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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Dec 28. 2018

많은 이가 꿈꾸는 삶을 대신 이루어 가는 담담함

12월 셋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과 베이킹

 행사가 많은 한주였다. 동지, 크리스마스 등. 정신이 들어보니 팝업식당 준비가 다시 눈앞에 닥쳐있다.

지난주 팝업식당 오늘의 메뉴.

-현미밥

-알배추된장국

-연근함바그와 치커리샐러드

-깍두기

-우엉당근조림

-아주까리콩조림을 얹은 고구마 카나페

그리고 동지를 맞아 서비스로 내어드린 미니 현미팥죽까지.


 마크로비오틱의 기본이 가득한 한상이었다. 마크로비오틱 채수, 된장, 마늘, 알배추만으로 끓여낸 심플한 된장국은 마크로비오틱의 기본 중의 기본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중 한가지. 요즘 알배추는 어찌그리 보드랍고 달콤하던지 살살 녹았다. 이틀 연달아 만들며, 틈틈히 먹어 질릴 법도 한데도 질리지가 않는다. 기본 함바그 중 한가지인 연근 함바그와 리마의 상급 발표회 과제이기도 했던 우엉당근 조림 역시 나의 팝업식당에 나왔다. 화려한 음식들을 시도해 보려고도 하지만, 내가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것들은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며 돌아오는 빈 그릇을 보면 다행히도 손님들도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토종콩 중 한가지인 아주까리콩을 사용한 콩조림 역시 설탕없이도 이런 달콤하고 밤맛이 나는 콩조림을 만들수 있냐며 놀라워 하셨다. 

마크로비오틱의 기본적인 것들을 내며, 메뉴에는 이런 것도 끄적끄적해보았다.

 식사메뉴가 하나뿐이던 나의 식당에 메뉴가 조금 늘었다. 메밀전과 채소오븐구이. 밀가루와 섞지 않고 오직 메밀가루와 물, 소금만으로 반죽을 한 이 메뉴는 입이 심심한 손님들에게도 좋은 주전부리가 된 듯하다. 평소 부침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메밀가루만으로 전을 부쳐온 나에게도 익숙한 메뉴. 알배추와도 환상의 궁합이었다. 심지어 음의 계절인 겨울인만큼 밀가루보다는 양성인 메밀이 이 계절 재료로 어울린다. 괜히 강원도에서 메밀을 먹고 일본에서도 동북지역에서 메밀을 먹는 것이 아니다.


 지난 주말에는 식당영업은 점심에만 하고, 저녁에는 마크로비오틱 파티를 가졌다. 크리스마스 시즌 직전의 주말이다보니 많은 분들이 참석하시지는 않을 듯해 소소한 자리로 만들어보려 했으나, 놀랍게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신청해주셨다. 함께 유부주머니를 오므리고 연근 함바그를 빚으며 같은 취향과 관심사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설거지 하느라 다들 고생하셨지만 랩없이 그릇으로 덮어둔 모습을 보니 내심 만족스럽다.

 나이가 들거든, 카페나 음식점을 열어,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로 공간을 가득 채우고, 같은 취향을 갖는 손님들과 매일 즐겁게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을 종종 보아왔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내심 ‘정작 그런 공간을 갖게 되면, 즐겁게 요리하고, 손님들과 대화하기는 커녕, 화장실 청소와 진상 손님들 대응으로 보내는 시간도 견뎌야 할것’이라며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던 나였지만, 놀랍게도 그들의 꿈은 내가 대신 이루고 있었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난로를 틀어놓고 오손도손 모여 앉아, 함바그를 빚는 시간은 참 낭만적인 시간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꿈꾸는, 하지만 정작 나는 마냥 밝게만 바라보지는 않던 삶을 담담하게, 어쩌다보니 내가 이루어가고 있다. 


 아무리 제철재료를 사용한 몸에 부담이 적은 음식이라도, 과식은 좋지 않다. 이틀동안 파티를 즐겼다면 내장에도 쉴 시간을 줘야 한다. 역시나 아침에 일어나니 , 이제 슬슬 적게 먹어도 될 때가 아니냐며 몸이 신호를 보내온다. 

 그렇게 해서 차려본 아침식사. 현미밥과 깨소금, 무말랭이 조림. 놀랍게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당일의 아침식사… 크리스마스와 무관한 삶을 살다보니 이 날을 위해 준비한 특별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선물같은 시간은 이틀 연달은 파티로 보냈으니 이 두 날이 나에게는 크리스마스였다.


