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연 Jul 27. 2019

빵과 김치. 다른 듯 닮은 발효의 세계.

7월 넷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얼마전 담가둔 열무김치가 제대로 익었다.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며 동물성식품과 정제된 감미료를 피하기에 김치를 담가 먹고 산지도 시간이 꽤나 흘렀다. 냉장고에 김치가 있으니 언제든 든든하다. 배는 고픈데 반찬이 없을때, 심지어 밥까지 없을때. 열무김치만 있다면 배달앱도 외식도 필요없다. 찬장에 잠들어 있던 소면을 꺼내어, 찬물을 몇번 부어가며 가볍게 삶아, 곧장 찬물에 풍덩. 차갑게 식힌 소면을 채소, 양념에 비비기만 하면 여름 점심은 완성이다. 라면보다 간단하지 않을까. 마크로비오틱과 채식을 실천하며, 라면을 먹지 않은지도 4년은 된 듯 하다. 워낙 오래되었기에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스프를 털어넣을 때, 매캐한 향에 늘 켈록대곤 했다. 여름날 점심. 열무김치 올린 비빔국수를 먹고는 발 뻗고 잠시 쉬는 시간은 참으로 달콤하다.

 6월, 예전부터 점찍어 두었던 빵선생님에게 100%통밀사워도우 수업을 듣고 발효종을 조금 얻어왔다.  이후, 나의 베이킹 수업을 위해 오븐을 프로젝트 하다에 두었기에 복습을 할 기회가 좀처럼 없었는데, 7월 베이킹 수업이 끝나 드디어 선생님 없이 첫 빵을 굽게 되었다. 

 한달은 잠들어 있는 나의 효종씨(발효종)에 밀가루와 물로 밥을 주고 다음날 확인해보니 죽어있던 것만 같던 효종씨가 두배로 부풀어 있다. 발효종을 넣어둔 병에 귀를 대어보니 자잘자잘한 거품소리가 들려온다. ‘살아있는 음식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발효종과 밀, 소금, 물을 섞어 발효 (사실상 방치)시키고 중간중간 크기를 확인하고 조심스레 반죽을 늘리고, 접기를 반복한다. 선생님의 인스타그램을 들춰보며 선생님 반죽은 이렇게 생겼는데 내 반죽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궁금증도 늘어간다. 

내반죽(왼쪽)과 선생님의 반죽(오른쪽)

 그리고 장장 다섯시간의 기다림을 거쳐 나의 빵을 오븐에 넣어줄 시간. 스팀의 역할을 대신 하기 위해 뜨겁게 달아오른 주물냄비에 빵반죽을 넣고 뚜껑을 덮어 오븐에 넣어준다. 오븐과 냄비의 열기 때문일까. 왠지 얼굴이 달아오른다. 내 빵이 잘 부풀까. 돌빵이 되는 건 아닐까. 면도날이 없어 과도로 낸 쿠프는 잘 벌어질까. 걱정 반 기대 반인 마음에 가슴도 두근거린다. 요리를 하며 이런 두근거림을 느껴본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매일 요리를 하기에, 그리고 사랑하는 요리를 직업으로 하기에 이런 설렘과 두근거림을 잠시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가 싶다. 

 약 30분 뒤. 오븐의 종이 올리고 조심스레 냄비를 꺼내 냄비속 빵을 식힘망에 올려주었다. 고소한 빵냄새가 거칠게 벌어진 쿠프사이에서 퍼져나온다. 빵 바닥을 통통 두드려 보니 장구마냥 잘 익은 빵소리까지 들려온다. 선생님, 스팀오븐, 빵틀, 면도날 없이, 이 대신 잇몸으로 만든 내 첫 사워도우. 성공이다! 남들 눈에는 돌덩이처럼 보일 이 빵이 내 눈에는 타르틴베이커리가 부럽지 않은 빵으로 보인다. 어서 이 빵이 식어 단면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이 기쁨을 나누기 위해 빵소리는 영상으로까지 담아 선생님께 보내드렸다. 선생님도 기쁨이 크셨는지 이제 발을 떼기 시작한 나에게 밀과 제분소를 추천해주시고, 여러 밀의 배합, 저온발효까지 권해주셨다. 

