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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Nov 30. 2018

평생 이기지 못할 롤양배추의 맛

11월 넷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집밥과 베이킹

 11월이 어떻게 지나갔나 모르겠다. 초반열흘정도는 일본에 수업을 들으러 다녀오느라 훌쩍 시간이 지나고 중반부터는 팝업식당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덧 11월의 마지막 날이 눈앞에 나가왔다. 중간에 감기기운으로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팝업식당 준비를하며 베이킹을 자주했다. 가급적 유기농 재료를 사용하려고 이 고민 저 고민을 하며 메뉴를 생각하고 있다. 유기농 말차로 말차스콘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유기농 말차는 무척 비싸 손을 대지 못하다가 한살림에서 뽕잎가루를 발견했다. 그렇게 뽕잎가루와 팥을 버무려 만든 뽕잎스콘. 은은한 뽕잎향이 제법 잘어울리다. 하지만 설명이 어려워 내 팝업식당에 나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12월부터 시작하는 팝업식당정보는 이곳)

 베이킹에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던 여름도 어느덧 옛날이야기가 됐다. 요즘에는 베이킹은 물론이고 요리를 할때에도 오븐을 즐겨 사용한다. 최근에는 미니 그라탕을 즐겨만든다. 치즈와 루 없이 식물성 재료들만으로 만들었지만 놀랍도록 녹진한 그라탕. 연두부 크림 아래 숨겨진 채소도 마크로비오틱 특유의 조리로 달달하면서도 부드럽다. 이번주 오픈을 맞이하는 나의 팝업식당 첫 메뉴로 등장할 예정. 여기에 당근샐러리 포타주와 즐겨먹는 우엉연근조림. 뿌리채소들의 노란 빛이 예쁜 나의 식탁이구나.

 이렇게 그라탕 같은 것을 먹는 날도 있지만, 역시 된장국에 어느집에나 있을 듯한 도구로 만드는 반찬들로 꾸린 식탁이 나에게는 가장 익숙하다. 마크로비오틱 대표 반찬들로 한 상 차려본다. 장 건강을 지켜주며 면역력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우엉연근조림과 오랜 지방을 분해하는 능력이 뛰어나 콜레스테롤이 높은 사람이 챙겨 먹으면 도움이 되는 무말랭이 조림. 하지만 나에게는 딱히 장건강을 지키기 위해 또는 콜레스테롤이 높아서 먹는 것이 아니다. 그저 맛있어서 먹는다. 설탕 한톨 없이우엉의 흙향을 날려 달큰하게 졸인 우엉연근조림도, 무말랭이 국물이 시원하면서 고소한 무말랭이 조림도. 다른 그 무엇보다 현미밥이 제일 맛있다. 가끔 밥을 다 먹고 식탁을 정리하다 말고, 주걱에 붙은 남은 밥알까지 떼어 먹는다. 마크로비오틱에서 말하는 건강을 체크하는 요소 중의 한가지는 ‘밥이 맛있게 느껴지는가’ 이다. 바른 입맛을 가졌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관점이다. 마크로비오틱 식생활을 하며, 재료 본연의 맛에 행복해 할 수 있는 입맛을 갖게 된 것을 보아하니 나도 많이 건강해 진 것 같다. 할 일이 많아 눈코뜰새 없이 바쁜 하루가 끝날때 쯤이면 맥주와 카라아게 생각이 간절하던 나는 이제, 바쁜 하루가 끝나도 야식이 그립기 보다는 몸을 풀어줄 요가가 먼저 생각난다. 

 첫눈이 서울을 지나갔다. 첫눈부터 대설주의보라니. 스케일도 크다. 홍콩에 사는 손녀(나에게는 조카)를 위해 아빠가 아침부터 일어나 옥상에 올라가 눈 사진을 찍어다 주셨다. 토마토와 가지를 키우고 조카와 함께 토마토를 따던 옥상에 어느 덧 소복히 눈이 쌓였다.


 소복소복 눈 쌓이는 소리를 들으며 스콘을 굽는 시간은 꽤나 낭만적이다. 심지어, 타이밍이 좋게, 팝업식당 오픈 전에 아주 만족스러운 레시피가 나왔다. 조금 더 토실토실한 두께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잘 나왔다. 백밀함유량을 대폭 낮추고 통밀 비율을 늘린데다가 백설탕을 쓰지 않은 만큼 더 많은 분들이 스콘을 편하게 먹을 수 있을 듯하다. 내가 만들었지만 참 잘 만들었다. 이렇게 구운 스콘은 첫눈이 오던 날,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 선후배님들 손으로 돌아갔다.

 채소는 맛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줄 채소요리는 참 많지만, 그 중 한가지는 로스트 베지터블이 아닐까. 채소에 소금을 뿌려 올리브오일에 굴리고 허브를 얹어 구운 참 심플한 음식. 하지만 채소 본연의 달콤한 맛이 한 껏 살아나며 허브 향을 살포시 머금은 이 음식은 미트러버도 채소 맛에 눈 뜨게 하는 기적같은 맛을 지녔다. 겨울철 파티음식으로도 제격이다.

 따뜻하고 든든한 것들이 먹고 싶어 양배추를 집어왔다. 양배추를 포근하게 쪄 그 안에 두부와 완두콩 등으로 소를 만들어 돌돌 말아 낸 롤양배추. 무 크림스튜에 적셔 먹으니 세상 따뜻하다. 롤 양배추를 먹으면 대학생 때 학교 근처 즐겨가던 카페 생각이 난다. 교토의 데마치야나기역 근처 아주 작고 오래 된 카페. 주인 아저씨의 흑인음악 사랑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학교와 집에서도 가까워, 일주일에 서너번은 그 곳을 찾았고, 주인장 부부는 나를 딸처럼 아껴주셨다. 그 곳은 매일 메뉴가 바뀌는데, 가끔 토마토소스에 졸인 롤양배추가 나오는 날이 있었다. 그 메뉴를 썩 좋아해 롤 양배추가 나오는 날이면 운 좋다 생각하며 주문하기도 했다. 그렇게 롤 양배추와 마가린을 바른 호밀빵을 먹고 진한 커피를 마시며 주인장 부부와 두시간은 수다를 떨곤 했다. 주인장 부부는 우리 부모님보다도 나이가 훨씬 많으실텐데, 우리는 세대를 뛰어넘고 영화, 음악, 정치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렇게 수다를 떨고 카페를 나설 때 쯤이면 주인장 아주머니는 시골에 있는 밭에서 갖고 왔다며 채소를 한아름 신문지에 싸서 나눠주시거나 영업 후 남은 빵을 챙겨주시곤 했다. 교토의 시골소녀였던 나에게는 그렇게 동네 카페 주인과 수다를 떨고, 얻어온 제철 채소로 요리를 하고, 남자친구와 나눠 먹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사소한 일상이었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가 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 롤 양배추는 시판 냉동식품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유난히도 뜨겁던 커피는 미리 내려둔 커피를 냄비에 데워 내어주신 것이라는 점 정도야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교토의 커피는 그 곳의 커피이다. 내 기억속 롤 양배추는 역시 그 곳이 최고일 것이다. 앞으로도 내가 만든 롤양배추가 그 맛을 넘을 일은 없을 듯하다.



도쿄에서 마크로비오틱을 배우는 이야기는 이곳에

마크로비오틱 푸드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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