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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Jan 10. 2019

말려둔 것들이 주는 즐거움

1월 둘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밥상과 베이킹

작년 1월. 무섭도록 춥더니, 올해는 아직까지는 비교적 포근하게 겨울을 보내는 듯하다. 혹한의 시기에 식당영업을 하는 것을 무척 두려워했는데 아직까지 살만하다.

 지난주 팝업식당 오늘의 메뉴.

 -현미밥

 -돼지감자와 콜리플라워 포타주

 -취나물 현미 아란치니와 당근퓨레

 -콜라비깍두기

 -우엉당근조림

 -브로콜리 두부무침


 하다에서 함께 만든 콜라비 깍두기가 플레이트에 올랐고, 집반찬으로도 즐겨만드는 우엉당근조림, 브로콜리 두부무침도 올랐다. 두녀석 모두 애정하는 레시피.


 양의 성질이 강하고 당뇨에도 특효약이라 알려진 돼지감자를 듬뿍 넣고 포타주를 만들었다. 특유의 향 때문에 다루기 어렵다는 이미지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메뉴로 돼지감자를 다루는 곳을 보는 일이 적다. 이런 돼지감자를 사용해 콜리플라워와 함께 만든 포타주는 귀하디 귀한 음식. 손님들이 돼지감자라는 채소를 낯설어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돌아오는 빈그릇을 보아하니 괜한 걱정이었던 듯 싶다.


 또 한번 튀기지 않은 오븐 고로케를 팝업식당 오늘에서 내었다. 이번에는 현미를 사용한 아란치니. 쌀 고로케다. 한반도의 겨울은 제주도와 같이 따뜻한 지역이 아니라면 제철 노지채소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시기이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따뜻한 계절에 재배한 채소를 말려둔뒤 겨울에 이것들을 나물로 먹는 문화가 생겼다. 말리는 조리 역시, 양의 조리의 한가지. 음의 성질이 강한 겨울철, 이런 말린 나물은 체내 음양의 밸런스를 잡기에 딱이니,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따르며 지혜롭게 살아온 조상님들은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러한 말린 나물을 사용하면서도 외식업인만큼 진부하지 않게 풀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이 아란치니. 취나물을 손질하고 간을 해 현미와 함께 밥을 짓고, 고로케를 만들었다. 여기에 토마토소스 대신 겨울답게 당근 퓨레를 곁들인 요리. 손은 많이 가지만 마크로비오틱을 의식해 고집을 부려보길 잘했다. ‘아란치니’가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은 ‘요 맛있는 것’이라고 불러주시기도 했다.


 ‘곡물채식’을 권장하는 마크로비오틱에서는 가급적 한 끼당, 곡물이 70%이상을 차지하도록 식단을 짜기에, 이처럼 곡물을 사용한 반찬이 많다. ‘저탄고지’, ‘저탄고단’ 등의 다이어트 식단이 인기를 끌며, 탄수화물은 먹어서는 안될 적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엄연히 탄수화물은 필수 에너지원이며, 탄수화물 자체를 줄이기 보다는 생명력은 물론 영양가도 없는 백미, 백밀과 같은 죽은 탄수화물을 줄이는 것이 길이라고 본다. 하지만 넘치는 손님 사랑에 밥을 너무 많이 담았던 듯 하니, 밥을 조금 줄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현미밥 플레이트 만으로는 심심해하는 손님들이 계실까 싶어 매주 재료를 조금씩 바꾸어 메밀전을 낸다. 이번주는 고구마와 쪽파로 만든 메밀전. 해쉬 브라운의 고구마 버전을 생각하며 만든 이 메뉴는 식감과 새로운 조합에 손님들도 즐거워했다. 고구마의 달콤함과 쪽파의 알싸함이 막걸리를 부른다. 하지만 여전히 예쁘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

