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연 Nov 04. 2019

요리도 연애도 ‘적당히’ 해야 하는 법

11월 첫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날이 선선해지니 오븐을 돌려 무언가를 굽고 싶어 진다. 달콤하고 향긋하고 촉촉한 것. 식당과 클래스에서 매주 구우니 머핀은 말고...문득 도구함에 넣어둔 마들렌 틀이 떠오른다. 여름인지 봄에 향긋한 시트러스 향을 품은 마들렌을 굽고 싶었으나 유기농 재료를 구할 수 없어 아쉽게 단념했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엄마가 사둔 귤 생각도. 유기농 레몬은 아직 나오지 않으니 귤로 만들어 보아야겠다. 가을이니 고소한 것도 어울리겠다. 반은 흑임자를 갈아 넣은 흑임자 마들렌을 구워 보아야지.

 마들렌은 버터, 달걀, 설탕을 사용해 만들지만, 우리집에는 이런 것들은 없다. 또한 주재료 중 하나인 밀가루는 사워도우를 만들 때 사용하니 집에 있기는 하지만, 현미가루를 사용한 베이킹에 익숙하기에 이 또한 사용하지 않는다. 주로 마들렌을 만들 때에는 레몬껍질을 사용하지만, 유기농 재배가 아닌 레몬의 껍질을 사용하는 것은 나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이 역시 레몬 대신 귤로 대체한다. 때문에, 나의 마들렌 레시피는 일반적인 마들렌의 레시피와는 전혀 다르다. 프랑스식 정통 마들렌을 배운 사람이 나의 마들렌 레시피를 본다면 펄쩍 뛸지도 모르겠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몸에 주는 부담을 줄인 맛있는 디저트인가 아닌가에 있기 때문이다. 버터, 달걀, 설탕,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지만 일반 마들렌과 다를 바 없이 촉촉하고, 하루 정도가 지나면 더 맛있다는 점 또한 다를 바 없다. 단 것을 즐겨 먹지 않는 우리 가족도 눈 깜짝할 새에 마들렌을 톨톨 털었다.

 얼마전, 오랜만에 연희동의 카페 보틀팩토리에 다녀왔다. 내가 빌린 공간 프로젝트 하다의 운영자이자 보틀팩토리도 운영하고 있는 다운님을 만나기 위해서 였다. 내가 만든 된장을 나누어 드릴 겸, 다운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어 다운님을 찾아갔다. 그것은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나의 팝업식당을 운영한 프로젝트 하다를 11월을 마지막으로 떠나겠다는 이야기였다. 작년 이 맘때에는 상수동에서 채식식당을 할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보틀 팩토리를 찾았는데. 꼭 1년이 지나 이 곳을 떠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난 1년간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의 공간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익숙해진 공간, 프로젝트 하다에서 쿠킹클래스도 몇번 진행했고, 프로젝트 하다 이외의 공간에서도 쿠킹클래스 의뢰를 받아 단기 과정 클래스를 진행해보기도 했다. 마크로비오틱 요리 수업을 통해 마크로비오틱과 지속가능한 삶을 나누기 위해 회사를 나왔고, 퇴사 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빨리, 바라던 쿠킹클래스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업을 통해 전하고 싶은 점,  조리 환경 등 고집하고 싶은 점이 많은, 고지식한 사람이기에, 꿈꾸던 쿠킹클래스를 하면서도 정체 모를 갈증이 남아있었다.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나에게 꼭 맞는 공간에서 내가 바라는 대로 시간을 사용해 가며 나의 수업을 진행하고 싶었다. 그리고 막연히 2020년 봄에는 나의 공간을 얻겠다는 나름의 방점을 정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내가 원하는 두가지 가장 중요한 조건 (내가 사용하기 좋은 넓은 주방을 갖추었는가, 한살림 등 내가 장보고 싶은 상점이 가까운가)을 갖춘 물건이 추석 쯤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마침, 쿠킹클래스는 언제 하냐는 문의를 매주 한 두건 이상은 듣고 있었다.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계약을 하고 정신없이 공간, 커리큘럼 준비를 하며 10월을 보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11월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영업까지 한달. 하지만 마지막 영업을 앞두었다고 해서 무언가 달라질 필요는 없다. 그저 이 한달동안 변함없는 마음으로 우직하게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은’ 밥상을 차려 손님앞에 내면 될 뿐이다. 나의 팝업 식당 ‘오늘’ 을 사랑해준 손님들에게도 이것이 보답하는 마음일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오랜만에 준비한 나의 팝업식당 ‘오늘’의 마크로플레이트

