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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Dec 06. 2018

집밥. 집밖을 나오다.

11월마지막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집밥

 11월의 마지막주는 팝업식당 준비로 꽉 채워 보냈다. 바쁘게 지내면 식생활이 엉망이 되기가 쉽다.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프로젝트로 바쁠 때에는 끼니를 챙길 시간 조차 없고, 식사시간이 생겨도 편의점 도시락으로 대충 때우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달랐다. 팝업식당 오픈에 앞서 메뉴를 구성하고, 미리 레시피를 정리해 다시 만들어보고, 미리 만든 것들 사진을 찍어보는 등, 요리를 하는 시간이 많았다. 때문에, 이번 팝업식당은 내가 평소 좋아서 먹는 것들을 대중에게 내어보는 시도인만큼, 일을 하면서도 밥 만큼은 내가 평소 먹는 것들과 똑같았다. 굳이 힘들었던 점을 꼽자면 며칠동안 같은 메뉴를 먹어야 했다는 점이었겠지만, 평소에도 좋아하는 음식에는 크게 질리지 않는 편이라 이 역시 큰 어려움은 아니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비슷한 것들을 먹기 전의 마지막 식사. 

 어느덧 장을 보러 가면 섬초가 싸게 나와있다. 어릴적부터 시금치를 즐겨 사용하던 우리 엄마. 한동안 또 우리집 식탁에는 시금치가 자주 들락거리겠지. 한편, 팥과 마찬가지로 검은 콩 역시 신장기능을 돕는 식재료이다. 신장이 지치기 쉬운 겨울철, 효자와도 같은 재료. 이 검은콩으로 만든 콩자반을 곁들여본다. 여기에 식당영업을 준비하며 만들어본 미나리페스토에 구운 연근을 버무려 올렸다. ‘최후의 만찬’이라 불러보려 했지만, 사진을 다시 보니 만찬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한끼. 제철을 맞아 한껏 물오른 재료를, 그 시기의 내 몸 상태에 맞춰 먹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팝업식당을 준비하며 고민이 많았다. 마크로비오틱 자체가 일반 대중에게는 아직 낯설기도 하며, 그동안 마크로비오틱으로 외식업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도 했다.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의 체질, 컨디션에 맞춰 메뉴 구성, 조리법을 바꾸는 것이 마크로비오틱 다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맞는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이런 고지식한 의견 때문에도 마크로비오틱의 문을 두드리기도 전부터 마크로비오틱을 어렵고 특이한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팝업식당 정보는 이곳)

 그래서 조금 편하게 즐겨보기로 했다. 내 음식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좋아서 평소 먹는 것을 내어 보는 것. 이런 즐거운 기회를 굳이 머리를 싸잡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마크로비오틱과 다를 수도 있지만, 나의 마크로비오틱은 이래요.  

 단어가 특이해서 그렇지, 현미밥에 제철 채소 반찬을 곁들인 집밥을 떠올리면 쉽죠.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오늘’처럼 마크로비오틱은 그저 편하고 자연스러운 삶의 한가지 방식이예요.


 이런 마음이 전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캐주얼하게 더 많은 사람에게 마크로비오틱을 경험할 기회를 늘려보자는 생각에서 첫주의 메뉴를 구성했다. 

기본중의 기본 현미밥.

표고버섯, 다시마 채수에 된장을 풀어 끓인 근대 된장국. 

겨울철 지치기 쉬운 신장을 도와줄 단호박 팥조림. 

동물성 식품인 버터와 계절감에도 맞지 않는 밀가루 루 대신, 연두부, 현미가루, 누룩소금으로 크림을 만들어 얹은 연두부 누룩소금 크림 그라탕. 

젓갈을 사용하지 않고, 극음성의 설탕 대신 배와 홍시로 달콤한 맛을 내며, 밀가루 풀대신 조금더 양의 성질을 가진 찰수수가루 풀을 사용한 깍두기.

반찬에도 제철단감을 넣어, 디저트가 따로 필요 없던 참깨두부소스에 버무린 쑥갓 단감 무침.


이중 단 한가지도 나의 글에 등장한 적이 없는 메뉴는 없다. 늘 내가 일상적으로 먹는 메뉴들이다. 메뉴를 구성해 놓고 보니, 평소 내가 해먹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마크로비오틱의 원칙을 따른 것들이기에 계절감이 맞지 않는 일도 없을 뿐더러, 크게 음 또는 양으로 치우쳐져 있지도 않았다. 이 계절 갖기 쉬운 질환들에도 대응한 메뉴들이었다. 그렇게 늘 우리집 식탁에 오르던 나의 집밥이 논현동을 떠나 상수동에서 다시 태어났다. 

 영업첫주. 분에 넘치게 많은 분들이 나의 팝업식당 ‘오늘’을 찾아주셨다. 준비한 재료가 많지 않아서도 점심 식사는 연일 솔드아웃되었고 머핀 또한 첫날부터 솔드아웃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행복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에서 주로 나를 지켜봐주시는 분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은 여자 분이 많아서 인지, 저녁때는 내가 준비한 만큼 손님이 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첫주영업이 끝나고, 다음날 부터는 저녁영업을 위해 준비했던 음식들을 야금야금 먹으며 지냈다. 아쉽게도 저녁영업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딜 두부딥과 미나리페스토가 남았다. 남아서 아쉽다기 보다,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맛본 사람이 몇없어 아쉬웠다. 특히 딜 두부딥은 아침식사 삼아 빵에 발라먹다 보면 아침부터 와인을 따고 싶은 충동이 드는 맛. 미나리페스토 역시 파스타 또는 구운 뿌리채소에 버무려 먹으면 술안주로 제격. 하지만 제아무리 프로덕트가 좋아도 그 프로덕트에게 맞는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몸소 깨닫게 한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나에게는 더 많은 시간이 남았다. 야심차게 준비한 아이들은 다시 만들어 다른 날 또 새롭게 선보이면 된다. 어찌됐든 우리집 주방에 잠들어 있던 나의 마크로비오틱 집밥이 집밖을 나왔다. 이제 남은 팝업기간 동안 더 많은 사람에게 나의 즐거운 마크로비오틱을 나눌 일만 남았다.


도쿄에서 마크로비오틱을 배우는 이야기는 이곳에

마크로비오틱 푸드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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