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러 둘러 가는 길
하루 24시간이 모자라
선미의 말대로 하루가 24시간이 모자라다. 워킹맘에 미취학 남매 육아, 요리에 자잘한 집안일까지 홀로 한다. 최근엔 잠을 쪼개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정말로 24시간이 모자란 삶을 해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애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빨리"랑 빨리의 순화된 버전인 “부지런히” 일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아침에도 애들에게 “부지런히 밥 먹자”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등산을 가는 날만큼은 "빨리"와 "부지런히"같은 재촉하는 말을 넣어두기로 약속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등산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정상을 올라도 좋고, 못 올라도 괜찮다. 올라가는 길가에 핀 꽃과 나무를 관찰한다. 뛰면서 걸으면서 나무에도 올라가고 둘러 둘러 등산을 한다.
7살을 코 앞에 두고 있는 별이, 꽉 찬 3살인 비야까지. 서로 먼저 하겠다는 게 일상이다. 특히 별이는 동생이 자기보다 앞서 가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고 있다. 문제는 둘째가 아직 어려 아빠 등에 업혀 등산을 하는 야매 등산러라 동생이 먼저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성격 급한 별이는 부리나케 쫓아가지만 무거운 둘째 때문에 빨리 올라가서 쉬려는 아빠의 발걸음을 잡기엔 역부족이다. 아뿔싸. 등산은 시작도 못했는데, 벌써 목소리에 분한 울음이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별이야 엄마가 뭐라 그랬지?
빨리 가든 늦게 가든 우린 모두 정상에서 만나
그제야 무작정 정상을 향해 올라가려는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핑크색 돌을 발견했다며 기뻐한다. 많고 많은 나뭇가지 중에 그립감이 좋고 길이도 적당한 걸 골라 매직 원드라며 다른 한 손에 쥔다. 이내 또 다른 멋진 돌을 발견한다. 아쉽지만 손이 두 개밖에 없어 결정해야 한다. 새로 찾은 네모 돌을 가져갈지, 아니면 핑크색 돌을 가져갈지. 이렇듯 아이는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고 있다. 엄마는 마흔이 되도록 나물 반찬을 싫어한다는 취향 정도만 알고 있는데, 6살부터 자신만의 취향 찾기라니.
어른에게 등산의 목적은 정상까지 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와의 등산은 좀 더 다르다. 한 눈 팔며 올라가는 게 일상이다. 자연의 변화를 탐색하고 관찰한걸 엄마에게 조잘조잘 말해준다. 바닥에 떨어진 새빨간 열매 하나를 소중하게 주워 "엄마 선물이야."라고 준다. 책에서 본 나뭇잎 바스켓을 만들어 담아주겠다며 큰 나뭇잎을 찾겠다고 샛길로 벗어나며 호들갑을 떤다. “빨리 가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꾹 눌러 담는다.
등산 중에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없다. 각자의 시선은 정상을 향할 수 있고, 아이처럼 길가에 핀 꽃을 향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화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마치 차 안에서 우리가 편안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별이는 등산길에 어린이집 이야기를 종종 한다. Y가 나를 밀면서 새치기를 했는데 눈물이 나올 뻔했다는 이야기. H가 게임할 때 나보고 맨 마지막에 하라고 한다는 이야기.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았던 일을 이야기하다가 이내 보라색 계란꽃을 찾았다며 나풀나풀 뛰어간다. 이렇듯 등산은 부정적인 감정을 내뱉고 자연 속에서 치유하게 만든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폭식, 게임, 최근에는 쇼츠까지. 결국 도파민을 자극시켜 스트레스를 푼다. 고통 없는 보상은 결국 더 강한 도파민을 찾게 된다. 하지만 등산은 그렇지 않다. 어찌 됐든 정상까지 올라가는 힘든 고통을 택한 것이다.
고통을 선택하는 건 또 다른 방법으로 도파민의 양을 증가시키는 방법이다. 운동과 같은 고통을 선택하고 몰입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산다는 점이다. 하지만, 고통 없는 도파민, 예를 들면 쇼츠나 릴스등은 결국 더 큰 도파민을 원하게 만든다. 고통 없이 보상을 받게 되니 고통이 따르는 장기계획은 견딜 수 없게 만든다. 고통 없는 보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건 차단밖에 없다.
몰입 저자, 황농문 (서울대학교 교수)
틀에 얽매이지 않는 고통 선택하는 과정인 등산을 하며 아이는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삶의 태도를 배운다. 그 과정에서 자연에 몰입하고 자신만의 놀이 아이디어를 낸다. 이런 과정에서 별이와 비야가 행복한 삶을 살면 좋겠다. 체력이 허락하고 아이가 같이 간다고 할 때까지, 아이랑 같이 등산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