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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Jun 11. 2023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 쓰기00

00. 심사위원은 당신의 극본을 다 읽지 않는다.


솔직히 나는 당신을 못 가르칠 자신이 없다 



나는 확신한다.


내가 알려주는 것을 금과옥조처럼 믿고 따른다면, 당신의 극본 쓰는 실력은 충격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임을.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당신이 꿈에 그리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음을.


하지만 나는 당선을 장담하지는 못한다.


당선에는 변수가 존재한다. 심사위원의 성향이나 취향, 당신의 작품이 가진 특별한 소재, 당신의 깊은 주제 의식, 넘사벽의 필력, 그리고 무엇보다 운이 또 따라야 한다. 내가 이 변수까지 챙겨줄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변수를 제외한 상수에 해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완벽에 가깝게 케어해 줄 수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당신을 최종심 언저리까지 도달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떻게 하면 당선이 될 수 있는지도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변수라 말했던 몇몇 요소가 상수로 바뀌게 될 것이고, 끝내는 당선이라는 영예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 쓰기>라는 연재는 당신이 이전에 만난 적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가장 이상적인 당선 매뉴얼임을 의심치 말기 바란다.


공모에 당선되려면 제일 먼저 무엇을 알아야 할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듯이, 공모에 어떻게 당선되는가를 알려면, 먼저 공모 심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 알아야 한다.


공모 심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것이다.  



심사위원은 당신의 작품을 다 읽지 않는다.



작가 지망생들이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가 공모에 낸 내 작품을 심사위원이 다 읽어줄 거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내 작품을 끝까지 다 읽으면 당선작으로 안 뽑아줄 리 없다는 생각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심사위원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심사위원들이 제일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못쓴 작품을 읽는데 자신의 인내심을 발휘할 때이다. 그들은 당신의 작품이 시원찮다고 생각하면 결코 끝까지 읽지 않는다. 당신의 작품이 심사위원에게 끝까지 읽혀지려면 최소한 최종심에 올라가야만 한다.


보통 공모 심사는 1차, 2차, 3차 등 예심 단계를 거친 뒤 최종심에서 당선작을 뽑는 것으로 진행된다.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서 예심 단계에서 중복 심사로 크로스 체크를 하고, 최종심에서는 모든 작품을 심사위원이 돌려 읽고 채점을 한 뒤 가장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를 빼고 합산을 해서 순위를 매긴다. 그래서 최우수상, 우수상, 가작, 그리고 최종심 진출작 등으로 결정이 된다.


우선 매번 수천 편이 응모되는 공모의 1차 예심을 들다 보자(이하 서술되는 공모 심사 방식은 내 자의적 추에 따른 것이며, 실제로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밝힌다).


1차 예심을 하게 된 심사위원들에게 가령 이런 식의 미션과 보상이 주어진다. 100편의 작품 중에서 40편을 2차로 올리십시오. 심사비는 백만원(편의상)입니다.   


이때 심사위원의 머리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무얼까? 심사를 공명정대하게 해서 좋은 작품이 누락되는 일이 없게 하겠다? 아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작품 1편당 심사비가 얼마인가이다. 내가 편의상 백만원이라고 했으니, 편당 심사비는 1만원이다. 그렇다면, 이 계산은 바로 심사위원의 이런 결심으로 바뀐다. 작품 한 편당 1만원어치씩만 읽겠다는 것.


그렇다면, 심사위원에게 1편당 심사비는 대체 원고의 몇 장에 해당하는 액수일까? 심사위원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보통 표지 포함 서너장을 넘지 않을 것이다. 즉, 극본은 정작 한 장도 읽지 않고, 앞에 첨부한 시놉시스만 훑어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허투로 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매우 프로페셔널하게 심사를 정확하고 공정하게 한다. 그들은 드라마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몇 장만 보고도 그 작품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한다. 심사위원은 극본 앞에 첨부된 시놉시스를 보면서 작품의 로그라인이 흥미로운가를 판단해서 탈락을 결정한다.


1차를 통과하면 2차 예심에서는 심사위원에게 더 적은 작품수에 더 많은 심사비가 주어진다. 가령 50편에 150만원의 심사료가 책정된다면, 심사위원은 이제 편당 3만원어치를 읽게 되는 것이다. 그게 몇 장분인지 개인적으로 편차가 있겠지만, 본격적으로 극본을 몇 장을 읽어 보는 거라 보면 된다.


2차 예심의 핵심은 첫 번째 시퀀스에 대한 평가이다. 심사위원은 대본의 첫 시퀀스를 보면서 주인공은 매력적인가, 또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나, 이 극본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 3차로 올릴지 말지를 판단한다.


그 다음 3차에서는 더 적은 편수에 더 높은 심사비가 책정된다. 여기서 심사위원은 비로소 1막을 읽게 된다. 보통 30장 내외의 단막극에서 1막은 10장 내외이다. 즉, 당신의 작품이 1차와 2차를 통과해야만 심사워원들이 극본을 10장 이상 읽어주는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여기서 심사위원은 이런 고민을 한다. 1막에 이어 2막이 읽고 싶어지는가? 1막에 들어가야 할 요소들이 잘 들어가 배치까지 완벽한가? 3막의 결론이 궁금한가? 등등.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작품은 최종심에 올라가게 된다.