탄탄밥

구운파와 가을 무의 그라탕

들깨미역국

퀴노아와 쑥갓, 단감 샐러드

우엉샐러리조림

찐채소와 버섯 파테

 최근 즐겨만든 것들로 한상을 차려보았다. 탄탄밥은 탄탄면을 덮밥으로 바꾼 메뉴. 탄탄면은 주로 고기와 고추기름 등 각종 자극적인 재료를 사용해 만드는데, 최근에는 여기에 땅콩버터까지 더해 기름이 흥건한 채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 음식은 주로 따뜻하게 먹는데, 여름철에는 차갑게 먹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기름덩어리 소스를 차가운 면에 비벼 먹었으니, 먹고난 후 배를 붙잡고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고기와 기름 대신, 제철을 맞은 뿌리채소와 말린채소로 감칠맛과 달콤한 맛을 살리고, 불필요한 기름을 덜어내어 담백하게 만든 마크로비오틱 탄탄소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청경채와 숙주를 곁들여 면 대신 밥에 올려 내어 가을철 몸을 보하는데에도 도움이 되는 덮밥메뉴로 탄탄면을 재탄생시켰다. 

 국물요리로는 주로 스프나 된장국을 내는데, 최근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건조해지고 있어 온 몸을 촉촉하게 해줄 미역국을 내었다. ‘할머니가 해주신 맛이 난다’, ‘국물맛이 깊다’ 등의 칭찬을 받기도 한 이 미역국은 ‘적당히’ 만드는 것이 포인트라면 포인트다. 하지만 이 ‘적당히’가 어렵다. 기름도 너무 많게도 적게도 아닌 ‘적당한’ 양을 넣어야 하며, 재료를 볶는 시간과 손을 대어주는 빈도도 ‘적당히’가 곧 이 요리의 답이다. 하지만 비단 이 미역국 뿐일까. 요리는 ‘적당히’ 하는 것이 답이 아닐까 싶다. 연애와도 비슷할 것 같다. 너무 정을 쏟기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롱런하는 연애라고들 한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당신의 행복은 곧 나의 행복’ 이라며 정을 쏟는 상대방을 만났을 때, 내심 괴로웠다.) 요리도 마찬가지 이다. 채소를 다질 때에는 과하게 심혈을 기울여 다지면 채소가 가진 수분이 배어나와 식감도 맛도 떨어지며, 반대로 덜 다지면 원하던 자잘한 식감을 얻을 수 없다. 볶을 때에도 덜 볶으면 재료의 맛이 따로 놀고, 너무 볶으면 타거나 식감이 아쉽다. 요리를 하는 빈도 역시 ‘적당히’가 좋다. 요리를 자주 하는 나 역시 요리를 하기 싫은 날이 있다. 그럴 때에는 과감하게 내려 놓는다. 의무감에 불타올라 주방에 서다 보면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닌 어쩔수 없이 하는, 매력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오랜 삶의 동반자로 즐길 수 있으려면 연애든 취미든 요리든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나의 팝업식당에서는 식사와 함께 디저트 메뉴도 준비하는데, 이 역시 한동안 의무감에 불타올라 오랫동안 늘 같은 메뉴를 내었더니 즐기는 마음이 줄어들어 있지 않았나 싶다. 새 레시피를 내어야 하기에 준비에 수고는 들겠지만 만들어 보고 싶은 메뉴가 있으니 일단 즐기고 보기로 했다. 최소한의 기름과 감미료로 만드는 비스킷을 하루라도 빨리 만들어 보고 싶었다. 큼직한 비스킷 열개를 만드는데 기름과 감미료는 몇스푼으로 해결되는 레시피다. 결과는? 즐겁게 만들어서 그런지 대만족이다. 겉은 그래놀라처럼 바삭한 반면 안은 쫀득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오트밀, 견과류 등 그래놀라의 재료들로 만들었으며 쫀득한 식감이 특징이라 ‘퍼지 그래놀라 비스킷’이라 이름을 붙였다. 

 마크로플레이트의 메뉴로 찐채소를 낸 덕에, 환풍기를 틀지 않으면 온 창문에 뿌옇게 김이 서렸다. 덕분에 천연 가습기 효과로 건조하던 실내가 촉촉해지고, 나 역시 포근 따뜻하게 요리했다. 이제 제법 가습기가 그리운 날씨다. 김서린 창밖으로 상수동의 바깥 풍경이 뿌옇게 보였다. 외투를 입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희미하게 보였다. 나의 새출발과 함께 그렇게 계절도 변하고 있었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팝업식당,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매거진의 이전글 이기적인 마음을 담지 않은 음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