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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Aug 05. 2018

별거 아닌게 아니었던 아이들. 고구마순과 오이지.

날름날름 먹는 건 한순간인데, 만드는 건 한순간이 아니다.

 한그릇 식사로 뚝딱 끝내던 날들이 계속돼 채소반찬 욕구가 샘솟더니, 샘솟다 못해 폭발 최근에는 집에 채소반찬이 넘쳐났다. 그렇게 만든 채소반찬으로 차린 얼마전 밥상.


노바키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감자냉채

샐러리미역초무침

고구마순나물

두부부침

오이지무침

그리고, 열무된장국

 3대영양소의 밸런스도 맞추면서, 재료가 가진 음양의 밸런스를 여름에 잘 맞춰 뿌듯한 한끼. 심지어 맛까지 지금 다시 봐도 군침도는 조합. 내가 차린 밥상은 기본적으로 좋아하지만 특히나 내가 어릴적부터 좋아하던 메뉴들이 여럿보인다.

샐러리 미역초무침은 냉국으로 만들어 한끼를 더 먹었다,

 두부부침과 내 스타일로 만든 샐러리 미역 초무침을 곁들였다. 아삭하고 상큼하게 한끼를 먹고 난 뒤, 남은 아이들에는 간을 조금 더 강하게 하고 물을 부어 나중에 냉국으로 한끼 더 먹어 본다.

 끓일때부터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돋구던 열무된장국도 곁들였다. 열무와 된장의 조합은 사랑. 평소 미소국을 즐겨 끓이는 나이지만 열무에는 무조건 조선된장이다. 미소국은 여러재료를 넣고 푸짐하게 끓여내는 것을 좋아하지만, 열무 된장국은 깔끔하게 열무와 다진마늘만 들어간 것을 가장 좋아한다. 여름 열무와 된장이 너무나도 잘어울리기에 다른 재료를 넣을 필요가 없다. 서울한복판에서 할머니가 직접 담근 우리집 된장. 올해는 같이 만들면서 배워둬야겠다.

 고구마 순으로 만든 나물. 엄마가 사온 고구마 순을 냉장고속에서 발견했을때부터 내심 하고 좋아하고 있었다. 다른 나물과 비슷한듯 하면서도 이런 식감과 맛을 가진 채소는 달리 없는 듯하다. 이 고구마 순 또한 이 계절이 제철. 저장성이 높은 고구마와 달리 오래가지 않으니 이 철에만 잠시 즐길 수 있는 별미중의 별미이기도 하다. 한 숟갈, 한 젓갈이 크지 않은 나지만 어릴적 고구마순이 밥상에 오르는 날에는 몇번이고 크게 떠 먹곤 했다. 일본에 살던 시절, 가끔 여름철에 한국에 돌아올때면, 미리 엄마에게 연락해 고구마순나물을 해달라고 일러두기까지 했다. 해외에 있다가 돌아와 먹고 싶은 음식이 치킨, 짜장면, 냉면도 아니고 고구마 순이었다.

 나의 식사에서는 드문 장아찌류도 등장했다. 엄마를 제외하고는 염분이 높은 음식을 즐겨 먹지 않는 우리집. 흔한 젓갈, 소금을 뿌려 구운 김, 장아찌 같은 것이 좀처럼 식탁에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거의 유일하게 전원이 좋아하는 장아찌는 오이지가 아닐까. 고분고분 말은 잘 들었지만 밥을 잘 먹지 않아 속 썩일 때가 많았다는 우리자매. 이런 우리 자매도 여름철, 오이지를 식탁에 내어주면 시원한 보리차에 밥을 말아 오이지와 함께 뚝딱 밥을 해치우곤 했다. 일본에 살적에는 여름철 더위에 지쳐 입맛이 없을때 우메보시와 시소를 얹어 소면을 먹곤 했기에 우메보시도 시소도 없는 한국의 여름을 어떻게 견디나 했는데, 좋은 아이템을 발견했다. 


 오이지나 고구마순이 식탁에 오르면 엄마에게

 ‘이런게 참 별거 아닌데 맛있단 말이야’

라며 감상을 늘어놓던 때가 있었다. 생긴것도 소박하고 맛도 소박하다. 하지만 이 녀석들. 정말 별거 아닌 녀석들이었을까.

 사실, 고구마순은 참 난감한 녀석. 고구마순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보라색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야 한다. 엄마한테 고구마순으로 나물을 해달라고 보채면 조금 난감해 하곤 했다. 자리와 시간을 잡고 앉아 하나하나 껍질을 벗기고 있기에는 귀찮고, 그렇다고 해서 껍질을 벗겨놓은 것을 사기에는 왠지 돈이 아까웠나 보다. 하지만 엄마는 주로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 ‘그 할머니, 이 고구마순 껍질 벗겨서 얼마나 더 받을까...엄청 귀찮을텐데…’하고 나물 할머니 걱정을 하며 사온 고구마 순을 요리하곤 했다.


 오이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오이를 손질하고 끓인 소금물에 오이를 재우는 수고도 필요하고 이 오이지가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날름날름 먹는 건 한순간인데 만드는 건 한순간이 아니다.


 이런 수고와 정성이 필요한 아이들을 신나게 먹으며, 얘네는 별거 아닌데 맛있다 라며 평가하는 내가 밉지도 않았는지 엄마는 여름이 지나기 전,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꼭 내어주었다. 차라리 치킨, 피자를 사달라는 아이가 더 편했을 것도 같은데, 할매입맛을 지닌 어린이라 엄마를 꽤나 귀찮게 했다.

 별거 아닌 줄 알았던 애들이 사실은 꽤나 별거 였다는 생각을 하며 한끼를 차렸다. 아직 나는 ‘꽤나 별거’인 재료와 음식을 다루는데 서툴다. 생활속에서 밥해먹으면서 익숙해지기는 어려울것 같다. 조만간 ‘꽤나 별거’인 애들을 다루기 위한 따로 시간을 내어봐야겠다.



비건,마크로비오틱 푸드 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밥 해먹고 사는 가벼운 일상은 인스타그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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