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연 Oct 21. 2018

어린이와 마크로비오틱/스콘을 구으며 하루키를 떠올리다

10월 셋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10월 셋째주. 잠시 가을 불청객 미세먼지도 있었고, 외식도 잦았다. 외부 자극도 많고 술도 마시며 음으로 치우쳐지기 쉬웠던 내 몸. 집밥을 먹을 때 만큼은 조금이나마 중용의 밸런스를 되찾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최근 흥미를 가진 재료가 바로 콩나물. 어느쪽인가 하면 음성에 가까운 채소이다. 이러한 콩나물을 사용해 양성의 조리로 균형을 잡아줄 방법을 이것 저것 트라이해보았다. 콩나물 잡채도 만들고, 콩나물 국도 끓이고.

콩나물을 넣고 만든 잡채. 언제나처럼 고기와 설탕은 안 넣는다.

 콩나물은 숙취해소에 좋은 재료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술은 음성에 가까운 음식이기 때문에, 과음한 다음날에는 몸이 음성으로 치우쳐져 있기 쉽다. 뿐만 아니라, 과음한 후에는 알콜을 처리하기 위해 간이 당분을 원하기 때문에 단 음식들에 손이 가기 쉬워, 몸이 더더욱 음성으로 치우치기 쉽다. 콩나물 또한 음성에 가까운 재료이기 때문에, 술 마신 다음날 콩나물국을 먹는다면, 양성의 재료를 함께 사용하거나, 양성의 조리를 해 밸런스를 맞춰주는 것이 좋다. 나의 경우, 평소 음성에 가까운 표고버섯 육수와 양성에 가까운 다시마 육수를 블렌드해서 육수를 만들지만, 술마신 다음날 콩나물국은 다시마 비율을 늘린다. 여기에 음료 또한 물 보다는 삼년번차를 마신다. 간에 좋다는 우엉까지 곁들여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술은 기분 좋을 만큼만 마시는게 좋다는 것…(알면서도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하지만 그래서 인생은 재밌다)

마크로비오틱하는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고 술마신 다음날 식사라는 것을 바로 알아챌 것...

 우리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음식 변덕이 심하다. 한번 만들어둔 음식을 다시 꺼내 먹는 것을 싫어 한다. 음식계의 패리스 힐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 2000년대 초반 감성의 인물인가…). 두 끼 연달아 밥을 먹는 것도 싫어해, 우리집은 아침식사로 빵, 고구마 등을 즐겨먹어 왔다. 부모님의 식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편이지만, 너무 음으로 치우치는 것 같아 보여, 아침식사로 빵을 먹을 때에는 조금이나마 양성의 요소를 더해 보려 하고 있다. 빵 자체를 천연효모빵이나 통밀빵을 선택하는 것 또한 조금은 양성인 빵을 선택하는 한가지 방법. 인스턴트 드라이 이스트는 무척 음성인 재료이며, 흰밀가루 빵보다는 통밀빵이 조금이나마 양성에 가깝다. 한편, 양의 성질을 지닌 음식을 곁들이는 것 또한 한가지 방법이다. 이런 생각으로 만들어본 우엉 당근조림 오픈샌드위치. 우엉 당근 조림은 양성에 가까운 뿌리 채소를 사용하면서도 양성의 조미료와 조리를 가한 요리이다. 이런 우엉 당근 조림은 밥반찬으로도 어울리지만 의외로 빵에도 잘어울린다. 간단하게 청상추와 우엉당근조림만을 올렸지만 다른 채소도 풍성하게 넣어 먹어도 맛있다. 음양의 균형은 물론, 빵만으로는 부족해지기 쉬운 식이섬유를 우엉과 당근에서 보충할수도 있다.

우엉 당근 조림을 얹은 오픈샌드위치
호두 감말랭이 된장 스프레드를 곁들인 호두 감자빵

 또 한가지 만들어본 것이 호두 감말랭이 된장 스프레드. 우리나라의 된장은 일본의 미소보다도 무척 강한 양성을 띄는 재료. 잼과 버터보다 덜 음성인 스프레드, 딥을 생각하다가 무릎을 탁치고 만들어 보았다. 단짠단짠을 오가는 맛인데 몸에 부담이 적다. 심지어 빵과도 신기하게 잘 어울린다. 묘하게 막걸리 생각도 난다. 참 ‘신토불이’한 스프레드. 조만간 이 스프레드를 응용한 막걸리 안주도 한가지 만들어보고 싶다.

 우리집에 잠시 어린이 한분이 머물다 갔다. 이 어린이를 위해 우리집에서는 좀처럼 만들지 않는 요리도 해봤다. 병아리콩으로 만든 고로케. 건강하게 먹고 사는것 같더니 웬 튀김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나는 건강을 떠나서 뒷처리가 애매해서도 튀김은 거의 안만든다. 튀기지 않고 빵가루를 입혀 오븐에 구워낸 논프라이 고로케. 기름을 한방울도 사용하지 않아도  빵가루를 마른 팬에 갈색빛을 띌 때까지 살짝 볶아 사용하면 바삭하고 따끈한 오븐 고로케를 만들 수 있다. 


 다른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적 있듯, 여러모로 우리나라의 식생활에는 기름이 많이 필요한 음식이 맞지 않다.

(여기에서 잠시 언급했다)

 또한, 튀김은 먹는 순간은 즐겁지만, 튀겨낸 후의 기름이 문제이다. 한번 산패된 기름은 맛도 없고, 몸에도 좋지 않아, 이렇다 할 가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버리자니  환경이 신경쓰인다. 여러모로 튀김은 우리집에서는 썩 시도하고 싶은 음식이 아니다. 튀김보다는 고사리나물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굳이 먹고 싶은 음식도 아니다 (절대 귀찮아서가 아니다. 절대로...절대로...). 

