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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Dec 12. 2023

미신, 어디까지 믿어봤니?

연말연시, 유명 점집을 찾는 당신에게

미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음 (다음 어학사전)


12월 말 '내 집'으로 첫 이사를 앞두고 있는데, 친정 엄마가 계속 "손 없는 날에 이사해"라며 말했다. 평생 시골 '자가' 단독 주택에서 살았던 엄마는 서울 세집살이에 대해 잘 모른다. "손 없는 날"에 이사한다는 말은 이사비용도 두 배요, 이사 엘리베이터 예약은 3초 컷으로 하늘의 별따기다. 주인집 할머니가 다음 세입자를 구해 내 전세금을 만들어줘야 이사를 갈 수 있는 세입자는 선택권이 없다. 손없는 날 이야기를 세 번째 하는 엄마에게 말했다.

이사하는 날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정도로 바쁘니깐, 그게 손없는 날이라하자.


연말이면 오래 수업을 한 학부모님들 몇 명은 '유명한 집' 있는데 소개해줄까라며 물어본다. 남편이 (이름을 말하면 다 알만한) 사업을 하시는데, 연말연시에 꼭 찾아가는 철학관 있다는 분도 계셨다. 아이가 어려, 4세 고시나 7세 고시등 중요 시험을 앞두고 있는 나이에는 "선생님, 혹시 잘하는 곳 아는 데 있어요?"라며 되레 물어보기도 한다. 요즘은 지문적성검사니 아예 어린 자녀만 전문으로 봐주는 유명한 집도 있다. 손 끝에 있는 지문으로 내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니 실없어 웃음이 나온다. 나중에는 지문 성형도 나올 판이다.


동아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 특히 기존 수요층에 더해, 10-20대가 점집을 찾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하나의 놀이 문화로 번져가는 것처럼.

(...) 소비자 조사 결과, 사람들이 연평균 1.5회 정도 점술상담을 받는다. 연 1-2회 점술 상담을 받는 국내 인구는 약 800만 명 정도이다. 20 대 이상 인구의 약 20%가 온오프라인 점집을 찾는다. (동아 비즈니스 리뷰 - 점술-운세를 미신으로만 보지 말고 미래 불안감 해소라는 가치에 주목을, 375호, 2023년 8월 Issue 2).

타로카드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 사람도, 공원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으면 기분이 좋아한다. 네잎클로버가 행운을 준다는 미신 덕분에. 미국의 점성술 스타트업 co-star는 실리콘 밸리 및 뉴욕 투자사로부터 26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고, 힌두교 기반 역술 앱을 운영하는 AppsForBharat 도 170억 원 투자를 유치했다. 음지에서 알음알음으로 행하던 미신이 이젠 스타트업이 투자 유치를 받을 정도로 시장이 커졌다.


나름 논리적인 지성인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는데도 미신에 의존할 때가 있다. 그 순간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마음이 불안할 때다. 지금도 남편이 나를 놀리든 말든 행하는 미신이 있다. 쿠킹호일로 가운데 손가락 감싸기. 우리 집 애들은 타고나길 기관지가 예민하여 천식약을 지속적으로 먹고 있는데, 감기를 걸리면 항상 '심한' 기침감기로 이어진다. 밤새 기침을 하다가 토하고, 얼굴의 실핏줄이 터지고, 잠을 못 자니 회복은 더뎌지는 악순환을 겪다 보니 온갖 방법을 다 써봤다.


소아과와 이비인후과에서는 "기관지가 예민해서"라는 말로 약을 줬지만 효과는 없었다. 도라지청과 홍삼을 지속적으로 먹여 면역력을 높여줬다. 기침을 할 때는 따뜻한 꿀배차를 마시게 했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수지침 요법을 우연히 봤다. 가운데 손가락에 두 번째 마디에 쿠킹호일을 감싼다는 수지침 요법.

수지침요법. 감기에 걸린 첫째에게 경건하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하는 미신 의식.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 봤을 비과학적 방법이지만 자포자기 심정으로 해봤다. 쿠킹호일로 손가락을 감은 날, 첫째는 밤새 편안하게 잤다. 그 이후로는 기침감기가 심한 날밤마다 경건하게 가운데 손가락에 쿠킹포일을 감는다. 옆에서 놀리는 남편을 무시하고.


운세를 보는 이유 (출처 : 엠브레인 트렌드 리포트, 2022. 목회 데이터 연구소 재가공)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많은 사람들은 미신에 의존한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종교로 그 불안감을 해소하고.) 대부분의 점집에서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주는데, 이를 통해 개인은 마음의 위안과 안정감을 느낀다. 실제로 사람들이 신년 운세를 보는 이유가 마음의 위안과 걱정의 감소적인 이유가 가장 높았다. 교통과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는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고, 사회는 예측은 더욱 불가능한 시대로 변하고 있다.



세계화시대의 다른 말은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코로나시대가 3년이나 이어질지, 자가 격리라는 말이 보편화 될지 누가 알았나. 이 불확실성의 세계에 미신에 의지하는 인구수가 증가하는 건 당연하다. 특히 자신의 앞날이 불분명한 20대는 미신에 더욱 빠질 수밖에 없다. 공채마저 사라진 현 취업시장에서 봉사활동, 인턴, 공모전, 어학점수등 자기 착취를 하며 스펙을 쌓는데도, 그들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대한민국 사회를 정의하는 다른 말은 초개인화(Hyper-Individualism) 시대이다. 즉, 개인은 각자도생을 하며 자신의 불안한 삶에 대한 확실성을 찾아야 한다. 돈, 학벌, 지식탐구, 종교 등에 극단적으로 심취하는 건, 초개인화 시대에 나타난 개인이 선택한 삶의 방향성이다. 그중 미신도 삶의 불안함을 해소하고 자신감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삶에 대한 확실성의 여러 방안 중 하나이다.


누가 미신을 믿는 사람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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