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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Nov 28. 2023

재우냐 먹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워킹맘의 독감생존기

별이가 독감이네요.


비상이다. 남편은 내일 당장 신년 특집호 출장이 잡혀있었다. 계약직 강사인 나는 연차는 없고, 꼭 필요한 경우에는 대강을 구해야 한다. 맞벌이로 양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두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서러울 때는 아이가 아플 때다.


내 인생의 두 줄은 임신테스트기가 끝인줄 알았지


올해는 3살 비야가 법적 전염병인 수족구를 세 번이나 걸렸다. (또족구는 어린아이를 둔 워킹맘의 숙적이다.) 수족구의 격리기간은 일주일. 그렇게 남편의 연차와 나의 대강, 지방에 살고 계시는 친정엄마까지 돌아가며 여름-가을 수족구 기간을 버텼다. 그러니 남아있는 연차가 있을 리가. 여행이라도 다녀와서 연차가 없는 거라면 덜 서러울 것 같다.


급하게 지방에 살고 있는 친정엄마에게 호출을 한다. 현재 친정엄마는 폐암수술을 3번을 한 아빠를 옆에서 케어하고 있다. 사실 아빠는 폐암 환자답지 않게 잘먹고 잘자고 건강한편인데, 엄마에게 정서적으로 굉장히 의존하는 중 이다. 친정 엄마보고 내일 하루만 도와달라고 읍소했더니, 친정아빠 항암이 내일모레니깐 '내일 하루는 괜찮을 것 같더라'는 답변을 받았다. 부랴부랴 KTX기차표를 예매하고, 수요일에는 남편 연차, 목요일에는 내가 대강을 세우는 걸로 계획을 세웠다.



속 타는 엄마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애들은 병원진료가 끝나고 받은 비타민이 안 까진다며 옆에서 보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열이 올라오는 첫째는 손발만 씻기고 마스크를 씌워 침대방으로 격리시킨다. 오빠바라기 둘째는 오빠를 보기만 할 거라며 옆에서 알짱거린다. 평소에는 쳐다만봐도 으르렁 거리더니, 꼭 이럴 때만 절친이다.


어제 고열로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이내 침대방이 조용해진다. 아, 저녁을 아직 안 먹었는데.

 

저녁을 먹여야 하나, 재워야 하나?


개인적으로는 우리 몸은 원하는 것을 찾는다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짠 음식이 유난히 땡기는 날에는 몸에서 소금이 필요한 것이고, 물이 땡기는 날에는 몸에서 물이 필요한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 몸이 피곤해서 졸음이 온다는 건, 몸이 잠이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으로 아플 때, 내 몸은 잠과 음식 중에 잠을 택한다. 그런데 그건 내 사정이고.


삐뽀삐뽀 119를 쓴 소아전문의 하정훈 전문의 소견은 다음과 같다.

"보채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는다면 자는 아이를 굳이 깨워 해열제를 먹일 필요는 없다”면서 “다만 생후 3개월이 되지 않은 아기가 열이 나면 병원을 찾을 필요가 있다" (연합뉴스)


전문의가 아무리 저렇게 말해도, 엄마마음은 한 숟가락이라도 먹여야 할 것 같다. 한 시간만 재우고, 죽이랑 약을 먹여야겠다고 계획한다. 집 도착해서 아직 옷도 못 갈아입은 채로 앞치마만 두른 채 부지런히 죽을 만든다. 그 와중에 옆에서 둘째는 떡국이 먹고 싶다나.


밥, 동결건조한 야채 한 팩, 물을 넣고 끓인다. 몽글몽글하게 끓는 죽이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한 방향으로 나무주걱으로 돌아가며 섞어준다. 단백질이 빠질 수 없으니 계란 하나를 툭 깨어 올려준다. 참치액젓 한 숟가락까지. 워킹맘의 죽이란 동결건조야채 한 팩과 참치액젓 한 스푼으로 완성된다. 따뜻할 때 먹이고 싶어, 곤히 자고 있는 별이를 깨운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현재 필드에 있으면서 아픈 애를 대하는 법을 배웠고 실제로도 많이 본다. 경계성(느린 학습자), ADHD, 소아우울증 등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방법을 배웠고, 급성 알레르기가 올 때 epinephrine를 허벅지에 신속하게 놓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애가 독감에 걸렸을 때는 재워야 하는지 밥을 먹여야 하는지는 교과서에 나와있지 않았고, 아픈 애를 놓고 남의 집 애를 돌보러 출근해야 하는 워킹맘으로서 선생님의 마음가짐은 왜 안 알려줬나. 출근길 만원 전철 안에서 괜히 우울해진다.


오늘도 각자의 필드에서 고전분투하는 워킹맘과 전업맘들, 우리 모두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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