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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에 당선되는 극본쓰기 11

매력이 뭔지 확실하게 가르쳐 주겠다.

by 이기원

매력이 뭔지 확실하게 가르쳐 주겠다.

혹시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쓰기>의 진도가 더디게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벌써 11강인데 아직 오프닝 시퀀스에서 머물고 있으니까 말이다. 빨리 중간점을 지나고, 클라이맥스와 결말을 쓰고 싶은데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빨리 코스를 끝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발자국 씩 꾹꾹 즈려밟으며 제대로 가는 것이다. 당신은 시놉시스를 안 써도 된다는 말에 속아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도 얼마나 더 가야하냐고 불평할 수도 있다. 나한테 네다바이 당했다고 말이다.


좋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지극히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자. 이렇게 극본을 쓰기 전에 해야 할 게 많고 챙겨야 할 게 많은데, 어떻게 그동안 당신은 고작 종이 몇 장짜리 시놉시스를 놓고 일을 한 거냐 이 말이다.

그래서 당신은 아직도 망생이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시놉시스부터 쓰는 방식으로 당선돼서 잘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부러워하지 말기 바란다. 기본기를 갈고 닦은 당신이 어느 순간, 그들을 앞지르게 될 것이고, 일단 그런 일이 일어나면 다시는 뒤처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 당신은 내게서 탄탄한 기본기를 배울 것이기 때문이다.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배우고 가는 작가가 결국엔 승리한다.

당신이 만약 축구선수가 꿈이라 할 때, 나는 지금 공을 만질 때가 아니라 기초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체력이 완성되면, 비록 골을 넣지 못하더라도 90분 내내 뛸 수가 있다. 그게 골 한 골 넣고 방전돼 그라운드 밖으로 실려나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

기본기가 충실한 사람은 성공하지는 못해도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작가에게는 성공하는 것보다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놈의 드라마 판은 실패하면 재기할 기회를 좀처럼 주지 않는다. 때문에 실패하지 않으면서 꾸준하게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그 과정에서 명작도 나오고 걸작도 나오는 것이다.

당신이 기본기에 충실하다면, 요즘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인 후반부에 스토리가 황당하게 무너지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요즘 작가들의 작품이 용두사미가 되는 가장 근본 적인 이유는 기본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본기가 부족하면 초기 세팅에서 실수를 하게 된다. 그 실수는 캐스팅을 하고 편성을 받을 때까지도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고 극본이 중간 정도 넘어가면, 그때서야 드러난다. 그걸 바로 잡으려면 처음부터 손을 봐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저 괴로워하면서 작품이 망가져 가는 것을 수수방관하는 수밖에 없다.


기본기가 튼튼한 사람은 초기 세팅에서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초기 작업을 하면서 뒷부분의 중요 플롯 포인트를 계속 체크해 가며 시뮬레이션을 해 본다. 그러다 막히면 초기 세팅을 다시 손 보고, 다시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거시적으로 보고, 미시적으로 보는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작가의 일이다.


중요한 사실 하나.


당신이 작업을 함께 하는 감독이나 프로듀서는 당신이 해야 하는 시뮬레이션에 대해서 1도 관심이 없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편성이다. 그래서 일단 편성을 받기 위해 당신에게 온갖 피드백을 다 준다. 하지만 그것들을 취사선택하지 않고 다 받아 들이게 되면 편성이 되더라도, 나중에 당신은 피의 대가를 치를 수가 있다. 그들의 피드백은 지금 당장은 그럴듯하지만 나중에 독이 되거나 스토리의 힘을 빠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인물이 있는데, 임팩트를 위해서 감독이 죽이자고 한다면, 작가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전에 그 인물을 살렸을 때 나중에 어떤 유리한 점이 있을까 시뮬레이션을 통해 체크해 봐야 한다. 만약 그런 일을 소홀히 한다면 그 인물을 왜 죽였을까, 그 인물이 살아있었다면 지금 스토리가 완전 끝내줬을 텐데 하고 땅을 치고 후회할 수도 있다.


근데 지금 내 강의를 잘 따라오면 기본 세팅을 잘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후반부에 스토리가 무너지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내가 그랬지 않은가.


나는 당신을 못 가르칠 자신이 없다고.

그러니 닥치고, 백 투 베이식(Back To Basic)!


서두가 좀 길었지만, 오늘도 기본기 하나를 제대로 다지고, 뽕까지 뽑아보기로 한다.


