게 될 겁니다. 


제가 올린 방법론을 막상 시도해 보면, 생각만큼 잘 되지 않을 겁니다. 제 글을 읽을 때는 알 것 같았는데 말이죠. 글을 쓴다는 것, 작가가 된다는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어느 강좌 6개월을 듣는다고 해서 작가가 될 거란 생각은 마십시요. 그 강좌에서 여러 작가들을 배출했다는 광고도 믿지 마십시오. 제가 늘상 얘기하지만 그 작가들은 될 때가 되서 된 거지, 그 강좌를 들었다고 당선이 된 것이 아닙니다. 


같은 이유로 제가 올리는 글들이 망생이 여러분들을 당장 당선으로 이끌거나, 작가로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올리는 강의 글들은, 만약 당신이 당선 되거나 작가가 될 망생이라면, 그 지난한 시간을 조금은 단축시켜주는 역할을 할 것이고, 작품을 좀더 탄탄하게 만들어 줄 거라는 것입니다. 


작가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직업입니다. 


여러 분은 미니 아이디어를 찾는 작업을 평소에도 꾸준하게 해야 합니다. 자기가 써야할 것을 평소 꾸준하게 생각해 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방영되었거나 방영 중인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하이컨셉이 뭔지, 로그라인이 뭔지, 캐릭터는 어떤지 늘 분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탁 보면, 하이컨셉이며, 로그라인이며, 주인공 캐릭터가 줄줄이 나올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어느 순간 내가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대중들에게 먹힐지 말지를 알게 되는 수준에 이릅니다. 셀프 검증이 되는 경지에 오르는 것입니다. 


좋은 작가는 좋은 기획자이기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이 작품을 보면서 하이컨셉, 로그라인, 캐릭터를 파악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이른바 '이기원 클래스'를 공채(?)로 모집했는데, 모두 52분이 지원해 주셨습니다. 간단한 자기 소개와 하이컨셉과 로그라인을 이용한 아이디어 각 한 개씩이 제가 요구한 것의 전부였습니다. 단막극을 디벨롭하는 클래스였다면 극본을 요구했겠지만, 미니는 기획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나만 보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땠을까요?


거의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하이컨셉과 로그라인이라는 방법론을 가지고 미니 아이디어 하나를 제대로 못 만들어 내더라 이 말입니다. 


아니, 본인들은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을 객관적으로 볼 눈이 없으니,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는 거지요. 


망생이들이 미니 아이디어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바로 'A가 B를 만났을 때'입니다. 이 공식은 하이컨셉 공식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A는 신선한 소재이고, B는 영원한 주제인 거죠. 하지만 망생이들은 이렇게 하지 않고, 대부분 캐릭터와 캐릭터의 만남, 또는 직업과 직업의 만남 설정합니다. 그리고 흥미진진한 얘기가 나올 거라 기대를 하는 거죠. 


가령, 이런 식입니다. 육사생도인 남자와 해사생도인 여자가 만난다. 산업스파이 남자와 국정원 여직원이 만난다. 빈털털이 남자와 벼락부자 여자가 만난다.  등등.


언뜻 보면, 다 재밌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물만 있을 뿐, 설정도 욕망도 주제도 딜레마도 없기 때문입니다. 


클래스 지원자들의 이런 미니 아이디어를 보다보니, 제 오랜 기억 저편에 있던 일화 하나가 떠오르더군요. 


이십여 년 전엔 저도 망생이었습니다. 


당시 문우들 몇 명이서 스터디를 꾸렸는데, 그 중 한 분이 매주 새로운 직업의 남자와 여자 직업을 조인해 와서는, '어때 재밌겠지? 그치?'하고는 멤버들 표정을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스터디 멤버들은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다고 얘기해줬고, 그러면 그 분은 매우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주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가에 미소가 만연한 얼굴로 나타나 '남자의 직업은 뭔데, 여자의 직업은 뭐야, 재밌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1년 동안 그 놈의 '어떤 직업남과 어떤 직업녀의 만남' 아이디어는 지속됐고, 결국 제풀에 지친 그 분은 스터디를 탈퇴하고 말았습니다.    


근데... 이걸로 끝은 아니었습니다. 


몇 년 후, 그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당시 저는 입봉을 한 뒤 꾸역꾸역 작품을 써나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분은 저에게 작가 생활 힘들지 하면서 맨날 까이기만 하는 작가는 해서 뭐하냐며, 작가를 때려치고 돈이나 왕창 벌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요? 어떡하며 돈을 벌 수 있는데요?


기원 씨, 돈을 벌어서 방송국을 사는 거야. 그러면 기원 씨 작품을 누가 까겠어? 


