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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Oct 25. 2018

사과를 수확하고 기관지를 보호하는 계절

10월 넷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소셜 살롱 문토를 통해 알게 된 송보라 쉐프님의 모임에서 전라도 무주에 다녀온다는 소식을 듣고, 냉큼 동행하기로 했다. 제철을 맞은 농가도 방문하고, 전라도의 산나물 정식을 먹는다는 이야기에 솔깃했던 것. 


 방문했던 사과 농장에서는 부사가 한창. 홍로를 먹던 추석이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부사를 따고 있다. 제철을 맞은 부사 맛에 멤버분들 모두 당장에 바구니를 움켜쥐고 황급히 사과 수확을 시작하시고. 

 같은 사과라 해도 홍로와 부사는 맛, 식감이 엄연히 다르다. 어느 정도의 산미가 있는지, 과즙이 얼마나 많은지 등. 같은 사과라도 음과 양의 성질이 엄연히 다르고, 어느 요리에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그 용도에 따라서도 많은 생각이 든다. 

 표고버섯 농장에서는 마크로비오틱 덕후 기질이 발동해 사장님께 폭풍 질문. 사장님 말씀도 듣고 실제로 농장 안을 들여다보면 왜 표고버섯이 다른 버섯보다도 음성을 띄는지, 왜 재배가 어려운지 등, 기본적인 것들을 훨씬 와닿게 배울 수 있다. 이렇게 이번에는 수확에만 참여했지만, 수확은 어디까지나 일부분일뿐. 자라나는 과정을 함께 지켜 보면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인풋을 얻을 수 있다.

 평소 한 두개 정도의 반찬으로 식사를 하는 나이지만 한번쯤은 먹어보고 싶던 상다리가 휘어지는 전라도식 정식. 송보라 쉐프님의 안내 덕분에 드디어 먹어보았다. 직접 채취한 산나물로 차리신다는 산채정식. 가죽나물이며 산초장아찌, 치자물을 들인 우엉 등등. 그저 맛있는게 아니라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엄청난 공부가 된다. 불필요한 조미료없이 깔끔한 나물의 맛. 적당한 식감. 맛보고 공부하고 사장님께 물어보고 또 공부한다.

채식을 하는 나도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 유난히 감사한 밥상
양념에 버무린 반건조 사과. 몹시 새로웠다.

 이렇게 다녀온 무주 당일여행. 많은 멤버들을 인솔하고, 각종 예약으로 바쁘셨을텐데 함께 하게 해주신 송보라 쉐프님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 차린 언제나와 같은 나의 집밥.  마크로비오틱의 기본과도 같은 아이들이 늘어서있다. 톳두부무침과 우엉당근조림, 단호박팥조림, 그리고 시금치 된장국. 

 일본에서 마크로비오틱을 배울때에는 시금치보다는 소송채라는 채소를 주로 사용한다.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마크로비오틱의 음양이론에서 접근하면 소송채가 시금치보다는 조금이나마 중용에 가까운 재료이기 때문.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 사정에 맞는 마크로비오틱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된장국을 끓일 때에는 나는 소송채가 눈에 보이더라도 시금치로 된장국을 끓인다. 우리나라의 된장은 일본의 미소에 비해 더더욱 양의 성질이 강한 음식이며, 된장을 사용해 국을 끓일 때에는 미소국 보다도 훨씬 양성의 조리를 한다. 또한 잎채소로 국을 끓일때는 상당히 시간을 들여 푹 끓여낸다. 이 때문에도, 다진 마늘을 넣거나 음의 성질을 가진 재료를 푹 우려내는 우리나라의 된장국은 음양의 밸런스를 생각해도 자연스러운 조리방법. 

 여기에 곁들인 나의 친구와도 같은 편안한 반찬들.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아이들이다. 

 가을철 자주 만드는 단호박 팥조림. 신장을 강화하고 신장의 이뇨기능을 돕는 반찬으로 마크로비오틱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반찬이다. 특히 설탕, 술 등 과한 음성음식들을 즐겨 먹으며,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해 몸이 잘 붓는 사람들이 챙겨먹으면 좋은 음식. 신장기능이 약해져있기 쉬운 당뇨초기에도 도움이 된다. 단호박, 팥, 소금, 물 이 네가지 재료만으로 만들어 재료 본연의 달콤한 맛을 이끌어 내기에, 반찬뿐만 아니라 간식으로도 야금야금 꺼내먹는 아이. 

 또 하나의 기본 중의 기본. 연근 톳조림. 폐와 기관지를 튼튼하게 하는 연근. 워낙에 기관지가 약하기에 연근철에는 빼놓지 않고 연근을 챙겨먹는다. 건조해지고 일교차가 커 호흡기가 바빠지는 이 계절. 마른 기침, 가래,비염 등의 반응도 나오며 점막과 기관지가 약해지기도 쉬운 계절이기도 하다. 이러한 계절에 점막과 기관지를 보호해 주면서도 음으로 기울어 있는 몸에 양의 기운을 더해 주는 연근은 챙겨먹고 싶은 채소이다.


 한편, 톳은 비교적 중용에 가까운 성질을 갖는 해조류 중에서도 양의 성질을 갖는 해조류. 특히 술, 설탕 등 체내를 산화시키면서도 과한 음의 성질을 갖는 음식을 많이 먹은 사람들에게 좋은 알칼리성이자 양성의 재료이다. 조혈기능이 탁월해 빈혈이 있거나, 생리중, 생리후 여성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식재료. 채식을 하다보면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질문 다음으로 많이 듣는 것이 철분에 관련된 질문. 같은 채식이어도 ‘식물성이라면 뭐든 괜찮다’라는 주의가 아니라,  마크로비오틱으로 내 몸에 필요한 것들을 부족하지 않게끔 먹고 살면 위와 같은 질문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마크로비오틱에서는 주방이 곧 약국이며, 땅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들이 종합 비타민이 된다.

 다녀온지 얼마나 됐다고 그 사이 또 시장 풍경이 바뀌어 있다. 고들빼기철이 돌아왔다. 경상도 출신인 할머니는 서울놈들이 고들빼기 맛을 봐서 그런가 고들빼기가 너무 비싸졌다며 투덜대시기도 하시고. 

 연근 톳조림을 만들어두면 먹을 수 있는 별미. 톳 파스타. 무청을 썰어 함께 볶으면 파스타를 먹는데도 밥을 먹는 듯한 느낌 마저 든다. 특히나 파스타는, 이탈리아의 더운 지역에서 시작된 음식인만큼 사용하는 재료도 음의 성질을 지닌 메뉴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양에 가까운 재료들을 사용한다면, 추운 계절에 파스타를 먹더라도 동아시아인에게 맞는 중용의 밸런스를 가질 수 있다. 


 늘 이렇게 비슷하게 먹고 비슷하게 살지만, 나에게 편안한 나의 일상. 비슷하게 살다가도, 외식 할때에는 콧구멍에 바람쐬어 주 듯, 내 몸에 부담이 없을 정도로 다른 것들도 먹어보고. 친구들이랑 깔깔 웃어도 보고. 크지않을 정도의 높낮이가 있지만 나에게 부담없는 평탄한 삶이 그저 감사하고 소중한 요즘.


도쿄에서 마크로비오틱을 배우는 스토리는 이곳에

마크로비오틱 푸드 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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