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록스 예찬
라떼가 유학을 한 곳은 겨울은 9개월, 눈은 6개월 동안 내리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1년 내내 반바지에 flip-flops (쪼리)를 신고 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다. 바닥은 어제 내린 눈으로 진창인데, 위에는 후드집업, 아래는 반바지에 쪼리를 신은 동기들은 볼과 귀가 빨간 채로 강의실 건물들 사이사이를 누비며 걸어 다녔다. 하지만 서퍼들을 위해 만든 어글리 슈즈 크록스 덕분에 쪼리 파는 점점 사라지고, 크록스 파는 세를 확장했다. 그 결과 365일 크록스를 신는 극단적인 크록스파가 생겨났는데, 그게 나일 줄이야.
유치원에서 보이는 365일 크록스파 친구들처럼, 나도 크록스를 좋아한다. 처녀시절에는 신발 앞부분이 뭉툭해서 신으면 비율도 못생겨지는 크록스는 거들떠도 안 봤고, 다리를 얄팍하게 해주는 최소 3센티 힐이 들어간 구두만 신었다. 날씬해 보이는 뾰족코는 필수. 그렇게 멋 부리던 아가씨는 어디로 가고, 크록스 밑창이 다 닳아서 미끄러질 때까지 신는 아줌마가 됐다. (여기서 언급하는 크록스는 굽이 있거나 샌들 말고, 크록스 순정 라인을 말한다.)
미취학 아동을 둔 엄마는 갈 수 있는 곳이 정해져 있다.
봄에는 미세먼지가 심해 하원 후 바로 집으로 와야 하는 날이 많다. 그럼 편하게 벗을 수 있는 크록스가 최고지 뭐. 혹 놀이터에 가더라도 걱정 없다. 봄날씨는 날이 여름처럼 덥지는 않다. 애를 낳고는 발가락과 발목이 시려 한여름에도 양말을 신어줘야 하는데, 양말을 신고 슬리퍼를 신으면 그렇게 40대 아저씨 같다. 40대 아줌마가 이런 걸 걱정하다니 우습다. 고민하다 결국 크록스를 신고 어린이집으로 애들을 데리러 간다.
여름. 물놀이와 놀이터, 모래놀이등 하원 후 가야 할 곳이 많은 계설은 크록스가 필수이다. 하원 후 물놀이를 가면 양말만 벗고 물놀이를 하면 된다. 한여름에 남들은 다 한 페디큐어를 안한걸 가릴 수도 있으니 더 좋다. 모래놀이를 다 하고 나올 때는 옆에 있는 수돗가에서 바로 발을 씻고 신어도 되니 걱정이 없다. 폭우가 자주 쏟아지는 장마철에는 바로 비가 좀 와도 “집 가서 씻어 놓지 뭐” 하게 된다. 그래놓고 크록스를 씻은 적은 없지만.
놀이터의 계절 가을이다.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킥보드와 자전거를 쫓아다녀야 한다. 슬리퍼를 쩔걱쩔걱 끌며 쫓아다니는 것보다, 크록스 끈을 뒤로하고 쫓아다니면 안정적으로 쫓아다닐 수 있다. 나무와 풀이 무성한 공원에서 잠자리를 잡느라 뛰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려면 양말 + 크록스 +긴바지가 필수이다.
겨울은 '발도 시린데, 어그부츠를 신고 나갈까?' 하다가 신고 벗기 불편한 걸 생각하며, 결국 두꺼운 양말을 신고 크록스를 신게 된다. 애들 신발들로 가득 찬 현관에 커다란 어그부츠를 놓을 자리도 없다. 겨울이라 추워서 어디 못 가고 집으로 오니깐 바로 벗을 수 있는 신발에 손이 자주 간다. 혹시나 눈이 와서 바깥에서 눈사람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면, 물에 젖은 어그부츠를 말리는 것보단 신발장에 막 벗어둔 크록스를 자연 건조 시키는 게 맘 편하다.
북극 한파가 몰아쳐 체감 기온이 영하 25도인 날에도 유치원 신발장에 보이는 크록스를 보며 내심 기쁘다. 샤이 크록스 파는 외친다.
크록스파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