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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Dec 13. 2018

얌전하고 수수한 빛깔. 겨울의 식탁.

12월 둘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집밥

 팝업식당을 무사히 오픈했다. 아쉬운점도, 기쁜 점도 있었지만 어찌됐든 지나간 일이고, 주말마다 새로운 메뉴로 식당을 열어야 한다. 팝업식당이 끝나는 두달 뒤에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과제.

 일을 내고 말았다. 뽕잎을 넣은데다가 팥까지 넣고 현미가루로 만든 머핀이니 설명이 어려워 팝업식당 메뉴로는 낼일이 없을 것 같던 뽕잎머핀을 메뉴로 올렸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분이 팥품뽕이라는 신박한 이름을 지어주셔서 설명이 간단해졌다. 팥을 반죽에 버무린 것이 아니라 앙금을 빚어, 지어주신 이름대로 반죽속에 품어주었더니 보기에도 귀엽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 같던 뽕잎 머핀이 지어주신 이름덕분에 토요일 일요일 모두 이른 시간에 솔드아웃 되었다. 

 지난주 팝업식당의 메뉴.

 현미밥

 당근포타쥬

 단호박 오븐고로케와 딜 두부딥

 알배추김치

 로스트연근 홀그레인머스터드 마리네

 참깨두부소스에 버무린 브로콜리


  당근 포타쥬는 문토 모임에서도 만들었지만, 처음 맛보는 분들은 모두 당근과 샐러리로 이런 맛이 나냐며 놀라는 메뉴. 만드는 과정을 보면 간단하면서도 몸에 부담을 주는 재료가 없어 한번 더 놀란다. 녹진하게 만들기 위해 밀가루를 사용하는 일반 스프와 달리, 밀가루 대신 현미밥을 사용하는 나의 포타쥬. 보관도 쉽고, 데워먹기도 편해 병에 담아 진열해 두었더니 꽤나 인기였다. 토요일 저녁에는 이 포타쥬와 딜 두부딥, 스콘은 수량이 적은 가운데, 사가고 싶어하는 손님들이 많아, 초면인 손님들끼리 서로 양보하며 나눠 사가는 훈훈한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지난주 메뉴들은 사실 손이 무척 많이 갔다. 특히 고로케. 국산재료를 사용하면서도 안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공한 기름을 보기 드문 우리나라인 만큼, 기름이 대량으로 필요한 튀김은 가급적 만들지 않는다. 또한 튀김 기름을 재사용하기도, 버리기도 꺼림칙해서도 튀김은 내 주방에서는 거리가 멀다. 때문에 고로케를 만들더라도 튀기지 않고 오븐에 굽는다. 이 오븐 고로케를 맛있게 만드는 나의 비법 아닌 비법은, 미리 한번 구운 빵가루를 입히는 것. 다만 빵가루를 미리 구워두고, 고로케 소를 조리하고, 밀가루 물과 구워둔 빵가루를 입혀 오븐에 굽는다는게 말이 쉽지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 하지만 맛은 튀긴 고로케에 뒤지지 않지만 몸과 자연에게 주는 부담은 압도적으로 적을 것이다. 

 브레이크 타임때 친한 친구들이 찾아와 말동무도 해주고, 몇가지 소일거리도 도와주었다. 손님들이 많았던 저녁 시간 때에는 다른 손님들 식사를 우선하라며 양보해주기도 하고, 본인들이 찜해두었던 스콘이며 포타쥬를 손님들을 위해 포기해주기도 했다. 남들과 다른 식생활을 하며 남들과 다른 일을 하는 나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친구들에게 늘 고맙다. 이런 친구들이 있어, 남들과 다른 생활에 불평을 하기 보다는 감사하며 지낼 수 있게 됐다. 


 팝업식당도 2주해보니 그나마 요령이 생겨, 이번주에는 영업후 남은 음식이 지난주보다 적었다. 지난주에는 한동안 남은 음식을 먹으며 지냈지만, 덕분에 이번주에는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식사를 하며 지냈다.

 무가 맛있는 계절이다. 하얗기만 한 녀석이 이리도 달다. 청량한 무즙이 뿜어져 나오니 칼질을 할 때부터 얼마나 맛있을지 예상이 간다. 이런 무로 요리를 하는 시간이 즐겁다. 우리 할머니는 일찌감치 무나물을 만드셨고, 나는 깍둑썰어 깍두기를 만들어 본다. 처치곤란해 냉장고에 박혀있기 쉬운 무이지만 이 계절, 우리집에서는 매주 무를 산다. 무나물과 다른 나물 반찬, 때로는 뿌리채소로 만든 조림을 곁들이니 영락없는 겨울빛이구나. 

 겨울에는 뿌리채소도 먹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년동안 말리고 저장해 놓은 것들을 먹는다. 이런 마른 것들 또한 얌전하고 수수한 빛깔. 여름철, 토마토, 가지, 옥수수로 쨍하던 식탁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얌전하면서도 수수한 빛으로 함께 변한다. 말린취나물을 손질해 밥을 짓고 달래장을 곁들여 먹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내 나름의 마크로비오틱 스타일로 마른 나물을 손질하는 방법을 정착시킨 듯 하다. 물에 너무 오래 불려 모처럼 품어온 양의 성질을 과하게 음성화 시키지 않으면서도, 특유의 향취도 지닌채 부드럽게 잘 손질됐다. 마크로비오틱의 본고장에서 마크로비오틱을 배웠지만, 일본의 식문화를 기본으로 가르치기에, 우리나라 특유의 식문화에 대해서는 나름의 해석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가고 시행착오를 해가는 것이 나는 즐겁다.

 남아있던 미나리를 발견해 메밀전을 부쳤다. 여기에 알싸한 마크로비오틱 파김치까지. 대낮부터 막걸리를 부르는 맛과 비주얼. 나의 팝업식당 오늘의 저녁 안주메뉴로 등장시켜도 좋을 것 같다. 연말 모임으로 밀가루 음식에 지쳐있을 손님들에게, 보드라운 메밀전은 속편한 막걸리 안주가 될 것 같다. 밖에서 먹는 밥인데도 집에서 먹는 것보다도 편한 음식. 나의 음식이 그런 음식이면 좋겠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조각글과 팝업식당운영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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