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연 Aug 01. 2018

좋아하던 공간을 떠나보내며 감자냉채와 함께 차린 집밥.

노바키친의 제철 현미 플레이트를 먹고난 후

 주변 사람들이 내게 추천하는 대학로의 채식 식당이 있었다.

 그곳의 이름은 노바키친(Nova kitchen). 대학로에 갈 일이 없어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으로 그 곳을 먼저 접했다. 가급적 육류와 해산물을 사용하지 않으며 제철 유기농 채소를 사용한 요리를 선보인다는 그곳. 시그니처 메뉴인 제철 현미 플레이트는 현미밥과 채소 반찬에 된장국으로 구성되고, 채소반찬은 계절에 따라 바뀌곤 했다. 채식을 지향하며 여러 채소 반찬을 곁들인 집밥을 좋아하기에, 언젠가 꼭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그렇게 언젠가 가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던 사이, 7월 말을 마지막으로 노바키친이 영업을 마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곳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기전, 제철 현미 플레이트를 먹어보기 위해 방문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나의 취향을 저격 당했다.

노바키친의 제철 현미 플레이트

 여름철 채소들로 꾸며진 제철 현미 플레이트. 사진으로 먼저 접했고 주변 지인들의 추천으로 익히 들어는 왔지만 노바키친의 음식은 나를 위해 만든 음식인 것만 같았다. 당근튀김, 표고버섯과 꽈리고추 볶음, 청국장, 감자냉채, 토마토된장무침, 옥수수, 호박잎의 조합. 이름그대로 제철이 가득한 한 그릇.


 내게 이런 노바키친의 제철 플레이트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현미밥과 함께 제철채소들로 만든 반찬들. 내가 즐기는 집밥이다. 하지만 그 구성 하나하나와 조리법이 나에게는 너무나 새로워, 내가 이런 밥상을 차려낼 수 있는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싶기도 했다. 훌륭한 식탁과 공간을 떠나 보낸것이 아쉬워, 그 곳을 생각하며 차려본 최근 어느 날 밥상.

 노바키친의 제철 플레이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메뉴는 감자로 만든 냉채. 여름이 제철이지만, 감자를 먹기 위해서는 폭염속에서 푹푹 쪄내거나, 기름을 두르고 전을 부치거나 튀기는 등, 한층 더 몸을 덥게 만드는 조리법만 있는 것 같아 여름에는 좀처럼 감자에 손을 대지않는나. 하지만 이 냉채를 보며, 더운 여름철, 감자를 가장 가볍게 조리할 수 있는 방법을 이제서야 알게 됐다. 투박하게 채썬 감자를 살짝 데쳐 겨자와 현미식초에 버무려 만든 감자 냉채. 심지어 맛까지 상큼하니 재료도 조리법도 맛도 여름에 제격이다. 꽈리고추를 썰어 넣어주니 과하지 않은 매콤한 맛이 또 잘 어울린다.

 노바에서 맛본 토마토 된장무침을 떠올리며 여기에 샐러리를 더해, 내 스타일의 토마토 된장무침도 만들어 보았다. 볶은 양파, 피망의 감칠맛으로 포인트를 살린 노바키친의 토마토 된장무침과 달리,샐러리의 향으로 포인트를 줘 보았다. 하지만 역시 양파가 있는게 더 좋았을것 같다. 원조가 괜히 원조가 아니다.


 이렇게 노바키친의 두가지 메뉴를 나 나름대로 재현해보고, 냉장고 속에서 구출을 요청하던 재료들로 나의 반찬들도 만들어 본다.


 샐러리를 보니 얼마전 만들어둔 두유마요네즈가 생각났다. 평소 마요네즈를 즐겨 사용하지 않지만, 그래도 샐러리에는 역시 마요네즈. 된장무침을 만들고 남은 샐러리 조금에 두유 마요네즈를 올려 내어 본다. 샐러리와 마요네즈의 조합은 맛있기도 하고, 살이 찌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에 자꾸만 손이 가, 과식을 하게 하는 주범. 치맥을 먹는것보다는 낫지만 무엇이든 과식은 좋지 않다. 풀이라고 흥청망청 먹었다가는 위도 지치고 살도 찔수 있다. 코끼리도 초식동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말린표고버섯과 다시마로 채수를 내어 표고버섯 미역국을 만들어 본다. 물에 불린 미역을 참기름에 달달 볶아 채수를 넣고 끓이면 고기와 해산물 없이도 뽀얗고 구수한 미역국이 완성된다. 행여나 냄비를 태워 먹을까 걱정하면서도 뽀얀 국물을 기대하며 재빠르게 미역을 볶는 시간은 스릴이 넘친다. 냄비를 태워보지 않고 이 생동감 넘치는 시간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냄비를 꽤나 태워본 나는 늘 이 시간이 조마조마하면서도 기대된다.

 채수를 내고 남은 다시마도 가늘게 채썰어 다진마늘, 채썬 꽈리고추와 함께 간장에 볶아 반찬으로 만들었다. 딱 한끼로 끝날정도의 양이 나오니 애매하게 남지도 않는다. 


 엄마가 병아리콩으로 콩자반을 해두었다. 병아리콩은 생각보다 쓰임새가 많다. 말린 병아리콩을 사두면 삶아두었다가 샐러드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하고, 이렇게 콩자반으로 만들어 밥반찬으로도 올릴수 있고 밥을 지을때 넣어 콩밥으로 완성시킬수도 있다. 큐민이 있다면 후무스도 만들수 있으니 생각보다 요리의 폭이 넓은 콩이다.

 누군가에게 레시피를 공유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주로 레시피 없이 오감으로 요리를 하는 나. 시간을 재기보다는 기름에 미역이 볶아지는 소리를 들어보고, 또한 색깔의 변화를 본다. 다시마를 볶다가 그 향을 맡고  이쯤 간장을 넣을지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에 들어하던 공간이 사라지는 아쉬운 마음이 담겨, 오감이 아닌 육감으로 요리를 했다는 실감이 드는 이번 집밥. 그 곳의 감자냉채의 맛을 떠올리며 그것과 가깝게, 때로는 내 스타일로 바꾸어가며 육감으로 만든 이번 집밥은, 아쉬운 마음에 씁쓸하기도, 내 서랍속 메뉴가 늘었다는 기쁨에 달콤하기도 했다.



채수를 내고 남은 다시마로 만든 반찬과 샐러리 조리법에 대한 뒷이야기는 이곳에


비건,마크로비오틱 푸드 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매거진의 이전글 깻순, 부추, 단호박, 애호박...여름이 만든 밥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