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마지막주의 마크로비오틱 밥상
지난 날 점심에 만들어 둔 샐러드도 있고, 파테도 있겠다. 스프하나만 곁들인다면 빵으로 아침식사를 먹기 좋은 날이다. 다음날 역시 아침 일찍 일어나 양파와 연근을 썰며 부산을 떨었다. 연근으로 포타주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다른 채소를 곁들이면 더 맛이 좋을 것도 같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재료, 연근과 양파만을 사용해 만들어 본 포타주. 연근으로 만든 포타주는 먹어본 적이 없으니 그 맛을 상상할 수 없다. 최근에는 주로, 대충 짐작이 가는 요리를 해왔기에,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상하지 못한채로 만드는 요리는 무척 오랜만이다. 나의 실험에 동참해야 하는 가족들은 고역이겠지만, 일찍 일어나 주방의 주인이 된 나는 미지의 맛을 만들어 나가는 설렘을 만끽했다. (이처럼 요리사의 가족이 되는 것은 절대로 낭만적인 일이 아니다) 맛 뿐만 아니라 재료의 조합을 통한 음양의 밸런스도 고려해야하기에, 마크로비오틱을 따른 레시피를 만드는 과정은 나쁘게 말하면 골치 아픈 일이기도 하지만, 이런 과정을 즐겁게 여기는 사람이기에 이 길을 선택했다.
우엉, 연근과 같은 뿌리채소들에 한참 빠져살았는데, 이제 가을 무가 보인다. 아직은 생으로 먹기에는 아직은 아리지만, 제대로만 익힌다면 밥도둑으로 변신하는 것이 가을무다. 무만 맛있을리가 없다. 이 맘때쯤 파도 제대로 구우면 매운 맛은 사라지고 달달해진다. 마크로비오틱을 만나기 전에는 무와 파는 매운 것, 이라고 단정짓고 늘 만들던 김치, 무 생채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리고 매운 맛이 마크로비오틱의 관점에서 어떤 성질인지 이해하고 그에 맞춘 조리법을 하니 매운 채소라 생각하던 무와 파도 나에게는 달콤한 채소가 되어있었다. 이렇게 제대로 구워 한껏 달콤한 맛을 끌어올린 무와 대파에 냉동실 속 천덕꾸러기로 자리잡고 있던 연두부 크림소스를 올려 오븐에 굽고 다진 쑥갓을 뿌려 그라탕을 만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사에 곁들였던 보리차를 홀짝이며 잠시 쉬었다. 일본에서 지인이 가져다 준 이 보리차는 오카야마 현에서 자연재배를 고집하는 농가가 재배한 보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숭늉같기도 한 맛이 밥과도 잘 어울린다. 여름에 수확하는 보리로 만든 만큼, 어느 쪽인가 하면 음성을 살린 음료이다. 과하지 않은 음의 성질을 가진 보리차를 마셔서 인지, 식사후 가진 티타임에 움츠렸던 몸도 노곤노곤 풀어지고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던 마음도 잠시 쉬어 간다.
건강을 해치며 체력이 떨어지고 몸이 이완된 분들이 많이들 찾다보니, 마크로비오틱을 공부하다 보면 양의 성질을 살린 기본 반찬들을 필수처럼 배우게 된다. 이러한 기본 반찬이 아니더라도, 음의 성질을 덜어낸 조리도 종종 등장한다. 때문에 무의식 속에 ‘음성은 나쁜 것’ 이라는 편견도 자리 잡는다. 하지만 음과 양은 선악과는 무관하다. 내 몸을 중용에 가져오기 위해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필요한 것을 채우면 될 뿐이다. 잔뜩 수축되고 긴장되어 있던 몸과 마음을 음성의 보리차로 이완시켜준 것 처럼. 건강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나를 찾다보니, 떠돌아 다니는 건강 정보를 과신하고 특정 식재료를 떠받들거나 죄인 취급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하지만 들과 물에서 자연스럽게 나고 자란, 생명력이 있는 음식이라면 모두 존재의 의미가 있다. 올해 하반기에 들며, ‘이기적인 마음을 담지 않은 음식’을 만들려 하고 있는데, 생명력을 지닌 누군가를 선과 악의 잣대로 대하는 마음은 이기적인 마음이다. 아무리 건강을 신경쓰는 분들이 나를 찾더라도, 이런 이기적인 마음을 담은 커리큘럼은 만들지 않을 예정이며, 그러한 음식 또한 만들지 않을 것이다.
여러 일을 마치고 돌아와 차리는 늦은 저녁식사. 냉동실에 잠들어 있던 우엉라구와 쑥갓으로 오랜만에 파스타를 만들었다. 그 놈의 글루텐프리 열풍 때문에 역적 취급을 받고 있는 식재료, 밀로 만든 파스타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땅에서 나고 자란 자연스러운 재료들로 만든, 편안하고 감사한 한끼 였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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