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연 Sep 26. 2018

명절음식이 아닌 명절음식

명절맞이 마크로비오틱 비건 집밥과 베이킹

 사촌 언니들이 결혼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세례를 받으시면서 딱히 명절준비를 하지 않게 된 우리집. 외가도 함께 모여 외식을 하고 헤어지는 식.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집만이 이런건 아닌 듯 하다. 하지만 그동안 명절마다 그렇게 음식준비를 하시던 어른들은, 이제 음식준비를 할 필요가 없는데도 명절이면 또 다시 주섬주섬 준비를 시작하신다.


 옆집어머니께서 송편반죽을 나눠주셨다. 지방에 밭이 있어 이 맘때면 현미를 나눠주시고, 그러고도 쌀이 남아 떡을 뽑고 가루를 내 송편반죽까지 만드신다. 여기에 직접 키운 쑥까지 섞어 주셨다. 그렇게 시작된 송편빚기. 나눠주신 양만으로도 쟁반 세판을 채웠다. 그집 송편은 얼마나 빚으셨을까. 

송편을 예쁘게 빚는 재주는 없는 듯하다

 녹두와 깨로 소를 채워 넣고도 반죽이 남아 고구마를 잘게 썰어넣어 만든 송편. 그랬더니 또 고구마가 남는다. 계획에 없었지만 급히 만든 비건 고구마 머핀. 냉동실에 잠들어 있던 팥알맹이를 쏙쏙 넣어줬더니 이건 이거대로 명절느낌이 나는 머핀 아닌가.

 홍콩에 사는 언니네 가족이 아주 짧게 한국에 들렀다 갈일이 있어 명절챙기지 않는 우리가족도 명절같은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과 식사할때는 엄마가 다같이 먹는 음식을 만들고 나도 비건 마크로비오틱 음식을 몇가지 만든다. 이번에는 마크로비오틱 스타일로 고기도 설탕도 없이 만든 우엉잡채. 이렇게 맛있게 만들수 있는데 그 동안 왜 설탕을 넣어가며 만들었던 걸까. 잘 볶고 잘 졸인 우엉과 당근은 설탕 한톨 없이도 달콤하다. 

 명절과 전혀 상관없는 우엉스프 단호박뇨끼. 로즈마리 향이 어우러진 우엉스프와 단호박뇨끼는 기가 막힌 조합. 다음에는 생 로즈마리로 해야지. 요즘에는 명절이 이런 것 같다. 가족이 모여 다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의미를 두며, 명절음식 아닌 음식도 명절에 등장한다. 외할머니가 정정하셨을때에는 우리집 명절에는 간장게장과 미더덕찜이 곧잘 올랐다. 친가에서는 훈제연어 샐러드를 먹곤 했다. 앞으로 우리집 명절메뉴로는 나의 마크로비오틱 메뉴들이 늘어갈 것 같다. 벌써 설에 만들고 싶은 메뉴들이 몇가지 있다. 그렇게 명절음식 아닌 명절 음식이 늘어간다.

 엄마가 녹두전 반죽을 해뒀다. 나 먹으라고 고기를 넣지 않은 반죽도 따로 남겨둔 우리엄마. 가족 덕분에 굶어죽을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다. 고마운 마음에 친구들이랑 나들이 나가실때 비건 브라우니를 만들어 들려보내드렸다. 밀가루, 설탕도 없어 어른들도 좋아하셨다니 안심.

 이렇게 음식을 만들어 놓고 정작 명절 당일에는 외식하는 우리집. 덩치가 산만한 10대후반과 20대 초반의 남학생 세명과 거대한 이모부들과 우리 아빠가 있기에, 우리집 명절 메뉴는 주로 씨푸드 부페다. 이렇게 우리집에서는 씨푸드부페도 명절음식 아닌 명절음식으로 자리잡았다.

 부페에 가서 두둑히 잘 먹었고, 추석 당일의 교통체증에 온몸이 늘어지던 우리 가족은 야밤에 산책을 나선다. 보름달 아래 알록달록한 점퍼를 맞춰 입고 부모님과 함께 산책하는 시간. 모두가 상상하는 명절의 모습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은 이렇게 즐거운 명절 밤을 보낸다.

산책하다 보니 어느덧 가을이 성큼. 이러다보면 겨울이 와있을것 같다.


도쿄에서 마크로비오틱을 배우는 스토리는 이곳에

마크로비오틱 푸드 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매거진의 이전글 추워질 날들을 준비하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