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애랑 일반 응급실 체험기
2주 전에 큰 아들이 독감에 걸린 이 후로 잔기침이 지속 중이다. 어렸을 적부터 기침감기가 심했던 아이라 기관지에 좋다는 건 과학적이든 민간요법이든 다 해보고 있는데도, 결국 독감의 끝은 지독한 기침감기가 지리하게 이어지고 있다. 기존에 다니는 소아과와 이비인후과에서는 콧물이며 가래며 특별히 기침이 심하게 날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시고, 코미시럽 같은 일반 시럽만 처방해 주셨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도서관에 차 타고 가서 책을 반납한 게 바깥활동 전부인 일요일. 오후부터 첫째 별이의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다. 급한 대로 네뷸라이저에 (우리 집 상비약인) 기관지 확장제, 스테로이드, 식염수를 넣고 호흡기치료를 하는데도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왜 애들은 꼭, 일요일 저녁에 증세가 심해질까. 아이의 기침은 점점 심해진다. 기침 소리가 이젠 컹컹거리며 공명 소리가 난다. 애미의 촉이 온다. 저 기침은 범상치 않다. 일요일 근무 중인 남편에게 언제 오냐고 물어보며 현 상황을 공유하고 인수인계를 카톡으로 남겼다. 일요일 저녁 8시에 갈만한 병원을 찾아본다.
서울 내 상급병원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 다행이란 생각에 가까운 병원부터 전화를 돌려본다. 우선 집에서 제일 가까운 이대목동병원의 소아응급실은 더 이상 진료를 안 본단다. (일반 응급실은 상해 환자만 본다.) 그다음 선택지는 야간진료를 보는 구로 아이들병원이나 소아 응급실이 있는 신촌 세브란스. 여기 두 곳은 워낙 환자가 많아 대기가 최소 한 시간 이상으로 길다. 기침이 심한 상황에 대기실에서 기다릴 생각 하니 괜히 데려가기가 눈치가 보인다. 결국은 응급실에서 아이 진료가 가능한 이대 서울 병원으로 맘카페 정보를 읽고 출발했다.
혹시나 침상에서 잠을 자야 하는 경우를 대비해, 잠옷에 플리스를 입히고 구즈다운을 입혔다. 물티슈와 핸드폰 충전기를 챙기고 응급실로 갔다. 도착한 시간은 9:30분. 응급실에 접수하고 40분 정도 대기 후에 응급의학과 의사와 초진을 할 수 있었다. 급성 후두염의 일종인 크룹 같다며 엑스레이를 찍고, 호흡기 치료를 위해 응급실 내에 있는 1인실로 들어갔다. 응급의학과 교수님을 만난 건 접수한 지 두 시간이 채 안 걸렸다. 호흡기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38도가 넘는 열이 나기 시작했다. 요즘 유행하는 폐렴인가 싶어, 피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포도당 수액을 맞으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이 기다리는 과정에서 얼마나 초조하던지. 양가 도움 없이 맞벌이 두 자녀를 키우는 집은 이런 육아의 변칙성은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이번주 내내 출장인 남편은 내일부터 제주도행이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근무하는 유치원은 연말 발표회가 나흘 후. 매일 연습 중이라 빠질 수 없다. ‘제발 입원은 안된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지금이라도 3시간 거리에 사는 친정엄마에게 호출을 할까, 아니면 원감님께 (대강 예고) 카톡이라도 보내놓고, 대강 강사라도 구해볼까. 이제 시계는 자정을 향해 가고 있다.
피검사가 결과가 나왔다. 다행이다. 피검사 결과 염증수치는 정상. 어느덧 열도 해열제 복용 없이 저절로 정상체온으로 내려갔다. 한 시간 동안 한 호흡기 치료가 효과가 있었는지, 아이의 기침이 호흡곤란 수준은 벗어난 느낌이다. 의사 선생님은 입원하고, 소아과 의사 선생님과 협진을 통하여 진료를 보고 집에 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신다.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 워킹맘은 입원은 ‘선택’이란 말에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내일 어린이집 갔다가
소아과에 가면 되겠다.
이렇게 진료를 보고 나온 진료비는 5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지난번 독감검사비용이 3만 원인 거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거기에 접수하고 응급의학과 교수님을 2시간도 안되어 만날 수 있다니. 교수님은 첫째가 잠투정에 울자 호흡곤란이 올까 봐 수납창구까지 오셔서 케어해 주셨다. 정맥주사를 놓아주신 간호사분들은 주사를 맞고도 안 우는 첫째가 얼마나 씩씩한지 칭찬해 주셨다. 이런 서비스를 받고도, 고작 5만 원이 채 안 나오다니. 미국 유학 시절 대학교에서 연결해 준 의사를 만나 5분간 진료를 보고, 300불을 수납한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역시 한국은 의료천국이다.
이런 의료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나라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게 다행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소아 응급실은 줄어들고 있다. 서울권 내에서도 일요일 밤에 아픈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병원이 몇 곳 없다. 현재 탑 5 병원을 20-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지만, 막상 아이가 아프니 갈만한 선택지가 많이 없었다. 소아응급실을 운영하는 상급병원이 몇 군데만 남으니, 이 몇몇 병원으로 환자가 몰린다.
서울에도 이 정도로 갈 병원이 없는데, 거점병원이 몇 개 없는 지방은 오죽할까 싶다. 저출산 시대에 아동환자가 점점 줄어드는 소아과와 소아응급실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는 당연하다. 분만 산부인과가 사라져, 옆 도시 산부인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낳는 산모가 생겼다. 이제는 어린아이도 상급병원으로 가는 119 구급차 안에서 호흡기 치료를 받는 등의 처치받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맞벌이에게는 긴급 돌봄 서비스의 부재 역시 아쉽다. 아이가 익숙한 이모에게 꾸준히 돌봄 서비스를 받았다면, 입원해야 한다라는 의사의 말에 입원을 시키고, 다음 날 이모님과 바통터치를 할 수 있었다. 호흡곤란이 올 정도의 기침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치료를 받고 마음 편하게 퇴원할 수 있어야 했다. 구청에서 긴급 돌봄 서비스를 신청하려고 하니, 중산층 맞벌이는 해당될 수 없는 소득구간에 속해있어야 했다.
물론, 누군가에겐 소아응급실을 늘려달라, 맞벌이가정에게 돌봄 서비스를 해달라는 내 바람이 쌩떼일 수도 있다.
네가 대기가 긴 병원으로 안 간 거잖아?
네가 일하기를 선택했잖아?
우리나라는 전례없는 저출산 시대에 살고있다. 높은 집값과 여성교육의 확대 등으로 맞벌이가 암묵적으로 사회적으로 '동의'가 된 맞벌이 시대. 육아휴직을 4년간 연달아서 쓴 같은 동료에 대한 험담이 아직도 인기 게시글에 올라오는 혐오 사회가 바뀌어야한다.
아이가 아프면 걱정없이 갈 병원이 있고 아이가 아픈 다음날 출근을 걱정하지 않는 사회, 그리고 그 상황을 이해해 줄수있는 포용심있는 사회로 변해야한다.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보통의 부부가
아이 한 번 낳아봐. 진짜 좋아
라고 적극 추천 할 수 있는 사회가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