오늘은 일단 아래로 스크롤을 내려서 어떤 작품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한 번 보도록 해라.

(그리고 내려간 김에 나중에 잊을 수도 있으니 '좋아요'를 눌러주고 오도록 한다).


극본의 오프닝 시퀀스를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캐릭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캐릭터가 주제이고, 곧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캐릭터의 '매력'이다.




“주인공 캐릭터에 매력이 없네요.”


내가 예전에 프로듀서들에게 자주 듣던 말이다(부끄럽지만 요즘도 듣는다).


“그렇군요. 근데 캐릭터의 매력이란 게 뭔가요?”


나는 정말 몰라서 물었는데, 프로듀서들은 내가 무슨 반항이라도 하는 줄 알고 얼굴을 붉히기 일쑤였다.

근데 솔직히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당신이 만든 캐릭터에 매력이 없다고 하면, 정말 묻고 싶지 않은가? 매력이 대체 뭐냐고.


문제는 프로듀서도 매력이 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작가님, 저를 능멸하시는 건가요?”


아니, 몰라서 물었는데, 능멸한다니. 그건 역으로 보면, 지가 나를 능멸한 거 아닌가?

실제 있었던 일이다.

어쨌든 하도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까 ‘매력의 실체’를 한 번은 제대로 파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있는 수많은 작법 책들을 뒤졌지만 매력에 대해 말해주는 책은 없었다(혹시 매력에 대한 설명이 있는 작법 책 보신 분 제보 바랍니다).

이번엔 ‘매력’이란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책들을 구입했다. 의외로 실용서에서 작법에 적용할 핵심을 얻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내 경우에는 선거 전략 책에서 작법에 대한 인사이트를 꽤 얻은 경험이 있다).


미치는 줄 알았다. 왜? 없었으니까.


매력을 소재로 책 한 권을 할애한 책들에서도 내가 찾아 헤매고 있는 매력에 대한 통찰이 없다는 것은 사실 충격이었다. 그런 책들은 대개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김연아가 이런이런 마음씨를 가지고 있고, 이런 행동들을 했고, 이런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나는 울고 싶었다. 다 좋은데, 대체 매력의 실체가 뭐냐고?


자칭 매력 전문가, 매력 전도사라는 분들이 내린 매력의 정의는 굳이 말하자면 이렇다.


"여러분, 매력이란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 인간에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지랄 염병. 하나마나한 소리다.


매력이 뭔지 몰라 좌절한 나는 삐뚤어졌다. 그래서 내가 창조한 캐릭터를 씹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대체 매력이 뭐냐고 불량스럽게 물었다. 그들을 능멸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매력은 동경할 만한 요소를 가진 인물이 나와 비슷한 사람임을 깨닫게 될 때 생깁니다.”


나와 작업을 했던 감독이 내게 말했다.


심봤다! 드디어 찾은 것이다.

그가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누구한테 들었는지, 아니면 혼자 터득했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어느 책에서도 알려주지 않았고, 매력에 관한 책을 낸 매력 전문가와 전도사도 정의하지 못했던 '매력의 실체'를 드디어 알게 된 것이었다.

이후, 나는 매력에 관해 연구해 발표한 국내 어느 논문에서도 같은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얼마 뒤 나는 매력의 정의를 공식으로 만들었다.


매력 = 동경심 + 동질감


즉, 매력은 캐릭터에 대한 동경심과 동질감이 동시에 느껴질 때 생기는 것이다.


아직은 감이 잘 오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얼굴 천재 차은우가 커피숍에 들어와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하고는 멋진 자세로 테이블에 팔을 기대고 뭐가 즐거운지 콧노래를 부른다. 그냥 화보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은혜롭다. 이윽고 커피가 나오자 눈을 감고 향을 깊게 음미한 다음 ‘잘 마실게요’하곤 윙크까지 날리며 커피숍을 나간다. 그러면 카페 아르바이트생,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는다.


만약, 당신이 이런 장면을 보고 ‘매력이 철철 넘친다’고 생각한 다면, 당신의 작가적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동질감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은 것이다. 그저 잘생김이라는 동경적 요소 밖에 없는 것이다.


매력의 핵심은 동경심이 아니라 동질감이다.


동질감은 나만 할 것 같은 것을 그 사람도 하는구나 생각될 때 가장 강력한 효과를 낸다.


자, 그럼, 위의 이야기에서 동질감을 사용해서 캐릭터의 매력을 한 번 만들어 보자.


