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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Nov 15. 2023

출간 작가 해내내의 영감을 주는 일상

2028년 11월 보스턴에서


캔참치가 아닌 진짜 참치를 구워 신선한 샌드위치가 맛있는 단골 브런치 가게에 왔다. 생선 비린내는 찾아 볼 수도 없고, 신선한 야채는 물기 한 점 없이 아삭아삭 거린다. 매콤짭짤한 소스는 참치와 야채 사이에 스며들어 풍미를 살려준다. 다 먹은 플레이트를 치워달라고 팁과 함께 부탁하며, 따뜻한 라떼를 한 잔 시킨다.

Here is yours


대학생들의 낭만과 젊음은 주변 분위기를 타는 나에게 영감을 준다. (출처: 픽사베이)


따뜻한 라떼를 마시며 바깥 구경을 한다. 여기저기 MIT와 하버드 티셔츠를 입은 대학생들을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고있다. 챨스강쪽을 보니 학교 유니폼을 입은 조정팀이 아침부터 노를 젓고있다. 보스턴의 따뜻한 가을 햇살 아래에 신학기를 맞은 대학생들의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찬 보스턴은 다른 대도시와는 달리 대학생 특유의 젊음의 낭만이 있다. 이 젊은과 낭만은 나의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다.


라떼를 반쯤 마시고 에코백에서 패드를 꺼낸다. 우선 아이들의 학교 이메일을 확인한다. 첫째 별이의 발레 리사이틀 참여 여부를 물어보는 이메일에 참가하겠다라는 답장을 보내고 다시 라떼 한 모금을 마신다. 첫째는 내년까지만 발레를 다닐꺼라고, 5학년 부터는 공부만 할꺼라고 의지를 보인다. 축구 동아리부터 그만 두면 좋겠다. 어찌됐든 라이딩은 안해도 되서 좋네.


이제 막 2학년이 된 둘째 비야는 이번 주말에 같은반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받았다. 발레는 남편에게 라이딩을 부탁하고 나는 파티에 라이딩을 해주면되겠다. 남편은 2년간의 유급휴가를 받아 현재 석사를 하고있다. 평일에는 수업과 실습으로 바쁘지만 주말에는 최대한 가족과 함께 지내고있다.


출판사에서 이메일이 와있다. 두번째 책 제목을 결정해야한단다. 요즘 유행하는 책 제목으로 적어볼까, 원안대로 할까. 북토크를 해야한다는데, 다가오는 무서운 보스턴 추위를 피해 한국으로 잠깐 다녀올까 고민하다가, 크리스마스 쯔음에 뉴욕에서 관광하고 한국으로 가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JFK에서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우선 구입했다. 어느덧 뜨거웠던 라떼가 미지근하게 식어있다.


20년전 뉴욕으로 한국 비행기 타러 가는 길, 이 길을 이젠 가족과 함께라니 익숙하지만 낯선느낌이다.



구글 문서에는 어제 보스턴 플리마켓에서 느꼈던 생각을 적은 초안이 적혀있다. 높고 투명한 파란색 가을 하늘에 거울 빌딩에 반사 되는 빛들. 빌딩숲 사이에 열린 로컬 마켓에서 홈메이드 잼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20대. 못난이 채소들을 무농약으로 키웠다며 자랑하는 농부들, 내년 정원에 심을 꽃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할머니들. 그 사이에서 처음 본 채소 이름을 배우고 요리법은 뭔지 물어보는 내가 있었다. 이번에는 대도시 마다 있는 로컬마켓을 컨셉으로 글을 연재해볼까 고민하다보니 라떼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애들 픽업까지는 3시간 정도 남았다. 여기까지 와서 애데렐라라는 사실에 웃음이 난다. 그래도 시간과 장소에 자유로운 작가라는점이 감사하다. 날씨가 좋아 동네 한 바퀴를 돌아서 집으로 가기로 했다.


벤치에 앉아 대화하는 대학생 커플이 너무 사랑스럽다. 어떤 대화를 하는걸까. 그 옆에는 산책 온 유치원생들이 재잘거리며 걸어간다. 동네 산책을 나온 핑크색이 잘 어울리는 백발 할머니까지. 역시 다음 책은 Local, Green, and People 인가. 예쁜 사진을 더 찍어야하나 고민하며 걸어가는데, 벌써 집 앞이다.


보스턴 온지 일주일만에 운좋게 100년이 조금 넘은 빨간 벽돌집을 구했다. 현관으로 들어가는 정원에는 주말에 애들이랑 심은 하얀색 국화 향이 가득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끼익 거리는 바닥 소리가 나를 반긴다. 거실 가득한 햇살 냄새에 나른해진다.


아 우리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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