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연 Dec 19. 2018

방구석에서 귤까먹는 시간은 놓칠수 없어

12월 셋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집밥

 이제 곧 연말이야, 싶더니 어느덧 12월도 2주가 지났다. 팝업식당도 3주차 영업을 했다. 나의 식당에서 세번째 플레이트가 나갔다.

 지난주 플레이트.

 -현미밥

 -단호박 과육과 단호박껍질을 나눠 두가지색, 두가지 색으로 만든 샐러드

 -연근과 두부를 넣은 유부주머니 나베와 제주레몬으로 만든 폰즈

 -참깨소스와 감귤을 올린 무, 브로콜리 소테

 -무말랭이 조림

 -그리고 젓갈과 설탕없이 만드는 나의 마크로비오틱 깍두기

 

 마크로비오틱의 기초를 지키고 싶다는 고집이 있다. 때문에, 기본적인 반찬중의 한가지인 무말랭이 조림도 올려보고, 외식업계에서는 고운 때깔을 위해 천대받는 단호박 껍질도 나의 식당에 등장했다. 하지만 껍질을 노란 단호박 과육과 함께 으깨버린다면 맛있고 건강에는 좋지만 예쁘지는 않은 음식이 될것이 뻔하다. 껍질도 버리지말고 사용하되, 껍질은 과육에서 발라내어 따로 으깨 두종류의 단호박 샐러드를 만들었다. 과육부분은 커리향 샐러드로 만들고 껍질부분은 견과류, 머스터드와 섞어 식감을 살린 샐러드로 만들었다.


 겨울다움을 한껏 느낄 메뉴도 넣어보았다. 연근과 두부로 속을 채워넣은 유부주머니 나베. 제철 알배추국물이 시원하다. 다른요리에 채수를 낼때 사용한 다시마를 한번더 사용해 국물을 내고, 채수에 내고 남은 표고버섯 건더기도 유부주머니 소에 넣으니 정말 버리는 것이 없다. 한살림에서 제주산 레몬을 발견했으니 상큼한 레몬폰즈까지 곁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점심 마감시간을 넘긴 시간. 조심스럽게 브레이크 타임이 아니라면 들어가도 되냐는 질문과 함께 어린아이와 부모님, 이렇게 세명의 손님이 들어왔다. 저녁 시간까지 시간은 많았으니 나는 이들을 맞이 했고, 그렇게 손님들의 늦은 점심 주문을 받았다. 하지만 비건 식당인 것을 모르고 들어왔는지 메뉴를 보고나서야 비건식당인 것을 알고 잠시 당혹스러워 하는 눈치. 얼마전에도 늦은 시간에 아이와 함께 들어왔다가 고기반찬이 없다는 것을 알고, 미안해하며 나간 손님이 있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고마운 꼬마손님이 브로콜리 소테를 남김없이 긁어먹어, 반찬을 추가로 주문받을 정도였다. 어떻게 해야 브로콜리가 이렇게 구워지느냐, 옆에 있는 하얀 것은 정말 무가 맞냐는 질문도 받으며 그렇게 늦은 점심에 찾은 손님들이 나에게도 즐거운 기억을 선사했다.

 낮부터 막걸리를 열어준 손님들도 계셨다. 평소 저녁에만 내는 메뉴이지만 허브향 채소오븐구이를 안주메뉴로 내었다. 별거아닌 듯 하지만 정말 맛있는 음식의 대표주자. 채소는 맛이 없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음식이다.

 채식을 하며 요가를 즐기는 나를 보며, 우리 형부는 ‘이효리처럼 나중에 서울을 벗어나 사는 것도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의외로 사람이 많은 도시가 싫지만은 않다. 이른 주말 아침 출근길. 전철안에서 사람구경을 하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 시간은 꽤나 즐겁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갖고 얽히며 사는 것은 달갑지 않지만, 사람들을 관찰하며 이들로부터 영감을 얻는, 혼자가 아닌 혼자의 시간이 좋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서도 음양의 조화를 원하는 듯 하다. 사람이 많아 복잡한 서울을 떠나는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처럼 연결된듯 연결되지 않은 듯한 도시의 삶을 바라는 사람들도 사실은 꽤나 있지 않을까. 이런 사람들은 서울을 떠났다가 아차, 싶을 수도 있다. 

 이틀동안 그렇게 밥을 짓고도, 주말이 지나 월요일이 되어도 밥사랑은 끊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된장국도 등장시켰다. 무청을 넣은 된장국과 마크로비오틱 김치, 연근조림, 미역줄기볶음. 밭과 바다 양쪽에서 제철의 에너지를 한껏 품은 재료들로 채우는 밥상은 늘 그렇듯 맛있다. 

 한반도의 겨울은, 몇달 전 여름이 왔던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춥다. 그렇게 기온만을 생각해도 음성인 계절에, 바깥 활동도 줄어드니 더더욱 몸상태는 음으로 음으로 기울어 간다. 하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무한반복하며 따뜻한 방구석에서 손가락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는 시간은 겨울철 놓치고 싶지 않은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나이지만, 음으로 치우치지 않겠다며 이런 시간도 없이 겨울을 보낸다는 것은 너무 인간미가 없어지는 것 같다. 인생을 즐기기 위해 이런 시간은 만끽하되, 몸이 과하게 음으로 치우치지 않게끔, 신체 활동을 통해 양의 요소를 더할 시간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그렇게 추운 겨울밤이지만 요가매트를 챙겨들고 요가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주말 내도록 선채로 요리를 했지만, 누워만 있는 것 보다는 1시간 30분짜리 빈야사 요가를 하니, 그제서야 몸이 풀린듯한 느낌이 든다. 나도 모르는 사이 배에 힘을 빼고 그저 싱크대, 조리대에 기댄채 요리를 해 허리에 무리가 오고 있다는 것을 요가를 하며 실감했다. 오늘부터 조리대 앞에 있을때에도 바른 자세로 서 있어야지...이렇게 요가는 나에게 늘 고마운 리프레쉬가 되어주기도 하고 몸 상태에 귀기울일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주기도 한다. 

 세상은 크리스마스로 물들겠지만, 나의 식탁에서는 크리스마스보다는 동지를 의식해보려고 한다. 1년중 해가 가장 짧아지며 음의 성질이 강해지는 날, 동지. 이런 날, 양의 성질을 더한 마크로비오틱 현미팥죽으로 균형을 잡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보려고 한다. 이 감사한 음식은 이번 주말 손님들과도 나눠야겠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조각글과 팝업식당운영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매거진의 이전글 얌전하고 수수한 빛깔. 겨울의 식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