... 이윽고, 커피가 나오자 눈을 감고 향을 깊게 음미한 차은우는 ‘잘 마실게요’하곤 커피숍을 나가다가 그는 ‘아차!’하고는 카운터로 돌아온다. 카페 아르바이트생, 왠지 긴장된 모습이고. 카운터에 커피를 내려놓은 그는, 지갑에서 쿠폰을 꺼낸다.


"스탬프를 안 받아갈 뻔했네요."


남자가 선한 미소를 짓고, 카페 아르바이트생 역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당신은 아, 나도 쿠폰에 스탬프를 받는데, 저 잘 생긴 차은우도 그러네... 와 매력 쩔어!


두 유 언더스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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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포스터


이젠 실제 작품인 <별에서 온 그대>에서 여주인공인 천송이가 어떤 때 매력적인지 찾아보자.

우선 동경할 만한 요소. 이것은 분명하다.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하고 아름다운 탑스타이다.


그런 천송이가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에서 그것을 어떻게든 풀려고 한다. 과연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까?


그녀는 패리스 힐튼 같은 돈 많은 셀럽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스트레스를 풀 때 백화점 명품관에 가서 싹쓸이 쇼핑을 하거나, 강남의 고급 클럽에 가서 비싼 술을 진탕 먹고 골든벨까지 울릴 거라 생각한다. 아니면, 비행기 1등석을 타고 유럽 어느 나라로 휙 날아가던가.


하지만 천송이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 시청률이 떨어질 것을 아니까.

천송이는 어렸을 때 자주 가던 만화방에 가서 낄낄거리고 때론 찔찔 짜며 만화를 본다. 그게 그녀가 스트레스를 푸는 법이다. 거기에 라면과 소주는 덤. 시청자의 상당수가 그렇게 하는, 또한 그렇게 할 법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매력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인데, 이런 식으로 표현된 매력이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끝까지 작품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


매력에서는 동경심보다 동질감이 더 중요하다. 동질감이 기준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자기보다 얼마나 더 멋지고 훌륭한 사람인가를 판단한다.

따라서 실력 있는 작가들은 캐릭터의 동경심보다는 동질감에 방점을 둔 묘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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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포스터


미드 <더 클로저>를 보자.


이 드라마는 LA 경찰청 특수팀의 책임자인 브렌다가 거친 남자들이 득시글한 경찰청 내에서 뛰어난 실력도 실력이지만,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각종 어려운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수사물이다.

미모와 실력에다 강단까지 갖춘 경찰청의 수사 책임자라는 설정은 동경할 만한 요소로서는 거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 클로저>는 브렌다라는 캐릭터에서 시청자들과의 동질적 요소를 어떻게 설정했을까? 그것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듯한 ‘단 것에의 유혹’이었다(이 시리즈의 크리에이터는 정말 고수임에 틀림없다).


브렌다는 스트레스에 노출된 보통의 직장인들처럼 늘 단 것이 땡기는 여자이다. 책상 서랍을 열면, 그 안에는 초콜릿, 쿠키, 그리고 도넛 같은 것들이 항상 들어있다. 먹을까 말까, 그녀는 수시로 서랍을 열었다 닫는다(나는 냉장고 문을 수시로 열었다 닫았다 한다).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그 브렌다의 심정을 시청자들은 잘 안다. 그러면서 그 캐릭터의 매력에 빠져든다. 왜? 내 서랍(마음의 서랍도 포함)에도 단 것들이 들어 있거든.

그런 브렌다가 어려운 사건을 끝내고 퇴근 준비를 하다가 뭔가 허전함을 느낀다. 왜 허전할까, 그러면서 문득 서랍을 연다. 그 안에 들어있는 먹음직스러운 도넛... 브렌다는 미소를 지으며 도넛을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양 한 입 베어 물고는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바로 이런 브렌다의 매력이 드라마를 시즌 7까지 만들어진 원동력이라고 본다(이 드라마 때문에 살찐 사람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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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포스터



이젠 심화과정에 들어가 보자.


미국과 일본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한 <굿 닥터>의 주인공 박시온의 매력을 살펴보자.


주인공 박시온은 천재 의사라는 동경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동질감은? 사실 그는 자폐아로서 드라마를 보는 보통사람들에게 동질감을 유발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박시온은 매력이 없는 캐릭터일까? 아니다.

박시온은 매력의 최상위 레벨인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이다.


