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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Jul 18. 2018

비건 레몬머핀. 레몬이 있는 식탁을 동경하던 시절.

레몬의 가격은 아래로 아래로. 내 나이는 위로 위로.

 10년정도 창고에서 잠들어 있는 오븐을 다시 꺼냈다. 케이크, 과자류는 잘 먹지도 않지만, 유제품, 달걀,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는 마크로비오틱 베이킹을 연구하는 재미에 빠져, 틀까지 새로 사며 오븐을 자주 돌리고 있다. 날이 더워 베이킹에 적합하지 않은 계절인데도. 


 때 마침, 냉장고 한켠 샐러드용으로 사둔 레몬을 발견했다. 시들해지기 전에 구출해 줄 마음으로 만들어본 레몬 머핀. 머핀은 블루베리나 초콜릿 등, 달콤하고 묵직한 맛을 내는 재료로 만드는 경우가 많지만, 의외로 상큼한 재료도 잘 어울린다. 감귤류로 만든 마멀레이드를 빵에 발라먹으면 어울리는 것 처럼.


 레몬제스트를 만들기 위해 과도로 정성스럽게 레몬껍질의 노란 부분만 포를 뜨듯 벗겨내고, 행여나 식감에 방해가 될까 무서워 가늘게 다져준다. 그레이터가 있으면 레몬제스트를 만들기 편하겠지만 우리집에 그런 것은 없다. 하지만 손에 배어오는 레몬향을 음미하며 레몬껍질을 다지는 시간은 나름 즐겁다.


 작게 자른 레몬조각을 얹어 반죽을 담은 머핀 틀을 오븐안에 밀어 넣어주면 이제는 머핀이 예쁘게 부풀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뿐. 함께 나이 들어온 오븐이 아직까지도 열심히 일을 해주고 있다.


 오븐이 종을 치고 불이 꺼지면 이제 기대반 걱정반의 오븐 개봉식. 

 구워지는 동안 손을 댈수가 없기때문에 한층더 두근두근대고, 생각대로 완성된 모습은 더 큰 기쁨을 주는 베이킹의 세계. 머핀을 식히며 온집안에 상큼한 레몬향이 퍼진다.

  이제는 동네 슈퍼에서도 레몬을 접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닌듯 하지만, 내가 어릴적에만 해도 레몬은 쉽게 살 수있는 재료가 아니었다. 동네슈퍼에는 당연히 없고 백화점 지하에 가도 예쁘게 포장된 선물용 과일 코너 근처에나 있는, 그런 과일이었다.


 계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렸을적 엄마를 쫓아 장을 보러간 날, 왜인지 레몬을 사자고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영어단어 공부할때 레몬이 등장했거나, 동화책에서 레몬이 등장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는 음식을 잘 하지만, 시간과 돈을 들여 요리의 폭을 넓힐 욕구가 있을 정도로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레몬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큰 사건도 아니었을텐데, 이후로 나에게 레몬은 비싼 재료, 고급 재료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노란 레몬이 곁들여져서 나오는 음식이나 냉장고에 레몬이 있는 집을 동경하곤 했다.


 그렇게 동경하던 재료를 이제는 동네슈퍼에서도 쉽게, 나쁘지 않은 가격으로 살수있는 시대가 왔다. 그리고 레몬값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지만 내 나이는 위로 위로 올라가, 이제는 동경하던 재료로 베이킹도 해내는 어른이 되었다. 내 나이는 앞으로도 위로 위로 올라가겠지만, 할줄 아는것이 많아지고 동경하던 것을 이루며 나이들어가는 것을 실감하는 경험은 나름의 즐거움.



비건,마크로비오틱 푸드 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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