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둘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올해 거의 한달에 한번꼴로 무언가 요리에 관련된 것을 배우러 다녔는데, 그 중 가장 활용빈도가 높은 것은 뭐니뭐니해도 사워도우이다.
금요일과 토요일 식당영업을 마치고, 특별한 일정이 없는 일요일에 주로 굽다보니 한달에 두번 이상은 굽는 듯하다. (지난달에는 일요일마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마크로비오틱 쿠킹클래스가 있어서 못구웠지만.) 바쁘고 긴장이 많아 컨디션이 양성화 되어있었는지, 자타공인 밥순이인 나도 최근 아침식사로는 밥보다 빵이 더 잘 맞는 듯도 했다. 11월의 첫번째 일요일. 오랜만의 일요 휴무를 맞아 사워도우를 구웠다. 날이 추워지니 발효종이 크는 속도도, 발효가 되는 시간도 더 잡아주게 된다. 때마침 금강통밀이 다되어 이번에는 조경통밀을 섞었는데 반죽할 때의 질감도, 굽고난 뒤의 향도 달라진다. 약간의 변화로도 큰 차이가 생긴다던 빵 선생님 말씀이 떠오른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에는 자신이 있기에 발효는 문제가 없는데, 늘 성형이 문제라 생김새가 아쉽다. 하지만 조경밀의 양을 늘려서인지 조금더 산미가 강해진 이번 빵의 맛이 무척 마음에 든다. 개인적으로 조금더 산미가 강해진 이번 빵을 좋아하지만, ‘신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모님의 평은 또 다를 것 같다.
빵을 굽고, 예전보다는 즐겨 먹으며 지내지만 점심은 뭐니뭐니해도 밥이다. 남아있던 흰 팥을 톨톨 털어 넣어 압력솥에 밥을 짓고 단호박과 무 된장국, 무수분 채소찜, 우엉대파볶음, 쑥갓전으로 점심을 차려본다. 압력밥솥 한개는 식당에 나가 있고 또 한개는 새로 준비중인 작업실에 나가있어 집에 오래된 밥솥으로 지었더니 고무 패킹이 말썽이라 도중에 고생하며 밥을 지었다. 하지만 압력솥과 현미밥을 맛있게 짓는 원리를 이해하니, 이런 해프닝 중에도 양호하게 밥을 지어냈다. 귀한 흰 팥을 낭비할 뻔했다.
얼마전 식당 메뉴로 낸 우엉 샐러리 조림에 이어 이번에는 우엉과 대파하고 고소한 반찬을 하나 만들었다. 맵지 않고 적당히 향긋하게 볶아진 대파 덕분에 중국음식의 느낌도 난다. 우엉조림말고는 응용방법이 널리 알려져있지 않은 우엉이지만, 그래서 새로운 레시피를 발굴해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최근 우엉으로 만든 요리, 소스로는 우엉라구, 우엉샐러리조림, 우엉 대파볶음이 있는데 모두 대만족이었다.
금요일과 토요일의 식당메뉴로 쑥갓단감샐러드를 내고 남은 쑥갓으로는 전을 부쳤다. 쑥갓과 전의 조합은 지금까지 본적이 없는 듯한데, 왜 시도해볼 생각을 안했는지 모르겠다. 무척 잘어울린다. 쑥갓은 향이 강하기에 쑥갓을 주인공으로 전을 부치면 너무 자기 주장이 강한 음식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파로도 전을 부치는데 쑥갓으로 안될리가 없다. 오히려 줄기부분은 가열한 덕에 적당히 말랑하고 적당히 식감이 남아있어 즐거운 식감의 포인트도 된다. 쑥갓만으로 부치기보다는 당근을 아주 가늘게 채썰어 넣으면 음과 양의 밸런스로도 좋고 보기에도 예쁘다. 부침가루로는 밀가루만 사용하기 보다는 메밀가루, 현미가루를 블렌드하는 것을 추천한다. 너무 바삭해서 튀김처럼 먹기 보다는 녹진한 반죽을 찢어먹는 매력도 있고, 쑥갓의 알싸한 향과 메밀가루의 구수한 향이 무척 잘어울린다.
