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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Jul 24. 2019

할머니도 엄마도 긴장하게 만드는 녀석. 열무김치.

7월 셋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식당영업을 하던 겨울과 달리, 금요일토요일 영업을 하며 나에게도 하루, 주말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생겼다. 일요일을 즐길 수 있게 되며 생긴 기쁨을 한가지 꼽자면 한달에 한번씩 농부시장 마르쉐를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관심을 갖던 농부님들의 작물을 조금씩 사보고 레시피를 개발, 개선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르쉐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에너지도 한 몫한다. 고집을 갖고 작물을 재배한 생산자들, 또는 요리사, 수공예 작가들..한달에 한번씩 이들의 활기를 느끼기 위해서도 우리집에서 한시간은 걸리는 혜화동을 찾는다.

 이번 마르쉐에는 함께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나누는 모임 ‘나와 만나는 주방’의 멤버들과 함께 마르쉐를 방문했다. 이번에 만난 작물중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코끼리 마늘. 일반 마늘보다도 그 크기가 1.5배에서 2배 정도는 크기에 코끼리 마늘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이름은 마늘이지만 사실, 마늘과는 다른 품종이기에 향이 강하지 않다. 때문에 로즈마리에 재워 대담하게 통으로 구워보았다. 마늘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연한 알싸함, 그리고 파근파근한 식감이 새롭다. 냉큼 농부님께 연락을 드려 박스로 주문을 해 두었다.

 손님들, 수강생은 물론 친구들에게 건강에는 관심이 있지만 시간에 쫓겨 지내다보니 어쩔수 없이 외식을 하거나 인스턴트 식품을 먹으며 지낸다는 고충을 자주 듣는다. 나 역시 회사 생활이 길었던 만큼 이 고충을 느끼며 살았다. 이 때문에도 최근에는 음과 양의 조화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주방에 서는 기회를 늘리는 것부터 마크로비오틱이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주방에 서는 기회를 늘려도,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을 때 칼을 쥐고 즐겁게 요리를 하기는 힘들다. 즐겁지 않은 마음으로 요리한 음식은 먹어도 즐겁지 못하다. 

 때문에, 시간이 났을 때 저장식품, 발효식품을 만들어 두는 편이다. 김치가 대표주자다. 깍두기, 배추김치, 얼갈이 물김치를 지나, 여름을 맞았으니 김치도 바꿔준다. 이번에는 열무 김치이다. 행여나 풋내가 날새라 아기 다루듯 조심조심 절이고 버무려 만드는 열무 김치. 여름내내 밑반찬으로, 비빔국수로 식탁에 오르던 이 녀석이 이리도 애지중지 만든 음식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에는 몰랐다. 눈대중으로 거칠게 음식을 하시는 할머니도, 조리를 하다가 생긴 음식물 쓰레기를 싱크대로 휙 던지기까지 하는 우리 엄마도 열무김치를 담글 때 만큼은 마치 스펀지케이크를 만들듯 조심스러웠다. 당연하게 식탁에 오르던 것들이 이리도 정성이 들어간 것들이었다. 가족과 함께 먹을 나의 마크로비오틱 열무김치를, 나도 조심스럽게 양념에 버무렸다.

 여름을 맞았으니 국물도 바꿔준다. 여름철 대표 국물요리라면 오이 냉국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 입맛에 익숙한 오이 냉국은 설탕을 풀어넣어 새콤달콤하게 만들어 낸것. 강한 음의 성질을 지니는 오이, 식초, 설탕은 아무리 여름이라해도 썩 좋은 조합이 아니다. 이런 자극적인 오이냉국이 우리집 식탁에 오를리 없다. 국물이 구수한 콩나물 오이냉국이 우리집의 여름철 국물요리. 콩나물과 오이를 건져먹고 난 뒤 국물에 밥을 말아 오이지를 곁들여 먹으면 지상 낙원이 따로 없다. 채식을 하기에 냉면과 삼계탕을 먹지 않지만 나는 이렇게 더위를 이겨낸다. 여름을 맞아 채식을 하면 몸보신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종종 듣는다. 육류를 섭취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기가 없으면 몸보신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운 여름철, 육류는 잠시 기운을 북돋아 줄수도 있겠지만 대사도 쉽지 않으며 체내 수분 배출을 방해하기 까지해 여름철 체내 밸런스를 유지하는데에 좋은 음식은 아니다.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오는 육류보다는 제철 채소, 곡류와 적절한 염분섭취가 자연스럽게 몸을 식히고 땀으로 부족해진 염분을 보충하는데에 도움이 된다.

 마르쉐에 갔더니 반가운, 그리고 그리웠던 채소가 보인다. 오크라. 일본에 있던 시절 즐겨먹는 채소이다. 생긴것은 고추같이 생겼으나, 맵지는 않다. 고추보다는 껍질째 먹는 콩류와 비슷한 식감인데, 썰어보면 마와 같이 끈적한 액체가 나온다. 겉은 아삭, 속은 끈적한 신기한 식감이라 처음 먹어보는 사람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수도 있겠다. 나에게는 일본에 살던 시절, 낫토, 간 마, 시소, 우메보시 등과 함께 차가운 소면에 오크라를 올려먹는 것이 여름철 단골 점심 메뉴였다. 연두부위에 올려 간장을 끼얹어 먹는 것 또한 별미였다. 게다가 만들기 간단하기까지 하다. 일본에서는 여느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수 있는 재료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특수채소취급을 받고 있다보니, 듬뿍 사용할수는 없다. 아쉽지만 얇게 썰어 스프 위에 토핑으로 얹었다.


