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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Dec 04. 2023

조회수 12만 냄새 맡아본 날

그 독자 제공 속 독자가 저예요.

단톡방이 왁자지끌 하다. 에디터의 픽을 받아 다음메인에 걸린 동기 작가의 조회수가 1만이 넘었다. 조회수와 라이킷에 연연하지 않고 “쓰는 삶” 자체를 좋아하기로 한지 한 시간이 안 지났는데, 괜스레 내 글의 작고 작은 조회수를 체크해 본다.


몇 번 에디터 픽을 받아 메인에 걸릴 때마다 남편에게 자랑했다. 매일같이 자신이 쓴 기사가 다음과 네이버에 돌아다니는 기자인 남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맨날 조회수 확인 하는 게 신입 기자 같네


총 대신 팬을 들고 싸운다는 기자도 사실 20대의 젊은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니, 기사 너머로 사회초년생의 짠함이 느껴진다. 기사를 취재하고 자기 실명과 이메일이 포함된 바이라인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에 필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 - 다음 백과사전)을 적어 발행 버튼을 누르는 부담감은 20대의 사회초년생이 감당하기엔 얼마나 클까.


21년, 남편은 한국판 퓰리처 상이라는 한국기자상 후보에 올랐다. 당시 후보에 오른 사진은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북한의 사진이었다. 해당 기사 속보가 나오자마자, 파주의 높은 산에 올라가 온갖 수학적 계산과 지리정보를 이용하여 하루종일 셔터를 눌렀고, 몇 천장 중에 딱 한 장에서 연기가 나는 남북연락소 폭파 사진이 있었다. 우연과 노력이 합쳐진 결과였다.

남측 언론사 기자로는 유일하게 찍은 남북 연락 사무소 폭파 장면. 한국의 퓰리처상이라 불리는 한국 기자상을 받은 이 기사의 조회수는 5000 정도였다.


그 해에 같이 올라온 후보는 n 번 방의 진실을 파해친 기사였다. n 번 방이 한국기자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남편은 보도사진부분에서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그때는 둘째를 낳고 조리원에 있었던 시절이라, 남편 혼자 시상대에 올라갔다.)  당시 심사평은 다음과 같다.

전문보도 중 사진 부문에서는 개성공단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장면을 남측 언론사 기자로는 유일하게 담은 국민일보의 ‘폭파된 남북화해의 상징’ 보도가 선정됐다. 끈질긴 노력과 기민한 감각으로 이뤄낸 수작이었다. (한국 기자 협회)


한국 언론계에서 가장 권위적인 상인 한국기자상을 받은 기사의 조회수는 고작 5000 이였다.




용산 어린이 공원에서
전국팔도장터가 열린대.


'토요일에 뭐 하지?'라는 고민 끝에 정부에서 추진하는 동행 프로젝트의 일환인 팔도장터에 갔다. 뛰어놀 수 있는 너른 잔디밭, 아담한 1층 짜리 미국식 주택이 늘어선 거리, 그리고 가득 찬 푸드트럭까지. 10월이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중증 미국병 환자인 나에게 내린 처방전 같은 장소였다. 너무 좋아서, 다음 날 나와 아이들만 다시 방문했다 (남편은 출근).


첫날에는 가방검사도 안 했는데, 두 번째 날에는 입구에서 굉장히 꼼꼼하게 검문을 했다. 음식물 반입은 절대 안 됐고, 음료수는 그 자리에서 한 모금 마셔보게 했다. 가져간 과일도 입구에서 보관할 테니 나갈 때 가져가라고 했다. 인기가 많아져서 진상도 많아졌나 싶었다.


남편 없이 애들이랑만 온 거라 빠르게 마감되는 체험부터 예약하고 천천히 하나하나 둘러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앞에서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렇다. 용산에 VIP, 윤석열 대통령이 깜짝 방문을 했다. 그제야 입장 시 검문이 왜 그렇게 꼼꼼했는지 깨달았다.


혼자 남매 둘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인파가 무서워서 사진 몇 장만 찍고, 서둘러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킥보드를 타면서 놀았다. 애들은 마당 있는 1층짜리 집이 늘어진 길 위에서 킥보드를 타고 있고, 앞에 각 맞춰 정렬된 빅백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남편에게 카톡과 사진 몇 장을 보냈다.

윤대통령이 와서 검색이 철저했던 거였어.
12만 조회수를 기록한 기사 내에 실린 사진 캡션. 독자 제공의 독자가 바로 저예요. 

그 사진을 받은 남편은 사진을 써도 되냐고 묻더니, 윤대통령의 깜짝 용산방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기사를 냈다. 독자제공이라는 바이라인을 달고 남편이 쓱쓱 써낸 기사는 조회수 12만을 기록했다.  



한 해 작성된 기사 중 가장 뛰어난 기사인 한국 기자상을 받은 기사의 조회수는 5000. 윤대통령 깜짝 방문 기사의 조회수는 12만. 두 기사 간 엄청난 조회수의 간격 차이에서 내 글쓰기의 지향점을 생각해 본다. 소설 작법서에서는 사람들이 궁금하고 읽길 원하는 글을 써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에세이는 독자에게 공감도 줘야 하고, 웃음도 줘야 하고, 여운도 줘야 한다는데 그런 글을 쓰는 것은 초보작가에겐 쉽지 않다. 


초보작가인 나는, "글쓰기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아니라 충전될 수 있는 행위"로 유지하자고 되뇐다. 고작 두 달 정도 지났지만, 매일 새벽에 일어나 "읽고 쓰는 루틴"을 유지하는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그렇게 오늘 새벽에도 노트북 앞에 앉아서 고요한 새벽을 온전하게 즐기며 내 생각을 담은 글을 쓴다.


한편으로는 언젠가 내 글도 12만 조회수를 찍을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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