한편, 오랜만에 즐겨사던 단호박 대신 다른 것을 사보았는데 대실패였다. 물반 호박반인 것 같다. 무수분 채소찜은 수분 없이도 적당히 파근하게 익은 단호박 맛에 먹는 반찬인데...물컹해진 단호박이 참 아쉽다. 여러번 주문하며 그 품질을 검증한 곳의 채소들을 사먹다 보면 점점 채소 보는 눈이 높아져서 인터넷과 마트에 도무지 만족을 못한다. 엄마가 종종 열무 하나 사겠다고 경동시장에 가자고 보채는 할머니를 나무라는데, 나는 백번 이해가 간다. 아마 엄마도 다른 열무로 담근 열무김치 맛을 보면 이해가 될텐데... 이렇게 주방의 주인으로 군림하며 80대까지도 시장에서 재료를 사와 직접 김치를 담가 드시는 할머니도 이제는 쇠약해지셔 냉동볶음밥을 사드신다. 음식에 대한 기준이 높고 본인의 음식에 대한 만족도가 무척 높으시기에 쇠약해지신 후에도 외식, 배달음식은 마다하시고 차라리 떡이나 죽을 드시겠다며 식사를 대충 해결하는 나날이 계속된지 오래되었다. 식사가 이 모양이다 보니 쇠약해지는 정도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결국 포기하셨는지 손을 대신 것이 냉동 볶음밥...게장과 된장을 직접 담그는 우리 할머니가 냉동 볶음밥이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할머니와 냉동볶음밥 이야기에 할머니의 인생에도 큰 변화가 왔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했다. 한편, 직접 만든 음식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외식을 싫어하는 것은 손녀 또한 다를 바 없기에 할머니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분명 그 볶음밥도 마음이 드실리가 없다. 앞으로는 요리는 주로 집이 아닌 작업실에 할 듯해, 만든 음식을 나누어 드릴 일도 적어진다. 답답한 마음에 냉동식품을 드시더라도 조금이나마 몸에 부담이 적은 것을 드시는 것이 좋을까 싶어 한살림의 연잎밥과 볶음밥을 주문해두었다.
쿠킹클래스를 위해 준비중인 작업실도 이제 슬슬 자리를 갖추어 간다. 조명을 바꾸어 달거나 오븐을 들이는 등 많은 일을 했지만 무엇보다도 식물을 들이니 비로소 사람이 생활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난다. 아직 얼마 없는 식물이지만 앞으로 더 늘려갈 생각이다.
주방은 직접 꼼꼼히 청소했는데, 화장실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도 청소하고 싶어, 업체에 맡겼다. 이른 아침부터 작업실에 온 기사님은 장장 세시간 반에 걸쳐 청소를 하시고는, 앞으로 보수가 필요할 가능성이 있는 곳 등을 꼼꼼히 짚어주셨다. 평소 사용할 때의 팁도 빼놓지 않았다. 청소가 끝난 뒤의 모습을 보니, 업체게 맡기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잔소리를 한것도 아닌데, 의뢰인이 말하지 않은 부분도 꼼꼼히 체크해주시고 제법 추워진 날씨에도 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고 가신 기사님에게 내심 감동 받았다. 어떤 일이든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갖고 프로로서 일하는 사람은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청소가 끝난 뒤 작업실 정리를 조금 하고는 그대로 공항을 향했다. 이번주에는 식당영업도 쉬고 언니가족이 사는 홍콩에 다녀온다. 짧거든 언니네 가족이 내년 여름까지만 홍콩에 살듯한데, 그 전에 한번 가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비행기를 예약했다. 쿠킹클래스가 시작된 뒤에는 바빠서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초등학생 조카가 나를 위해 자기 방을 내어주었다. 조카는 내가 지내는 동안 언니 방에서 지낸단다. 늦은 밤, 홍콩의 언니집에 도착해보니 물론 조카는 언니방에서 잠들어 있다. 조심스럽게 조카 방에 들어가 짐을 푸르니 언니가 베개를 베어 보란다. 베개를 베니 부스럭 들리는 종이 소리. 조카가 나를 놀래킨다며 환영인사를 적어두었다.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곳에서는 요리와 일은 잠시 내려두고 푹 쉬고 조카랑 시간을 보내다 갈 생각이다.얼마 있지도 않았는데 벌써 집밥이 그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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