네, 그러면 좋죠. 근데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 수 있나요?


그건 말이야....


그 분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기원 씨, 기원 씨는 말빨이 좋잖아. 그러니까 잘 될 수 있어.


근데, 그게 무슨 일인데요?


나랑 암웨이하자. 


에이, 이런 씨발...  


저는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암튼,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저는 지금도 망생이들의 'A 직업남이 B 직업녀를 만나면' 기획안을 보게 되면 암웨이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 기획 아이디어가 왜 문제인지 알려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망생이가 몇 년 후에 나를 찾아올 지도 모르니까요. 


A와 B의 만남, 그 자체로는 좋습니다. 

다만, 그걸로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건 시놉시스에서 보여줄 거라 항변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이디어에서 보이지 않으면 시놉시스에서도 없을 확률이 거의 '백퍼'입니다. 


그 아이디어로 우리는 드라마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이미 수차례 얘기했듯이 드라마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 어려움을 겪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위의 아이디어에서 주인공을 설정하고, 그가 무엇을 하는데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를 말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감정적 동의를 불러 일으키고, 호기심을 일으킨다면, 그 아이디어는 훌륭한 아이디어인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검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 어떤 어려움을 겪으며, 그것에 심정적 동의가 되고, 호기심이 생기는가?


위의 예시를 한 번 보완해 볼까요? 아이디어 차원에서는 스토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주인공이 있어야 하고, 그 주인공이 해야할 일이 있어야 하며, 그 일은 쉽지 않아야 합니다. 


육사생도인 남자와 해사생도인 여자가 만난다 : 

육군 참모총장과 해군 참모총장은 서로 철천지 원수이다. 근데 그 아들과 딸이 각각 육사생도이고 해사생도이다. 이 둘은 어느 파티에서 만나게 되고,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남자는 여자와 결혼을 꿈꾸지만, 그에게는 온갖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즉, 하이컨셉 아이디어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육군사관학교 버전. 


산업스파이 남자와 국정원 여직원이 만난다 : 

산업 스파이로 닳고 달은 주인공이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가 바로 자신을 잡으려고 수사 중인 국정원 직원인 것을 알게 된다(물론 그녀는 그가 산업스파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는 이제 마지막 미션을 앞에 두고 있고, 그는 미션에 성공함으로써 그녀의 경력을 망쳐놓을 것인가, 아니면 그녀에게 체포 당함으로써 자신의 경력을 망칠 것인가? 결국,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에게 힘든 선택을 강요하는데... 이것은 로그라인 아이디어입니다. 산업스파이인 남주가 국정원 직원 여주와 사랑에 빠진다면, 미션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빈털털이 남자가 벼락부자 여자를 만난다 : 

빈털털이 남자는 미니멀리스트입니다. 최소한의 필요한 돈만 벌고, 최소한 필요한 것만 사는 사람입니다. 장기하의 노래처럼 도무지 남이 '부럽지가 않아'인 사람입니다. 이런 남자가 벼락부자인 여자를 만납니다. 많은 남자들이 그녀의 돈을 보고, 저자세를 취하며 아부를 해대는데, 이 남자는 그런 그녀를 돌처럼 봅니다. 여자는 오해를 합니다. 이 사람은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이구나. 그래서 있는 척하지 않고, 있는 척에서 자유로운 거구나. 그래서 점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런데 그와 사랑에 푹 빠지고 나서야 그녀는 그가 빈털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건 로그라인 아이디어이기도 하지만, 캐릭터 아이디어이기도 하죠. 


이런 식으로 직업만 만들어 놓고, 뒷짐을 지는 게 아닌 그 인물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분명히 서야 합니다. 원하는 게 없는, 즉 욕망이 없는 인물은 캐릭터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인물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으면 또한 드라마가 아니지요. 


따라서 모든 아이디어, 자신의 이야기 아이디어를 점검하고 검증할 때는, 반드시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 어려움을 겪는 것에 감정이입이 되고, 호기심이 이는가'를 반드시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족. 

돌이켜 보면, 저와 옛날에 스터디를 했던 그 분은 남자는 작가, 여자는 암웨이란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말빨 좋은 작가를 암웨이 판매사원으로 포섭하려는 욕망을 가진 여자가 어려움을 겪는다. 

와우! 그분은 몇 년만에 드라마가 되는 매칭을 가지곤 왔던 거였습니다.  물론, 그 어려움의 정도가 불가능이라 드라마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매우 신선했다고 다시 만나게 되면 말해주고 싶습니다. 

첨으로 재밌었어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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