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내내 Feb 28. 2024

나도 봄방학을 즐기고 싶다.

가위질, 끝이 있기는 한 거지?

너무 춥다. 애들이 있을 때는 절절 끓던 교실은 냉랭한 기운만 가득하다. 얼어붙은 손끝으로 아이들의 이름표, 환경판에 쓸 예쁜 그림을 코팅하고 오려야 한다.


이놈의 가위질은 언제 끝나 도대체.

 

12월 셋째 주 목요일, 혹은 금요일. 대부분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졸업식(또는 수료식)을 하고 봄방학을 했다. 매 해 졸업식 날, "어머님의 은혜" 같은 합창곡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줄줄 나온다. 화장이 지워질까 눈물을 꾸욱 참는다. 1년 (혹은 3년)이란 긴 여정의 마지막 추억 사진을 찍고,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 돌아갔다. 그동안 정들었던 아이들을 다 보내고 헛헛한 마음을 추스른다. 이제부터 새로운 아이들을 맞을 준비 해야 한다.


각 연령별 새로운 담임선생님과 부담임 선생님을 만난다. 우리 유치원은 웬만해서 교원이 바뀌지 않는 유치원이라, 새로운 담임선생님은 한 명뿐. 다만 연령대와 교실이 바뀌었다. 올해 영어 특강은 주로 2층에서 수업을 한다고 전달받았다. "아, 그 교실 인터넷 잘 안되지 않아요?" 라며 실장님에게 운을 띄어본다. 새 학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인터넷이나 컴퓨터 같은 외부 기사가 와서 수리해야 할 물건들은 빨리빨리 행정실장님들에게 말해야 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바닥에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놓아 겨울에는 오히려 수업하는 나는 땀을 뻘뻘 흘린다. 그래서 겨울에는 두꺼운 외투 안에 얇은 옷을 입고 갔는데, 아차. 봄방학에는 아이들이 없어서 보일러를 안 틀었단다. 거기에 1년간 묵힌 떼를, 아니 스티커 자국들을 없애느라 한편에서 스티커제거제를 계속 쓰고 있다. 제거제 특유의 지독한 냄새로 환기를 시켜야 한다고 창문을 다 열어 놓으셨다. 손 끝이 얼어붙기 시작한다.


빨리 끝내버려야겠다. 교실 꾸미기를 시작한다. 연필과 지우개, 색연필, 마커, 풀, 꾸미기 재료 등 소위 워크북을 할 때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교구장에 정리한다. 각 연령별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받고 내가 쓸 수 있게 재가공을 한다.  hello 나 welcome 같은 영어교실스럽게 "Back to School" 디자인해서 뽑았다. 부모님께서 미리 보내주신 아이들 사진으로 사물함과 서랍장에 이름판도 만든다. 궁금한게 생겨 물어보려니, 담임 선생님들은 서류 제출이 아직 안 한 학부모들에게 전화 중이다.


그런데, 이 가위질 끝이 있긴 있는 거지?


아이들이 없는 교실에서 과자를 먹으니 기분이 오묘하다.


테이블 위에는 봉지 과자가 잔뜩 있다. 아이들이 없는 교실에서 과자를 먹으니, 아이들 없이 생일파티라도 여는 기분이다. 추운 자리에 앉아 가위질 계속해서 그런가? 배가 고파져서인지- 입이 심심해서 인지 짭쪼롬한 과자 한 봉지를 먹는다. 옆에서 같이 가위질을 하는 선생님에게 "아휴,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진짜!"라고 괜스레 한마디 해본다.


과자를 한 입 먹으려는데, 점심을 먹으라는 전체 방송이 나온다. 먹던 과자를 내려놓고 따뜻한 급식을 먹으러 급식실로 향한다. 사실 아이들과 밥을 먹다 보면, 내가 밥을 먹는 건지 마시는 건지 모른다. 애들꺼를 챙겨주다 보면 다 식어 빠진 밥과 반찬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만은 아주 뜨거운 밥과 국을 먹을 예정이다. 조리장님은 특별히 매운 반찬과 더 매운 반찬으로 준비해 주신다. 맨날 어린이들을 위한 간장베이스 음식을 먹다가 매운 삼치 조림이라니!! 푹 삶은 무와 소스를 뜨거운 밥 위에 사알짝 뿌려먹으니 기가 막힌다.

동태탕 국물이 으어…시원하다 시원해


밥을 먹고 있는데, 원장님이 쏘신 커피가 도착했다. 이제는 서로의 커피취향을 알아서 그런지, 각자 자신의 커피 하나씩을 들고 자리에 앉는다. 따뜻한 라떼를 마시며 수다를 조금 떨고 다시 추운 교실로 돌아간다. 아... 이제 배가 부르니 나른해지며 졸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추운 교실이 더 춥게 느껴진다.


노곤노곤한 마음을 깨우기위해서는 수다만 한 게 없다. 그렇게 애들한테 치이고서는, 또 하는 이야기가 애들 이야기뿐이다. 00은 영유 가서 잘할는지, 눈물 많은 00은 좀 더 단단해져서 올런지, 영유에서 리턴해서 새로오는 아이에 대한 걱정, 마냥 아기 같았던 6살이 7살이 된다는 말, 올해 신입생들은 어떨지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 한 명에게 얽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퇴근시간이다. (그렇게 가위질을 했는데, 아직도 있다고?) 내일은 핫팩이랑 플리스랑 완전 무장하고 출근해야지 굳은 다짐을 한다.



퇴근을 하며, 집근처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는 애들을 픽업한다. 애들 어린이집도 새 학기 준비로 바쁘겠지. 사정을 빤히 아는지라 등원을 시키면서도 죄송하다. 이번 주에 새 학기 준비를 다 못 끝내면 주말에 출근하셔야 할 텐데. 애들 선생님의 손목에 눈길이 한 번 더 간다. 괜히 3월 새 학기 전에 3.1절 공휴일이 있는 게 아니다. 교사들에게 새 학기 시작 전, 환경정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 나라에서 지정한 빨간 날이라는 상상을 한다.


이제 방학이 끝나간다는 해방감과 안도감을 느끼는 부모님, 첫 부임으로 초조한 신입교사,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는 경력교사등, 우리 모두에게 치얼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