 그렇게 준비한 지난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오늘’의 마크로플레이트

현미밥

오크라를 띄운 콘스프

꽈리고추와 템페조림

생강간장에 재운 가지

호두소스 오이무침

속을 채워 구운 오이 고추

코끼리마늘과 당근 구이

지난주 밑반찬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템페요리 레시피를 만들었고 이것을 바로 식당에서도 선보였다. 템페라는 생소한 재료, 그리고 꽈리고추와 졸이는 새로운 음식에 손님들이 당황하지 않을까 했지만 돌아오는 빈접시를 보니 꽨한 걱정을 한듯 하다.

 가지는 몇주 전에도 직접 만든 쯔유에 재워 내었는데 그때보다 조금 더 녹는 듯한 식감으로 만들어 보았다. 이번에는 가지를 썰어 그대로 기름에 튀긴뒤 생강 간장에 재웠기에 지방의 소화를 돕는 무를 곁들였다. 

 농부님이 보내주신 코끼리 마늘은 처음 선보이는 재료이니, 여러 조리를 더하지 않고 그대로 간을 하고 로즈마리와 함께 굽기만 했다. 대담하게 마늘을 통으로 구웠지만 마늘 특유의 아린 맛이 적기에 손님상에 올리기에도 부담이 없다.

 늘 쌈장에 버무려 먹곤 하는 오이고추에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다. 감자로 필링을 만들어 속을 채운뒤 구워보았다. 친구와 함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양념한 크로통으로 속을 채운 오징어요리가 아이디어의 원점이었다. 마크로비오틱을 하는 사람이니 가급적 정제한 밀가루는 피한다. 때문에 정제한 밀가루로 만드는 크루통을 사용하기 보다는 제철 감자를 사용하고, 오이고추의 씨까지 버리지 않고 다져넣는다. 여기에 식감을 잡아주고 과하게 음성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아줄 비밀의 재료까지 넣으니 손님들이 오이고추 속의 정체에 대해 묻기까지 한다. 

 메뉴가 한가지만 있는 것은 손님들에게 선택의 권한이 없는 것도 같아, 늘 사이드 메뉴를 하나씩 준비해둔다. 지금까지는 계절채소를 사용한 전이나 허브향 템페와 채소구이를 내었는데, 신메뉴로 통밀또띠아를 도우로 사용한 피자를 내었다. 기본 재료로 사용되는 토마토가 철이 아니기에, 지금까지 피자는 손을 대고 있지 않은 메뉴였는데 드디어 피자를 낼 수 있게 되었다. 통밀또띠아를 도우로 사용했기에 양이 적지만, 한입거리다운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그만큼 준비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시판 통조림, 또는 병조림 토마토도 사용하지 않고 완숙토마토를 오랜시간 졸여 직접 기본 토마토 소스를 만든다. 연두부크림까지 직접 만드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때문에 맛에 자신이 있다. 신메뉴 등장에, 사전에 인스타그램 공지가 없었는데도 오전부터 피자 주문이 이어졌다. 혼자 오신 손님들은 다음주에도 피자가 나오냐며 피자를 위해 친구와 또 오겠다는 약속까지 하고 가셨다.

 어느덧 7월 말. 1년 중 가장 덥다는 대서가 다가오니, 식당에도 여름 옷을 입혀보았다. 브레이크 타임, 바람결에 팔랑이는 데누구이를 보는 것 만으로도 한숨 돌릴 수 있다.

 한동안 미니멀리스트를 예찬하며 내 삶에 필요한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내 삶을 채워왔다. 덕분에 나의 삶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서서 일하기 편한 신발을 사고 손님들, 수강생들 앞에 섰을 때 청결해보이며 움직이기에도 편한 옷을 사 입기에, 옷을 사기 위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쇼핑을 한지는 오래다. 피부관리에는 화장품보다는 평소 식습관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기에, 화장품 역시 이것저것 시험삼아 사기 보다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천연재료를 사용하는 브랜드 제품을 줄곧 사용한다. 하지만 때로는 별것 아닌, 내 삶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기분 전환을 시켜준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지만 마음에 들어 산 수박무늬 천이라던가 비슷한 크기의 그릇이 이미 있지만 내 발걸음을 붙잡은 그릇처럼. 군더더기 없는 삶도 좋지만, 철두철미한 나의 경우, 약간의 군더더기가 때로는 삶을 풍요롭게하고있지않을까. ‘탈 미니멀리즘’을 의식하며 조금은 말랑말랑해져 보련다. 나에게 필요한 것, 내가 평소 좋아하던 것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지금은 ‘내 마음에 드는 것’을 알아갈 시간이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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