 요리를 하며 오랜만에 느껴보는 불안감과 설렘. 그리고 해냈다는 기쁨까지. 나의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들도 집에가서 이런 마음으로 요리하지는 않았을까. 처음 현미밥을 짓는 마음은 오늘 내가 빵을 만든 마음과 비슷할 것도 같다. 내가 수강생의 입장이 되고나서야 비로소 수강생들의 마음을 조금은 느낀다. 그리고 집에서 만들어 본것을 인증하고 싶어했던 그들의 마음도 이제야 공감할 수있다. 잘만들었다, 맛있을 것 같다. 이런 칭찬에 나는 왜 그리도 인색했을까. 그 때는 그저 내가 ‘선생님’이 되었다는 기쁨만이 앞섰던게 아닐까. 더 많이 칭찬하고, 앞으로도 꾸준히 실천할 수 있게끔 도와줄 수 있었을텐데. 지나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사용한 ‘조경밀’은 수분양을 조금더 늘리는게 좋을 것 같다던 선생님의 조언, 그 날의 다른 밀을 사용했던 반죽들의 질감을 떠올리며 나름의 감으로 만들어보니, 나의 조경밀 사워도우는 수업때 보다도 잘 부풀었다. 사워도우는 발효이기에 정확한 레시피가 없다. 김치와도 같다는 선생님 말씀처럼 그날의 온도, 사용한 밀 등의 특성에 따라 시간과 물의 양을 바꿔간다. 빵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김치에는 익숙한 나이기에, 김치를 떠올리며 반죽을 다루니 이해가 빠르다. 김치와 빵. 전혀 다른 두가지 이지만 발효라는 공통점을 갖기에 요리사의 입장에서 이 둘은 많이 닮았다.  

 3월에 만들었던 누룩소금이 똑 떨어졌다. ‘소금’이라는 단어가 붙은대로 소금 대신 사용할 수 있지만, 특유의 감칠맛과 향을 지니고 있다. 요리에서는 설탕은 물론 메이플 시럽, 조청조차 사용하지 않기에 곡물 본연의 은은한 단 맛을 더하고 싶을 때 누룩소금을 사용하기도 한다. 기온이 높아 누룩소금을 발효시키기에 좋은 계절은 아니지만, 시판 누룩소금을 살 가격으로 누룩을 1kg은 살 수 있으니 발품을 팔기로 한다. 2주 뒤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매일 한번씩 누룩소금이 담긴 병을 저어주며 기대하고 있다. 

 쌀누룩을 장만한 김에 아마자케(甘酒)도 만들었다. 쌀누룩을 사용해 만드는 일본의 쌀음료로, 우리나라의 식혜와도 비슷하다. 쌀, 누룩, 물만으로 이렇게 단맛이 날 수 있을까 싶도록 달다. 콜라 등 시판 음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그리 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단 음식을 즐기지 않는 나에게는 이 마저도 달다. 강한 단 맛을 즐기지 않으며 여름이니 산미를 살려도 좋을 것 같아 조금 낮은 온도에서 저온 발효해 요거트 같은 맛의 아마자케로 만들었다.

 열무김치, 사워도우, 누룩소금에 아마자케. 발효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 것이 우연의 일치였을까.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기에 사먹기 일수인 녀석들. 자연에서 얻은 소중한 미생물과 균을 품어야 할 아이들이지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판 제품들은 미생물과 균 대신 감미료와 각종 첨가물을 품어버렸다. 때문에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는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직접 만들어 먹을 수 밖에 없다. 발효와 마크로비오틱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와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발효가 주는 기쁨은 남다르다. 같은 재료로 만들어도 발효방법, 온도 등에 따라 그 맛이 다르다. 그래서 우리집의 김치와 옆집 김치는 다르다. 이 때문에도 발효식품이야 말로 그 집을 상징할 수 있는, 차별화된 맛이라는, 조금은 고지식한 생각을 지니고 있다.  

 나의 발효식품들이 흉내낼 수 없는 맛으로 자리잡아, 나의 플레이트를 작지만 강한 한끼 식사로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한 편, 나의 클래스에서는 이 감의 세계를 어떻게 전달하 것인가. 내가 만든 빽빽한 사워도우에 애플민트와 시나몬으로 맛을 낸 콘샐러드를 곁들여 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팝업식당,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도 엄마도 긴장하게 만드는 녀석. 열무김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