사실 동질감은 시청자들과 감정적 유대를 위한 장치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하게 감정적 유대를 할 수 있는 것은 동질감보다는 연민과 동정이다. 즉, 남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겨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우리는 그때 박시온이 정말 잘 되길 빌었다.


즉, 이것을 공식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치명적 매력 =동경심+동정심


당신은 공식 하나를 더 겟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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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포스터


미드 <하우스>의 주인공 닥터 하우스 역시 의학에 천재이다. 하지만 성격이 괴팍하고 지랄 맞다. 그런데도 닥터 하우스는 치명적인 매력의 캐릭터이다. 왜냐하면, 그는 잘라야 되는 다리를 자르지 않아서 영구적인 통증을 안고 사는 환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아프면 짜증이 나는데, 닥터 하우스는 오죽하겠나. 그는 그런 몹쓸 통증을 안고 살면서 사람들을 기가 막히게 살려낸다. 그러다 보니 그가 내뱉는 각종 비호감적 발언들이 유머와 애교로 들린다.

바로 치명적인 매력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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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미드 <퀸즈 갬빗>의 혼외자인 엘리자베스는 엄마가 자살하는데 함께 자살당할 상황(?)에서 극적으로 생존해서 고아원에 맡겨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하길, 인간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인간에게 감정이입을 한다고 했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부당한 대우를 안 받아본 사람이 없을 것이므로, 그런 경우에 처한 인간을 보면 동병상련을 느끼면서 연민을 느끼고 동정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엘리자베스는 엄청나게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고, 그로 인해 보는 사람과 연민과 동정을 통한 ‘감정적 유대’를 탄탄하게 맺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엘리자베스가 체스 천재였다니! 매력이 치명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악역이나 빌런도 이런 매력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나요?


있지, 왜 없겠는가?


폭력이나 금단의 것을 행하는 것도 보통 사람들이 쉽게 행할 수 없는 동경의 요소이다.

다만 그 악당이 매력적이려면, 그에게도 감정적 유대를 할 수 있는 동질적 요소나 동정적 요소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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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포스터


영화 <조커>를 보자.


<조커>가 명작인 이유를 캐릭터의 매력적 측면에서 보면, 영화 전체가 주인공 아서를 연민과 동정하게 만드는 에피소드로 점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동경할 만한 요소는 나쁜 짓도 포함되므로, 이유야 어찌 됐든 어머니를 살해한 아서는 악에 대한 동경적 요소를 충족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는 처음엔 아주 착한 사람이었다. 병든 노모를 모시고 살고, 그녀와 함께 티브이 쇼를 보는 것을 즐기는 소시민이었다. 광대 분장을 하고 피켓맨을 할 때 아이들이 피켓을 빼앗고 두들겨 패도 화조차 못 내는 사람이었다. 그는 웃음이 한 번 터지면 멈추지 못하는 특이한 병을 갖고 있었으며, 우울증 환자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도 꿈은 있었으니, 멋진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재능마저 없었다. 연민+동정+연민+동정...


이렇게 영화는 조커가 매력적인 빌런이 되도록 치밀하게 연민을 자아내도록 했고, 동정을 유발하게 해서 감정적 유대 내지는 지지를 이끌어 냈다.


이제 매력의 실체를 알게 되었는가?


그럼, 묻겠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기원이란 인간은 캐릭터적으로 볼 때 매력적인가?


우선 동경할 만한 요소.


글도 잘 쓰고, 작품에 대한 분석도 뛰어나며, 드라마에 대한 통찰도 있다(인정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 게다가 은근 유머감각도 있다.


다음은 동질적인 요소.


일단, 이번 글 맨 앞에 피디들로부터 캐릭터에 매력이 없다는 얘기를 예전에 많이 들었다고 하곤, 부끄럽지만 요즘도 듣는고 고백한 대목, 그 부분에서 속으로 피식하고 웃었다면 내게 매력을 느낀 것이다. 당신만 그럴 줄 알았는데, 동질적 요소를 가진 사람을 발견한 것 아닌가. 와, 저 인간도 나랑 똑같이 까이는구나.


그리고 이런 작법 글을 쓰는 사람들은 뭔가 엄숙주의에 사로잡혀서 겸손한 꼰대처럼 얘기하는데, 나는 적당히 자뻑도 해가면서 약간은 양아치처럼 얘기한다. 마치 당신이 친구와 얘기할 때처럼 말이다. 당신이 동질감이 느끼지 않을 재간이 없다.


어떤가? 나란 인간 매력적이지 않은가?


뭐,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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