최종심은 경력도 오래되고 내공이 있는 전문가가 심사한다. 여기서 당신의 작품은 심사위원들에 의해 완독될 확률이 높다. 재미와 완성도가 비슷한 작품들의 우열을 가려줘야 하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정독을 할 수밖에 없다.   


일단, 심사위원이 논스톱으로 읽은 대본은 당선작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서른 장 넘는 극본을 단숨에 읽는 것은 어지간히 재미있지 않고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이 극본 읽기를 여러 번 멈춘 작품일수록 당선권에서 멀어진다.


이렇게 최종심에서 심사위원의 최종 선택을 받은 작품이 당선작이 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극본 심사 과정을 알려주는 이유를 눈치챘을 것이다. 1차, 2차, 3차 예심을 통과할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최종심에서 선택될 수 있게 전략과 전술을 잘 짜서 극본을 완성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한 번 손에 쥐면, 극본이 끝날 때까지 놓치 못하는 작품을 써내자는 것이다.



공모에 당선되는 작품을 쓰려면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당신은 극본 쓰기의 전략과 전술의 필요성을 이미 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과거의 나도 그랬다. 그래서 극작 클래스의 문을 두드렸었다. 하지만 선생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그런 것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만의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신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극작 클래스에 들어가면 극본 쓰기 전략과 전술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배웠을까? 아니, 배우지 못했다.


초급 클래스에서 당신은 극본의 형식, 용어 설명, 취재 하는 법, 등장인물 이력서 만들기 등을 배웠을 것이고, 운이 좋았다면 스토리텔링에 대한 내용을 배웠을 것이다. 때론 황당하게도 결코 배울 수도 없고, 배워서도 안 되는 작가 정신에 대한 교육도 받았을 지도 모른다.


다 좋다. 그게 기초니까.


이제 기초를 공부했으니까, 그 다음에는 극본 쓰기 전략과 전술을 배워야 할 차례이다. 하지만 당신은 클래스에서 선생으로부터 극본을 통으로 써서 내라는 미션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멘붕에 빠졌을 것이다. 극본을 어떻게 써내라는 거지? 당신은 며칠 이 궁리 저 궁리하다가 결국 멘땅에 헤딩을 하면서 극본을 써서 완성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합평이라는 합법적 난도질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 지망생의 첫 습작은 아무리 난도질해도 지나치지 않지가 않다. 심리적으로 엄청난 데미지를 입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합평이 부당하고 비합리적이라 생각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합평은 초보자의 작품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합평은 어느 정도 형식과 내용을 갖춘 작품을 업그레이드하기 좋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극본 쓰기의 전략과 전술을 건너 뛴 채 합평으로 넘어가는 방식은 드라마 극본 쓰기를 배우는 방식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이 방식은 시 창작이나 순문학 창작 수업에 어울리는 이른 바 예술작품을 추구하는 수업에 적합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드라마 합평수업은 순문학 수업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시작 되었다. 순문학 수업에서 감히 전략과 전술을 논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래서 드라마 수업에서도 애써 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술작품을 만든다면 벽돌, 시멘트, 나무 자재, 물 등을 주고 구조물을 맘껏 만들어 봐라 해도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때론 선문답으로 합평을 해도 된다. 그게 어쩌면 예술작품이 갖는 가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업작품을 만든다고 하면, 재료와 함께 설계도와 순서도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따라가며 탄탄하게 구조물을 올리는 건축술이 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전략과 전술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작품을 합평이란 방식이 아닌 감리라는 방식으로 검증을 해야 한다. 상업작품은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같은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시청률이라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 쓰기>라는 이 연재를 전략적으로, 전술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그래서 1차 예심을 통과하게 하고, 2차, 3차를 지나 최종심에 이르는 방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최종심에서 어떻게 하면 가작이 될 수 있는지, 우수작이, 최우수작이 될 수 있는지 명확하게 알려줄 것이다.


당신의 극본은 이제부터 가상의 한 심사위원을 위해 씌여져야 한다. 다른 분야의 심사위원은 예술적 평가를 할 지 몰라도, 적어도 드라마 극본의 심사위원은 상업적 가치를 최우선적으로 본다. 즉, 그들은 시청자의 대리인인 것이고, 은 극본을 찾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픈 md(머천다이저)인 것이다.


이제 당신은 당신이 기존에 해왔던 방식을 버려야 한다.


모르긴 몰라도, 닥치고 따라오는 자에게 빛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십년 이상 작가 지망생을 가르쳐 왔고, 작법을 공부하고 연구해 왔다. 물론 공모전을 통해 많은 당선자도 배출하기도 했다. 이제는 누군지 모르는 당신이 내 당선 매뉴얼을 보고 그대로 따라했더니 당선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


다시 한 번 솔직하게 고백한다.


나는 당신을 못 가르칠 자신이 없다.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애정어린 댓글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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