 기본적인 반찬들을 만들고 싶어 만든 또다른 반찬들이 무말랭이 해초 샐러드, 그리고 귤과 감식초로 맛을 낸 무. 말린 무와 제철 생무. 영락없는 한겨울의 한반도의 밥상이다. 

 무말랭이 해초샐러드는 샐러드 중에서도 양의 성질을 띄는 샐러드. 양성의 재료들을 사용하는 데다가 샐러드인데도 불구하고 가열을 해 양의 조리를 더한다. 겨울철, 조림요리들 위주의 식생활을 하다가 슬슬 샐러드에 눈이 갈때쯤 차려보니 딱이다. 게다가 당근, 해조류에 무말랭이라니. 식이섬유 끝판왕들에 철분도 풍부하니 장건강을 챙겨 겨울철 면역력을 유지하는데에도 도움이 되며, 철분이 조혈 기능을 돕는다. 


 어지간해서는 부모님 식생활에 간섭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며 서로의 식생활은 존중하려고 하는 편이지만, 용납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한가지 꼽자면 대형 체인점 빵을 드시는 것. 빵봉투에 적힌 원재료명을 읽으면 이것들이 우리 가족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할 마음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간식이나 디저트로 가끔 달콤한 과자나 케이크를 드시는 것 정도야 가끔 즐기는 기호식품이니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식사를, 그것도 외식도 아니고 집에서 먹는 주식을 대형 체인점 빵으로 때우는 것은 우리가족을 돌보는 자연스러운 식사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 대형 체인점 빵 가격에 20년 넘도록 익숙해진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재료들로 만든 빵 가격은 부담이 될때가 많다. 1.5배에서 2배 정도는 가격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아니 빵 주제에 왜 이렇게 비싸’ 라는 평가를 하기 쉽지만, 반대로 그 빵들은 어떤 이유로 그렇게 싸게 만들어 싸게 팔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편이 답이 빨리 나온다) 하지만 밥을 지겨워 하곤 하는 엄마는 일주일에 반 이상은 아침밥으로 빵을 찾는다. 그래서 결국 만들기로 했다. 현미죽 빵. 팽창제, 설탕, 유제품, 달걀 없이 현미죽과 우리밀, 우리통밀, 깨소금으로만 만드는 마크로비오틱 빵. 보드라운 결을 느낄 수 있는 빵은 아니며 떡에 가깝겠지만, 포타주와 함께, 때로는 올리브오일과 함께 먹는 이 빵은 밥이 들어 있는 만큼 든든하며, 그렇다고 해서 속이 더부룩하지는 않은 마법같은 녀석이다. 이번주 나의 팝업식당에도 이 녀석을 등장시키기로 했다. 

 식당을 시작하며 한가지 타협한 메뉴가 있다면, 그것은 스콘이었다. 평소 밀가루 대신, 오트밀을 사용해 스콘을 만들곤 했지만, 재료비가 무척 비싸다. 그래서 재료비와 타협해 밀가루를 사용하되, 우리밀을 사용하며 백밀 함유량을 대폭 낮춘 통밀스콘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밀가루=악’ 이라는 인식이 강해서인지 스콘 보다는 현미머핀이 나의 식당에서는 압도적이게 인기이다. 나름 나도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한번 드셔본 손님들은 모두가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는 나의 스콘이기에, 밀가루 때문에 이 스콘이 천대받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래서 타협하지 않고 정면승부해보기로 했다. 밀가루 없이 만든 메밀 스콘. 밀보다는 비싸지만 오트밀보다는 재료비가 저렴하다. 심지어 오트밀, 밀보다 양의 성질이 강하니, 음의 성질이 강한 과자를 만들더라도 그 성질을 완화시킬 수 있다. 게다가 메밀의 은은한 향이 무척 잘어울리며 하루 묵히면 그 향이 더더욱 깊어진다.

 이렇게 손님들의 반응을 보며 나의 마크로비오틱 공부도 깊어지며, 나의 레시피 폭도 넓어지고 있다. 혼자 집에서 하던 요리를 다른 분들과 나누며 배우는 것도 느끼는 것도 많은 2018년 연말이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조각글과 팝업식당운영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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