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를 마주할 용기
출근길 무의식적으로 들리는 스타벅스에 유난히 사람이 많다. 스타벅스앱 화면에 프리퀀시 팝업이 떠있다.
벌써 프리퀀시의 시즌이라니.
이 글을 쓰며 한 달 조금 남은 2023 스타벅스 플래너를 1월부터 손으로 촤르륵 넘겨본다. 남들 다하는 새해다짐인 “영어 열심히 공부하기”라는 명목으로 영어 몇 줄을 써놓기도 하고 모르는 단어를 적어놓기도 했다. 책을 읽다가 좋은 글귀를 마음에 세기겠다며 적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열심히 적어놨던 페이지를 다시 읽어본 적은 없다.
이 글을 쓰는 11월 끝자락이 돼서야, 2023년 플래너 앞부분에 뭘 썼는지 다시 본다. 24시간 이후에 지워지는 인스타그램 속 스토리와는 달리 플래너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 담은 책의 구절과 생각 아직도 남아있었다. 과거의 나는 사라진 것도 아닌데, 내 과거 부분을 들쳐 볼 생각을 못 했다.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건 끔찍한 일이다. 최근 유치원에서는 연말 발표회 최종리허설이 한창인데, 그중 가장 힘든 건 내 목소리로 녹음된 내레이션을 듣는 것이다. 이걸 학부모 앞에서 튼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저 음원을 만들려고 스무 번을 녹음했는데,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들린다.
아, 저기서 조금만 쉬었다가 말할걸.
좀 더 굴리면서 말할걸.
저 부분은 흘리면서 말할걸.
그렇게 강당에서 스무 번째 녹음파일을 들으며 스물한 번째 녹음을 다짐하고 있다. 과거의 결과물에서 부족한 점을 발견하는 건 꽤나 창피한 일이다. 코로나 규정이 완화되고 오랜만에 간 여탕 탈의실에서 괜히 혼자 옷 벗는 게 멋쩍은 처럼, 과거를 바라보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막상 옆에 아줌마들은 내가 옷을 벗든, 다시 입든 신경도 안 쓸 텐데. 하지만 이런 부끄럽고 창피한 과정을 거쳐야 부족한 점이 들리고,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난다.
요란한 플래너의 앞달과 달리, 텅 빈 중간달 부분을 보는 것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갑자기 왜 8월은 텅 비었는지 궁금해진다. 사진첩을 보고 8월에는 뭘 하고 있었는지 추측해 낸다. 8월은 방학, 24시간 육아, 시어머님의 말기암 투병등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11월 끝자락에 8월 페이지를 펼쳐 구구절절한 변명을 적어놓는다.
다시 출근길 방앗간, 스타벅스.
J.P.라고 명찰을 단 파트너가 내 주문을 받아줄 때까지 괜히 카운터에 샘플로 비치된 2024 플래더를 뒤적거린다. 그러곤 결국 빨갱이 프리퀀시를 받기 위해 (500원 정도 더 비싼) 시즌 음료인 토피 넛 라테를 주문한다. 다가오는 2024년 플래너는 빼곡히 채우는 것보다, 더 자주 앞부분을 들춰봐야지라고 다짐하며.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서로 대화하고 투쟁하며, 더 나은 미래의 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