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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May 30. 2024

바야흐로, 대역병의 시대

1년 내내 아픈 이곳은 유치원입니다.

어머님, 우리 재은(가명)이가 38.7도라서 연락드려요.


유치원에서 열이 나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지만은, 유독 이번 환절기에는 유난스럽다. 개인적으로는 끝봄과 초여름을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낮에는 25도쯤의 햇볕 쨍한 여름과 저녁에는 15도 정도의 싱그러운 봄의 계절이 공존하는 초여름. 그런데 이런 계절을 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바이러스도 좋아서 미쳐 날뛰는 날씨다.


5월 말-6월은 온갖 전염병 바이러스들이 창궐하는 시기이다. 밤낮의 일교차가 심해지며 아이들의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타 감기는 기본이오, 수족구, 구내염, 장염, 독감, 코로나, 결막염 등 전염성이 높은 바이러스가 활개 친다. 맞벌이가 많아져서 그런지, 아이가 아프다고 연락을 해도 바로 데려갈 수 있는 부모님들이 몇 없다. 아무런 증상 없는 37.7도 정도의 미열은 해열제를 가방에 넣고 등원을 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씁쓸한 현실이다.


양가 도움 없는 맞벌이로 미취학 아동 2명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입장에서는 미열에 해열제를 보낸 엄마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어느 부모가 아이가 아픈데 기관에 보내고 싶을까. 하지만 유치원 종일반 방학에 이미 연차를 10개 정도 쓸 예정이고, 병원에서는 수족구나 독감은 아니라고 한다. 그럼 미열 37.7도에 연차를 쓰지 않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법적 전염병인 수족구(7일 격리), 독감(4일 격리), 혹은 장염(설사나 구토가 멈출 때까지)인 경우 부부의 연차를 갈아 넣어야 하기 때문에 최후의 보루로 남겨놔야 한다. (30대 부부의 연차는 보통 다 합쳐서 30개가 채 안된다.)


증상이 없이 미열만 있던 아이 목에서 붉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아이는 수족구였다. 수족구는 전염성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쉽게 전염된다. 특이 나이가 어릴수록 전염성이 심한데, 우리 딸은 2살 어린이집을 다녔던 시절에 수족구를 1년에 3번을 걸렸었다. 발에 수포가 심하게 났어서 걷지 못했고, 결국 손톱과 발톱이 다 빠졌다. 그걸 1년에 3번을 하니, 수족구라는 글자를 보면 수족구 대신 또족구 혹은 수*구라는 심한 욕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또족구를 3살에도 걸렸었고, 이제 4살이 되어 수족구 유행철을 맞이했다.

심한 수족구에 걸렸을 때, 아이는 못 걷고 누워만 있었다. 수포가 터지며 진물이 나오고, 손톱과 발톱이 다 빠지는 징글징글한 수족구


맞벌이 가정의 가장 큰 걱정은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이다. 다행히라면 다행으로, 저출산의 여파로 아이들이 많이 줄어서 기관의 도움을 이전과 비교하여 다소 쉽게 받을 수 있다. 18년생 첫째보다는 21년생 둘째가 국공립 어린이집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고, 두 명 다자녀라면 웬만한 좋은 어린이집은 다 들어갈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경기도 신도시인데, 시립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다만 저런 전염병이 돌 때 돌봄 공백이 생기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서울시에 긴급 돌봄 센터가 많이 생기고는 있는데, 이는 기관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전염병에 걸린 아이가 갈 순 없다.

서울시 긴급 돌봄 어린이집 (출처: 서울시 홈체이지)


다른 대안으로는 대한민국 복지정책 통합 사이트인 복지로에 가면 아동 돌봄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https://www.bokjiro.go.kr/ssis-tbu/index.do)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시터와 돌볼 아이가 있는 가정 리스트가 있다. 여기에서는 시터가 파견 가정을 선택하는 시스템인데, 당연히 시터는 아픈 아이가 있는 집 선택은 후순위이다. 부모도 아픈 아이를 낯선 사람에게 맡기기가 부담스럽다. 현실적으로는 아이가 법적전염병에 걸리면, 부모가 돌봐야 한다. 집에서 아픈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아이 돌봄 휴가가 의무화되거나 재택근무가 가능하게 해야한다. 아이가 전염성 있는 병에 걸리면 당연히 같이 사는 부모가 돌봐야 하는 당연한 상황이 맞벌이 부부에게는 사치가 됐다.


갈수록 애들 병원비는 덜 나가는데, 우리 병원비가 더 나가!


친한 선배맘들이 나에게 운동은 생존이라며  운동을 강조했다. 태생이 건강체질로 태어났고, 초등학교 내내 태권도 시대표와 육상부 시대표를 했던 나는 병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세 살 터울인 아이들도 큰 이슈없이 자연분만을 했고, 모유수유를 하고 키웠다. 아이들을 키우며 어영부영 보낸 30대 끝에 서 있는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친정엄마의 권유로 먹었던 흑염소와 명절 선물로 들어온 홍삼이라도 간간히 챙겨 먹었던 덕분에, 이 정도를 유지하나 싶다. 요즘 '선재 업고 튀어'가 그렇게 재밌다는데, 볼까?라는 굳은 다짐을 했지만, 저녁 9시에 애들을 재우면서 나도 까무룩 잠이 든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랩탑 앞에 앉으며, "그래, 잠이 보약 이랬어" 라며 어설픈 자기 위로를 하며 새벽 글쓰기를 시작한다.


선배맘들의 슬픈 예언은 정답률이 꽤나 높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감기나 독감에 걸려도 나와 남편은 걸리지도 않고 넘어갔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가 목감기에 걸리면 나도 목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한 번에 3명이 병원을 갔다가, 약이라도 사자면 3만 원 가까이 나온다. 그 무엇보다, 엄마인 내가 아프면 아이 등하원부터 요리, 집공부 등 가정 자체가 올스톱이다.


아이가 기침이라도 하는 날에는 아이에게 홍삼에 아연젤리를 꼬박꼬박 챙겨가며 먹이는 정성의 1%를 나에게 써야 하는 날이다. 먼저 비타민계의 에르메스, 오쏘몰 어쩌고 비타민을 긴급하게 먹는다. 아이의 아연 젤리를 괜히 나도 하나 질겅질겅 먹는다. 찻장에 굴러다니던 레모나 한포를 입에 탈탈 털어 넣는다. 저녁밥은 한우 살코기가 듬뿍 들어간 사골 국물에 밥을 푹푹 말아먹고 다 같이 일찍 불을 끄고 잔다. 내일 아침의 컨디션, 아니 면역력이 훨씬 좋기를 바라며.


어서 빨리 이 지긋지긋한 환절기가 끝나고 여름이 빨리 오면 좋겠다. 적어도 여름 냉방병은 옮지는 않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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