 여기에 맵지 않아 어린이도 좋아할 단호박야채찜을 곁들인다.

 얼마전 도쿄에서 마크로비오틱 수업을 들으면서 오랫동안 내 몸이 지나치게 음성에 치우치는 생활을 해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침식사로 커피와 도넛을 먹고, 일하다가 지치면 에너지드링크, 초콜릿을 먹고, 저녁은 편의점 메뉴로 대충 해결한 뒤, 맥주를 마시고 잠들던 일상. 마크로비오틱 식생활을 하며 피부도 훨씬 좋아지고, 건강도 많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쉽게 추위를 타고, 조금은 음성에 가까운 체질이다. 극단적인 생활을 꽤나 오래 해온것도 마음에 걸리고, 여전히 개선하고 싶은 건강상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보니, 요즘에는 음성인 것들은 조금이라도 양성의 조리를 더해주려고 노력하는 편. 이 과정에서 물을 추가 하지 않고 재료 본연이 가진 수분만을 이용하는 양성의 조리방법에 눈뜨고 있다. 리마에서 배운 무수분 야채찜이 그 대표적인 메뉴. 양파, 당근, 양배추, 단호박 등의 채소를 볶아 소금, 약간의 간장을 넣고 20분은 쪄낸다. 물을 넣지 않기에 20분이나 쪄내면 홀랑 타버릴 듯한 레시피이지만, 채소 본연의 수분으로 은근하게 쪄내, 절대 타지 않는다. 심지어 맛있다. 토마토, 가지와 같은 여름야채를 사용해 같은 조리를 하면 그것이 바로 마크로비오틱 라따뚜이이다. 

 우리집에 머물다 간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본 두번째 고로케. 이틀 연속으로 고로케를 만들며 노력했지만, 고로케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단호박 팥조림을 숟가락 째로 퍼먹는 이 어린이...신장이 건강한 어린이가 되겠구나…


 일본에서는 마크로비오틱은 어린이와 함께하기 어려운 요리라는 인상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첫번째 이유는 현미밥은 소화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인상. 두번째 이유는 고기반찬이 없고 어린이 입을 즐겁게 할 메뉴가 적기 때문이라는 인상. 

 하지만 제대로만 짓는다면 현미밥은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게 지을 수 있다. 정 어린이 먹이기에 걱정이 된다면 오분도미, 칠분도미 등을 사용해도 좋다. 한편, 두번째 이유에 대해서는, 마크로비오틱으로도 충분히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이번에 만든 고로케에서 시작해, 샌드위치, 카레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오히려 자극적인 조미료 없이 소금, 간장, 된장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조미료만으로 조리를 하기에, 맵고 짠것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또한, 어린이 입을 즐겁게 하겠다고 피자, 햄버거만 먹일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장 좋은 것은 어릴 때 부터, 입만 즐겁고 몸은 즐겁지 않은 음식에 지나치게 길들여지지 않게끔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집에 머물다 간 어린이는 어릴적부터 좀처럼 단 음식도 주지 않고, 극음성, 극양성의 음식들은 멀리해 온 어린이. 그렇다 보니 마크로비오틱 식생활을 수십년 해온 사람처럼 자신의 몸에 필요한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을 알아서 판단한다. 눈 앞에 고로케를 두고도 단호박 팥조림을 퍼먹는 것처럼...환심을 사기 위해 어른들이 과자를 줘도, 호기심에 한 두개는 집어먹다가 호기심이 해결되면 그 이상은 먹지 않는다. 

 약속이 잦아 오랜만에 비건 베이킹도 했다. 베이킹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정작 나는 잘 안 먹기에, 베이킹은 주로 약속이 있을때 하고, 지인들에게 나눠 준다. 비건인데다가 밀가루와 설탕도 안들어갔다고 하면 다들 도대체 뭘로 만든거냐며 신기해 하는 나의 베이킹. 이번에는 애플시나몬 현미머핀과 마살라차이 오트밀 스콘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주로 비건 머핀을 만들었지만, 요즘에는 비건 스콘에 눈 떴다. 1~2년 사이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스콘. 목 막히는 식감이 스콘의 ‘매력’이라 불리는 시대가 왔다. 못났다고 생각될 수있는 점을 매력으로 만들어 버린 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어느 스콘 전문점의 마케터(아마 사장이겠지만)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같은 이유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려 본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몇권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하루키 소설 특유의 열린 결말이 에세이에서도 드러난다. 글의 끝맺음이 없다 싶을 정도로 열려 있어, 좋게 말하면 하루키의 ‘매력’이고, 조금 비꼬아 생각하면 너무나도 대충 썼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그것이 하루키라는 세계적인 작가의 매력으로 자리 잡았고, 본인도 그 점을 고칠 생각은 전혀 없어보인다. 사람은 모두 다른 취향을 가지기에, 모든 이의 입맛에 맞출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대차게 비판받을 수 있더라도, 그것을 매력이라고 우기는 배짱도 때로는 필요한 듯하다. 

 같은 이유로, 나도 할매스러운 나의 입맛과 식단 구성을 매력이라 우기고 있다.

스콘과 머핀은 함께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은 독서모임 멤버들 손으로 돌아갔다.

도쿄에서 마크로비오틱을 배우는 스토리는 이곳에

마크로비오틱 푸드 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 손님, 무. 가을 불청객, 미세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