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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Jul 20. 2018

언니에게 차려주는 집밥. 초여름 채소로 밥상을 차리며.

내게 언니는 늘 언니였다.

 홍콩에 살고 있는 언니가 아주 짧게 서울에 왔다 갔다.

 홍콩에 가고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온 언니. 언니가 결혼을 하며 우리집은 한동안 넷이 모일 일이 없었다. 심지어 언니가 홍콩으로 떠나기까지 했으니, 이번에 넷이 모여앉아 식사를 할때는 이렇게 넷이 집에 있다는 것이 기적에 가깝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언니가 떠나던 날 오전, 혜연이가 밥을 잘하니, 혜연이가 차린 밥을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는 엄마는 집을 비웠다. 이렇게, 내가 차린 음식들로 언니와 오랜만에 둘이 점심식사를 하기로. 


 홀로 주방에 선 시간. 식사를 대접할 일이 있으면 되도록 상대방의 취향도 고려해서 준비하지만, 언니는 식구이기에 철저히 내 입맛을 따라 밥상을 차린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엄마는 식구들 취향을 생각해 차려주는걸 생각하면,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내게 그런 엄마의 마음은 없나보다. 그렇게 맛도 농도도 진한 음식을 좋아하는 우리 언니에게, 가벼운 조리와 가벼운 양념으로 완성한 채소반찬과 채소국을 차려주었다. 

세가지 제철 채소반찬과 현미밥, 표고버섯 들깨탕으로 꾸며본 마크로비오틱 한식 밥상.

 세가지 제철 채소반찬과 현미밥, 표고버섯 들깨탕으로 꾸며본 마크로비오틱 한식 밥상.  제철채소를 어떻게 해서든 밥반찬으로 올리는 나이기에 우리집 입맛에는 생소하더라도 토마토도 제철 부추와 간장, 참기름에 버무려 밥반찬으로 올린다. 

 하지만 우리 언니는 진한 입맛의 소유자인터라, 미소소스에 버무린 마늘종을 가장 좋아한다. 챙겨줄까도 싶어 락앤락에 담아보다가 더운날씨에 상할 것 같아 조용히 우리집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밥상을 차리는 시간은 어색할것 하나 없었지만, 언니와 마주 앉은 순간, 아주 잠시 느낀 어색함이 있었다.


 식사는 커녕 무언가를 언니에게 해준적이 없었다. 수도 없이 조리대와 마주하고, 수도 없이 밥상을 차렸지만, 처음으로 언니 한 사람을 위해 차린 밥상에 스스로가 멋쩍었다. 언니는 그런 동생이 차려준 밥상이 신기한지, ‘이건 뭐야?’, ‘이건 어떻게 만든거야?’, ‘이건 데친거야?’ 질문을 쏟아내며 이것저것 맛본다.


 손님이 오면 쌀밥에 고기국을 내어준다는데, 홍콩에서 돌아온 언니에게, 현미밥에 버섯을 둥실둥실 띄운 들깨탕을 내어주었다. 하지만 철저히 언니 취향은 무시하고 만든 나의 음식을, 맛있다 칭찬하며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자랑까지 한다.

이 밥을 차려주고 한참이 지나서야 언니가 아직 100% 현미밥에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혜연이한테 잘해줘. 사이 좋게 지내야 나중에 커서 서로 김치도 나눠먹고 그러지’

 라던 엄마말에 

 ‘엄마... 그런데 혜연이가 김치 못 담그면 어떻게 해?’라던 언니.


 언니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 자매는 김치를 담글 줄 모르는 언니, 김치를 담그는 동생으로 자랐다. 하지만, 여전히 언니는 동생자랑을 하는 첫째고, 나는 여전히 언니에게 베푸는게 익숙하지 않는 동생이다. 내가 김치를 담가 언니에게 나눠주는 날이 오더라도, 내게 언니는 늘 언니일 것이다.




그래도 나도 언니 김치를 한번쯤은 얻어 먹어보고 싶다...




토마토를 밥반찬으로 만든 뒷이야기는 이곳에


비건,마크로비오틱 푸드 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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