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연 Sep 25. 2018

추워질 날들을 준비하는 마음

9월 셋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집밥과 베이킹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다. 밤에 집밖을 나서면 제법 쌀쌀해 팔뚝을 움켜쥐고 걷게 된다. 

  날이 추워지니 벌써부터 추운 계절의 야채반찬 걱정이 앞선다. 하우스 재배가 발달해 여름 채소를 겨울에도 먹을 수 있지만, 더운 여름에는 몸을 식혀주는 여름채소를 먹고, 추운 겨울에는 몸을 보하는 겨울 식재료를 먹는 것이 균형에 맞다. 그래서 늦여름, 초가을부터 추워질 날을 준비한다. 나뿐만이 아니다. 옛날 어른들이 괜히 김장을 하고, 장아찌를 담궜던 것이 아니다. 이런 마음으로 시작된 오이지 개봉. 여름에 도쿄에서 마크로비오틱을 배우느라 돌아오고 나서야 오이지를 담궈서 조금 아쉽지만, 다가올 추운계절에도 오이 맛을 볼 준비를 해두니 마음이 든든하다. 오이지도 개봉하고 연휴기간을 책임져줄 밑반찬 준비도 개시. 얼갈이는 데쳐서 된장국도 끓이고 된장에 버무려 나물도 하고. 오랜만에 칼칼한게 먹고 싶어 매콤한 콩나물도 만들어 두니 연휴기간의 식사 걱정이 없다.

 만들어둔 얼갈이 나물은 현미된장죽과 함께 아침식사를 책임져준다. 전자렌지를 쓰지 않는 나에게 죽은 즐겨먹는 아침 메뉴. 순식간에 씨리얼 따위로는 채워지지 않는 만족감을 얻을수 있다. 여기에 뿌리채소와 미역, 된장까지. 쌀쌀해진 날씨에 나도 모르게 양성인 것들이 끌렸나 보다. 

 친구들 만나러 갈때는 베이킹을 한다. 수수가루로 만들어 은은한 분홍빛이 예쁜 쿠키.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회사에서 선물로 받은 코뿔소 쿠키커터가 맹활약한다. 친구들도 사진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즐거워한다. 정작 단 음식을 즐겨먹지 않는 나지만, 베이킹을 해가면 친구들과 즐거운 대화거리가 하나 더 들어나서 여전히 베이킹을 즐겨한다.

 달걀, 버터, 우유는 물론 백밀가루와 백설탕도 안쓴 디저트이지만, 이런 마크로비오틱, 비건 디저트도 결국은 음양의 균형이 잡힌 음식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시판 과자에 비하면 낫지만 그래도 상당한 음성에 가깝다. 이런 디저트를 야금야금 먹은 다음날 아침은 압력솥에 눌은 밥으로 만든 현미누룽지을 가볍게 호로록 해주니 딱이다. 밥중에서도 양성인 눌은 밥으로 만든 죽을 조금 먹어주면, 단거 먹고 축축 처지던 몸도 조금씩 균형을 되찾아 간다. 덩달아, 밥안먹고 자꾸 다른거 찾는 우리 엄마에게도 좋은 아침 식사가 된다.

 만들어둔 오이지는 마파연근 덮밥에 곁들여 본다. 마파두부 보다는 마파가지를 좋아하지만, 여름이 지나니 이제 마파가지도 지나간 음식. 하지만 가지가 없어도 가을, 겨울에도 걱정없다. 기장을 넣은 밥 또한 이 계절에 어울리는 주식. 이렇게 또 추워질 계절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본다. 연근으로 만든 마파연근은 아삭아삭한 식감도 매력적이고 너무 기름지지도 달지도 맵지도 않고 딱 내 입에 맞는 맛. 채식과 마크로비오틱 식생활을 하며 배달해서 먹는 중국음식과 멀어졌다. 고기가 들어서, 혹은, 위생상태가 못미덥기 때문이 아니라, 기름지고 자극적이라서 내 입맛에는 썩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크로비오틱 식생활은 초딩입맛을 고치는데에는 특효약이다. 덩달아, 김치찌개, 계란말이, 볶은 고기를 무한반복하던 부모님도 안먹던거 먹는다며 좋아하신다.

 연휴를 맞아 이것저것 음식을 많이 만들 것 같은 느낌에, 마파연근을 만들고 남은 두부, 만들어둔 얼갈이 된장국과 나물까지 냉장고를 탈탈 털은 아침식사. 이렇게 있던 메뉴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야 다음 먹을 것들 준비에 착수한다. 음식이 넘쳐나서 결국 못 먹고 버리거나, 이것 저것 늘어놓고 배터지게 먹는 것을 못 견디는 나. 환경에도 좋지 않고, 내 몸에도 좋지 않다. 그래서 내 그릇에 담긴 음식의 양은 늘 적다. 먹다가 역시 적다 싶으면 더 담아 먹으면 되지만, 많이 담은 음식은 억지로 먹거나 버리기 쉽상이니까. 


이렇게 깔끔하게 냉장고를 비워내고 조금 심심해진 냉장고를 보고 있자면 냉장고가 말이라도 걸어 오는 듯하다.


명절이 왔으니 이제 다시 나를 채워보거라



도쿄에서 마크로비오틱을 배우는 스토리는 이곳에

마크로비오틱 푸드 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매거진의 이전글 우엉, 연근이 맛있는 계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