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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Dec 05. 2023

혼콘, 제가 해보겠습니다.

자유부인은 달콤하다, 달콤해

오늘 저랑 콘서트 보실 분?


남편 회사에서 주최한 공연 초대장을 받았다. 부부동반이라 두 명이 참석해야 하는데, 문제는 우리 집 애들이 어려 누군가는 집에서 애들을 돌봐야 한다. 남편은 친구랑 다녀오라며 나에게 양보했지만, 공연시간이 평일 저녁 8시이다. 이 시간에 갈 수 있는 애기엄마가 있을 리가? 대부분의 워킹맘들이 퇴근 후 애들과 퀄리티 시간을 보내야 하는 평일 저녁, 남편 퇴근이 아슬한 시간인 8시. 여러 단톡방에 소리쳤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흔을 코 앞에 둔 12월, 미리크리스마스 겸 혼자 콘서트를 다녀왔다.



누가 봐도 퇴근하고 온 얼굴과 옷차림이다. 추운 바깥온도와 따뜻한 실내온도를 넘나들으며 생긴 번들번들한 기름기가 흘러내린 얼굴. 보일러 빵빵하게 돌아가는 유치원에서 반복한 율동 연습으로 땀에 절여졌다가 나온 떡진 머리카락. 애 둘을 낳고 겨울에는 발목이 시려 항상 찾게 되는 어그 부츠. 발표회 공연에 쓸 샘플 모자와 다이어리등 잡동사니가 가득 들어간 모양이 다 흐트러진 에코백까지. 평일 데이트를 즐기러 온 20대 사이에 끼인 마흔을 앞둔 아줌마는 벌써부터 초라해지는 느낌에 코트 주머니 속 마스크를 슬쩍 꺼내 쓴다.


이렇게 여유로워도 되는 거야? 싶은 월요일 저녁이다.


애들이 있으면 시도도 못하는 멕시칸 음식에 할라피뇨를 추가해서 야무지게 혼자 저녁을 먹었다. 8층까지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가 아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주변 상점을 둘러보며 여유롭게 공연장에 도착했다. 입구에 있는 프로그램책을 사서 화장실도 들렸다가 내 자리에 앉았다. 프로그램은 읽을 생각도 못하고, 사람들이 오기 전에 인증샷만 부지런히 찍었다. 역시나 R석은 공연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을 거리이다.


공연이 시작됐다. 그리고 오케스트라는 새벽글쓰기 노동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네가 거기서 왜 나와?
무한도전 이미지 갈무리


다시 프로그램 책을 읽었다. 가수 이름 앞에 with가 붙어있었고, 1부는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가로 꾸며져 있었다. 가사를 전혀 모르는 일본노래는 새벽 글쓰기의 효율을 높여줘서 매일 듣는다. 제목도 가수도 모르는 음악 덕분에 새벽 글쓰기를 두 달 동안 해왔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니, 노트북 앞에 앉아서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새벽글쓰기 노동요의 이름을 알게 됐다.


새벽글쓰기 파트너 중에 하나인 '마녀 배달부 키키 ost - 엄마의 빗자루'를 현장 라이브로 들으니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같이 웅장하다. '너의 이름은 ost - spakle'은 오케스트라 각각의 악기 소리가 가수를 대신해 음악을 불러주며 콘서트홀을 꽉 채운다. 그리고, 매일 새벽에 한 시간씩 들었던 노래의 제목은 '스즈메의 문단속 ost - suzume'였다. 깨달음의 현장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철에서 다시 한번 오늘 공연에 나온 노래들을 '혼콘'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반복해서 들었다. 새벽에 듣던 노동요에 '혼콘,’ ‘자유부인의 달콤함,’ 혹은, ‘네가 거기서 왜 나와?'라는 스토리가 덧입혀져서, 새로운 노래로 재탄생했다. 이제 이 일본 애니메이션 노래를 들으면 혼콘의 추억과 여운이 남아 노동요로는 탈락이다.


다시 노동요 찾아 삼만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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