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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Nov 15. 2018

말이 살찌는 계절이란 이런건가

11월 둘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언제나처럼 월초에는 도쿄에 마크로비오틱 수업을 들으러 다녀온다. 수업이 있는 주말에는 걱정이 없지만, 수업이 없는 평일에는 평소와 비교하면 식생활이 영 엉망이 된다. 몇일을 연달아 아침 식사를 카페 스콘으로 때우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도쿄의 지인들과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갖기도 하기 때문.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시간은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되었지만, 이번에도 여지없이 피로를 몸에 달고 귀국했다. 그렇게 귀국후 맞이한 첫 아침식사는 역시 간소하게 차리고 싶다. 그저 국에 콩자반 놓고, 눈 번쩍 뜨이게 하는 우메보시 한알과 가볍게 먹는 밥이 그리웠다. 이것저것 걸러내고 고생했을 장기에도 휴식을 주어야 하는 법. 

 얼마 전 읽은 장준우 님의 글에 몹시 공감했다. 물론 가벼운 질환을 잠시 다스릴 효능이 있는 식재료도 있지만, 최근에는 못먹어서 생기는 병보다 너무 먹어서 생기는 병이 더 많다. 당뇨, 비만, 고혈압 등의 성인병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뭘 먹을까보다 뭘 먹지 말아야할까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는 슈퍼푸드에 열광하기 보다 그 계절, 그 지역, 나의 체질에 맞는 것을 골고루 챙기는 것이, 스스로의 몸에도, 지갑 사정에도 이득이다. 몸에 이상이 온다 싶을 때에도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고 내 몸에 이상반응을 불러온 장본인인 음식을 그만 먹는 것고 소식을 하며 장기에게 휴식을 주는 것 부터 시작하는 것이 빠른 치유로 연결된다. 나의 브런치에서는 식재료가 갖는 효능에 대해 종종 언급해왔지만, 그런 것들이 '만인이 꼭 챙겨먹어야 할 음식'으로 인식되는 것 만큼은 피하고 싶다.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종일 비가 오는 날도 있었다. 비도 오고 피로도 쌓여 온몸이 축축 처지는 날에는 양의 기운을 더해준다. 현미보다 양의 성질을 가진 기장을 넣어 밥을 짓고, 미소시루에 넣을 채수는 표고버섯보다 다시마의 비율을 늘린다. 콩류 중 양의 성질이 강한 팥을 다시마와 졸여 소금만으로 간을 한 팥다시마조림은 이 날 반찬으로 내고, 나중에는 간식으로도 야금야금 집어먹었다. 자꾸 집어먹게 되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인 녀석.

 으실으실 춥기도 했다. 뜨끈한 버섯간장국물에 칡전분을 풀어 넣어 탕수육 소스마냥 녹진하게 소스를 만들었다. 흔히 구할 수 있는 고구마 전분, 감자 전분, 옥수수 전분은 모두 여름 채소 혹은 초가을 채소가 원료이며 음의 성질을 갖는다. 한편, 칡 전분은 상당히 강한 양의 요소. 무척 귀해 아끼는 재료이기는 하지만 이런 칡전분을 국물에 풀어 넣어 먹으면 몸에 열기를 가동시켜준다. 리마에서는 칡 전분을 사용한 요리를 하고 나면 선생님들이 농담을 반 쯤 섞어, 무척 귀한 재료이니 국자에 묻은 것도 남김없이 빨아먹으라고 할 정도 였다. 다른 전분처럼 그 본연의 맛은 강하지 않으니 여러 요리에서 요긴하게 사용된다. 이렇게 만든 칡버섯소스는 짜지 않게 은근하게 졸인 무에 얹어 밥반찬으로 내어본다. 어묵탕에 들어있는 무가 그립지 않은 맛, 그리고 온기. 

 송보라 쉐프님의 문토 모임, 쉐프의 테이블의 무주 여행에 동참했을 때, 지름신이 강림해 사온 고사리. 얼마전 마르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사야한다는 의무감에 불타올라 집어온 유채. 이 아이들은 한살림에서 데려온 취나물과 함께 나물 삼총사가 되었다. 똑같이 나물이라 불려도 만드는 방법은 각양각색. 심지어‘시금치 나물’이라고 불려도, 소금으로 간을 한것, 조선간장을 쓴것, 된장에 버무린 것, 다진 마늘을 넣은 것 등등. 그 레퍼토리도 무궁무진하다. 애호박 나물은 심지어 생 애호박 나물도 있고 말린 애호박을 사용한 것도 있다. ‘나물’이라는 한 장르만으로도 수백, 수천가지 레시피가 등장할 것이다. 그래서도 한식은 재미있고, 나는 그래서도 나물을 좋아한다.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반찬을 세개 이상 올리는 일이 없는 내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진수성찬을 차렸다. 엄마와 거의 보름만에 만났다. 나는 도쿄에 다녀오고 엄마는 여행으로 중국에 다녀왔기 때문. 엄마도 피로를 짊어지고 돌아왔다. 목이 따끔따끔하고 오한이 든다시니, 연근과 뿌리채소를 듬뿍넣고 다시마국물에 졸여 내어본다. 감기 기운과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오랜만에 엄마를 만난 핑계를 대고 베이킹할때가 아니면 잠들어 있는 오븐을 돌려 그라탕도 만들어 본다. 날이 추워지니 몸이 지방을 쌓아두겠다고 야단법석인지 녹진한 것이 그리웠다.

 가끔 이렇게 늘어지게 먹으면 어떤가. 습관이 되지 않으면 될 뿐. 또 다시 소박한 밥상으로 돌아온다. 두부무침 레시피를 살짝 바꿔봤는데, 어마어마하게 보송하고 맛나다. 엄청난 것을 만들어 버린 느낌이 든다. 영업비밀에 부쳐야겠다. 늘 간장에 졸이던 우엉과 당근을 이번에는 올리브오일을 버무려 오븐에 로스트한 뒤, 씨겨자에 마리네이드 해뒀다. 이것 또한 밥도둑, 빵도둑이 되겠구나.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더니, 늘 소식하던 나에게도 식탐이 찾아왔나 보다. 긴장해야 겠다. 


도쿄에서 마크로비오틱을 배우는 이야기는 이곳에

마크로비오틱 푸드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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