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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Nov 13. 2023

키즈카페 대신 등산

등산화는 아직입니다만


내일 날씨를 확인하니 영상기온이다. 등산가기에 아직은 괜찮은 날씨라는 뜻이다. 봄과 가을은 미세먼지와 날씨가 허락하는 한 키즈카페 (이하 키카)가 아닌 산으로 간다. 아직은 6살이라 동네에 있는 산 정도만 다녀서, 등산화 대신 평소 신는 운동화만 있으면 정상까지 가기에 충분하다.


한 때는 키카에 다녔는데, 기관지가 약한 애들이라 키카만 다녀오면 콜록거렸다. 키카에서 나온 지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지속되는 각성상태는 또 다른 걱정거리였다. 외부 음식 반입 금지에 뽀로로 주스랑 점심까지 먹이니, 한 번 가면 10만 원 정도가 나온다. 대안이 필요하다. 키카 대신 어딜가지?



사족 보행을 하는 사람을 본 적 있나요?

저기 네 발로 걸어 다니는 게 우리 집 아들이다. 무르팍이 해질 때까지 바깥에서 노는 게 제일 좋은 6 살인 별이. 놀이터를 몇 바퀴나 돌며 뛰어다니고, 그네는 앉아서도 탔다가 엎드려서도 탔다가 난리다. 어느새 나뭇가지로 흙을 열심히 파고있다. 4살쯤에 같은 반 친구 할머니를 놀이터에서 만났는데, 별이를 가리키며 애가 왜 이렇게 거칠게 노냐며 자기 손녀랑은 안 놀았으면 좋겠다고 아예 대놓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 할머니가 이상한 할머니라는 걸 알지만, 당시에는 별이가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한편으로는 예민하고 불안도가 높은 아이이다. 너무 일찍 어린이집을 보낸 것도 아니고, 주양육자가 바뀐 적도 없다. 없는 걱정도 만들어서 걱정하는 엄마를 닮은 것일 뿐. 돌 전까지는 이유 없이 새벽에 깨어 2시간을 내리 우는 게 일상이었다. 등센서를 시작으로 “안아요”병을 거쳐 현재 6살인 지금도 매일  “엄마 내일 어린이집 가는 날이에요?" 라며 울음 섞인 먹먹한 목소리로 물어본다. 이런 불안함과 산만함을 해소하는 방법 중 가장 쉬운 건 자연 속으로 가는 것이다. 


뒷산이든 공원이든 자연환경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ADHD의 전형적인 증상을 완화시킨다. 지시 사항이 많은 환경에서는 분쟁과 긴장감이 조성되고, 이는 ADHD의 충동성과 산만함을 야기시킨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는 그런 부주의성과 충동성을 완화시킨다. (CHADD, Spend Time Outside to Improve ADHD Symptoms)


즉, 지켜야 할 규칙이 많고 지시사항이 많은 곳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뛰어놀면서 긴장감, 충동성, 그리고 산만함을 털어내는 것이다. 덕분에 평소엔 한강에서 바깥놀이를 하고, 주말에는 강도가 높은 등산을 한다.


맨 처음에는 집 뒷산으로 시작했다. 데크가 깔려 걸어 다니기 좋은 곳도 좋지만, 아이들은 흙길을 훨씬 더 좋아한다. 계절마다 땅의 강도가 달라진다. 비 오는 날에는 질척 질척한 땅을, 한겨울에는 꽁꽁 얼어 딱딱한 땅을 밟게 해 본다. 새싹이 피어나는 봄에는 얼었던 땅이 녹으며 생명이 숨 쉬는 땅이 된다. 여름철은 땅에서 습습한 냄새가 난다. 도심에서 이런 흙의 특징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산이다.


아이랑 지난 2년간 다양한 산을 경험했는데, 우면산이나 인왕산등 거친 산은 아이의 도전 정신을 자극할 수 있어 좋았다. 개인적으로 서울 내에서 가장 추천하는 산은 안산이다. 안산은 정상 봉수대까지 높지 않으면서 데크길, 계단길, 돌길, 숲길 등 코스가 다양해서 지루하지 않다. 특히 돌길이 쭈욱 나오는 암벽을 좋아하는데, 스파이더맨이라며 다람쥐처럼 네발로 기어 올라간다.


돌산은 안전모를 챙겨 아이 스스로 책임감 있게 등산하게 만든다.


키즈카페보다 더 스릴 있는 암벽 코스는 아이가 자기 몸을 움직이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로프를 잡고 내려가야 하는 가파른 코스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안전모를 씌워 달라고 한다. 떨어질듯한 절벽처럼 가파른 계단에서는 꽃게처럼 옆으로 내려갈지, 엄마 뒤에서 내려갈지 모두 아이가 결정한다. 나는 뒤에서 조용히 도와줄 뿐이다.


키카의 집라인이 아닌 실제 로프 덕분에 도전정신이 생긴다.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공으로 가득 찬 볼풀장은 없지만 빨갛고 노란 열매와 형형색색의 꽃들이 가득 찬 숲 길은 아이의 보물창고이다. 산은 화려한 뽀로로 음악 대신 바람소리와 새소리, 나뭇잎이 바스락 거리는 자연의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추운 날 산 정상에서 아이는 라면을 먹고, 나는 믹스커피 한 잔을 먹는다. 서울이 한눈에 보이는 이곳이 뷰맛집이다.


산 아래에서는 영상권이지만 산의 정상은 제법 쌀쌀하다. 이런 날에는 정상에서 라면과 믹스커피를 마신다. 초여름에는 하산길에 아이스크림 아저씨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먹는다. 서울이 한눈에 보이는 이곳이 뷰맛집이다. 나는 오늘도 아이랑 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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