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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Jul 29. 2018

깻순, 부추, 단호박, 애호박...여름이 만든 밥상

24절기의 변화를 느끼는 삶


 뭐가 그리 바빴던걸까. 한그릇으로 끝나는 요리를 하는 날이 잦았던요즘. 그것도 시간에 쫓겨가며 요리를 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요리를 하는 시간 그 자체와, 여러 반찬을 한꺼번에 내어놓는 집밥을 좋아하기에, 이럴때는 번거롭더라도 여러 반찬을 늘어놓은 밥상을 차리고 싶은 욕구가 고개를 드는 나. 이렇게' 한 그릇 식사'와 '간편식'이라는 트렌드를 거슬러 오르는 20대 여자가 또 있을까. 그래도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 나름 만족해하며 오랜만에 정성을 들여 채소반찬 몇가지와 따끈한 국을 곁들인 집밥을 지어 본다.

심지어 설거지도 크게 귀찮아 하지 않는다.

 얼마전 가락시장에서 토실토실한 표고버섯을 사왔다. 채식인의 요리에서 말린 표고버섯은 고기를 대신해 식감을 살려주기도 하고, 육수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해주는 아주 고마운 친구. 사온 표고버섯은 싱싱할때 손질해 옥상에서 말려두었다. 

 표고버섯이 말라가는 우리집 옥상.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작지만 감사한 일이다. 이렇게 말린 표고버섯에 물을 붓고 언제쯤 말랑해질까 기다리는 시간 또한 작은 즐거움. 이쯤이면 됐으려나 눌러보고, 아직 안됐다 싶어 물을 더 붓고 기다리고...이렇게 불린 표고버섯은,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도 구수한 향이 물씬 풍긴다. 

 

 뭉친 미소 덩어리가 들어갈까 무서워 표고버섯채수에 미소를 곱게 개어 넣고 만든 애호박 미소국. 탕수육이 부먹파와 찍먹파가 있듯 미소국도 두가지 취향으로 나뉜다. 훌훌 마시기 쉽게 건더기를 작게 잘라넣은 미소국과 건더기를 듬뿍 넣어 건더기를 건져 먹는 미소국. 물론 후자인 나는 제철 애호박을 듬뿍 넣고 만들어 본다. 

 

 여름에는 애호박도 단호박도 맛있다. 단호박을 버섯, 실파와 함께 카레 양념을 하고 볶아, 이국적인 느낌의 반찬을 만들어 본다. 오랜만에 단호박을 요리하니 칼질을 하다 말고 잠시 쉬고 싶다. 요리하는 시간을 즐거워하는 나도, 단호박을 썰때 만큼은 누가 와서 대신 썰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왕이면 잔근육을 가진 멋진 오빠가 와주면 좋을것 같다. 

 이렇게 두가지 메뉴를 만들고, 미리 해둔 밑반찬들로 차려 보는 단촐한 집밥. 

 가락시장에서 사온 오이로 만든 오이소박이가 한두토막 정도 남아있었다. 이제 슬슬 김치도 젓갈과 밀가루풀 없이 먹고 싶어, 내가 처음 담근 젓갈과 밀가루 풀없이 만든 마크로비오틱 김치. 엄마아빠에게도 인기가 좋았는지 담근지 얼마 되지 않아 바닥이 났다. 할매입맛인 내가 만들었기에 달지도 짜지도 않아 안타깝게도 우리 가족에게는 인기가 좋지 않은 내 스타일의 반찬들. 그렇기에 내가 만든 반찬이 가족에게 인기가 좋으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혼밥’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내가 만든 음식이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것은 꽤나 큰 기쁨. 10년의 자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이 기쁨을 종종 느낄 수 있다는 건 나름 행복한 일이다.

 가락시장에서 사온 깻순으로 엄마가 만든 나물도 내어본다. 만들 때부터 집안에 퍼지는 깻잎향과 양념향이 너무 좋았던 나물. 어린 깻잎도 이 계절에만 즐길 수 있는 녀석. 그리워지기 전에 꼭 먹고 지나가야지.

 부추, 깻순, 호박들, 오이...다들 잠시 지나가는 이 시기에 가장 맛있는 아이들.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나누는 경우가 많지만, 농사일의 기준은 24절기로 나눈다. 이 24절기에 따라, 그 시기에 가장 맛있는 채소와 과일도 다르고, 맞는 조리법 또한 다르다. 이렇게 조금은 까다로운 입맛을 가져서일까. 24절기에 맞춰 땅에서 나고 자란것만 먹고 살아도, 나에게는 먹을거리가 너무나 많다. 이영자 언니가 이 휴게소에서 이것만큼은 꼭 먹어야 한다고 추천하는 음식이 있듯, 내게는 이 계절에는 꼭 먹고 지나가야할 채소와 과일이 있다. 그 시기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 있기에, 다른 것을 먹을 여유가 없다.  

 중복이 지났으니 이제 곧 새로운 계절이 오고 또 새로운 맛이 찾아오겠지. 고기를 먹지 않는 나에게는 소떡소떡도 치맥도 없지만, 입과 몸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나의 삶은 나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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