1차 쌀가루 현미죽빵과 2차 쌀가루 현미죽빵

 우리집 식탁에서 대형 체인점 빵을 몰아내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현미죽빵을 1월에 있을 클래스에서도 선보이기로 했다. 밀가루 알러지를 가진 수강생분이 있어, 쌀가루로 대체할 레시피를 연구중인데, 신기하게도 이게 또 된다. 밀가루와 통밀가루로 만든것보다 떡 같은 식감은 어쩔수 없지만, 겉부분은 캄파뉴처럼 거칠고 단단하게 구워지는 것이 매력적이다. 1차 레시피에서는 쌀가루에는 글루텐이 없어 모양을 잡기 힘들어 머핀들에 구웠지만 2차레시피에서는 모양을 잡고 굽는데까지 개선되었다. 이렇게 나의 레시피의 폭도 넓어진다.

 주말을 보내고 난 뒤, 하루 정도는 남은 음식과 재료를 먹으며 지내지만, 하루가 지나면 또다시 집밥을 짓는다. 식당에서는 고로케나 그라탕도 내지만, 집밥으로는 주로 기본중의 기본을 따르면서 당시 나의 컨디션에 맞는 음식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뿌리채소 된장국과 다시마표고조림, 그리고 취나물볶음. 

 같은 재료로 뿌리채소 된장국을 만들어도 조리법에 따라 음의 성질 또는 양의 성질을 더 강하게 띈 된장국을 만들 수 있다. 이 점은 현미밥도 마찬가지이다. 현미밥이 가장 중용에 가까운 음식이라고는 하지만, ‘절대 중용’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같은 현미로 밥을 지어도 압력밥솥에 지은 현미밥과 전기밥솥에 지은 현미밥은 그 성질이 다르다. 이번 된장국은 양의 성질을 더 강하게 살리고 싶어 우엉을 연필깎듯 얇게 깎아 넣고, 당근과 연근도 얇게 썰어 넣었다. 우엉 연필깎는 시간은 가을 겨울 시즌에만 즐길 수 있는 짧은 명상타임. 사각사각 짧아지는 우엉, 뾰족해지는 우엉끝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좋다. 

 마른 것들을 다루는 것이 즐겁다. 같은 마른 나물이어도 조금씩 다루는 방법이 다르고,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식감, 향이 달라지기에 골치아프지만 즐거운 녀석들. 이번에는 마른 호박, 마른 가지, 드라이토마토로 만든 라따뚜이. 따끈한 냄비요리이기에 포근하고 몸이 따뜻해질 것 같은 인상을 풍기는 라따뚜이지만, 쥬키니, 가지, 토마토 등 몸을 식히는 대표적인 여름철 채소로 만드는 음식. 비건 음식점들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겨울철에도 이러한 토마토, 가지를 사용한 메뉴가 유독 많다는 점. 여름철에는 반갑지만 겨울철에는 적극 손을 대고 싶지는 않은 메뉴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음의 성질을 최대한 억누르고 재료에 양의 성질을 더했기에, 이러한 마른 채소를 사용한다면 겨울다운 라따뚜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즐거운 시행착오를 해본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나름의 겨울 라따뚜이 파스타. 무르지 않고 쫄깃한 마른 채소 특유의 식감에 특유의 향이 겨울다워 즐겁다. 가볍게 졸인 톳이 섞여있어도 밸런스가 맞을것 같다. 그렇게 내가 만든 요리를 칭찬하며 한끼를 끝내지만, 불어있는 면발을 보니 역시 휘리릭 볶아 만드는 파스타보다는 시간을 들여 차린 밥상이 나다운 듯 하다. 


 여전히 동경은 있다. 화려한 스냅으로 만드는 파스타, 칼질 한방에 으깨지는 마늘. 그래도 어디까지나 동경일 뿐. 나는 오늘도 야금야금 재료를 채썰어, 약불에 재료를 조심스럽게 볶아가며 요리하지만, 그래도 재료는 좋아할 것 같다. 꺼질듯한 약불에 밥을 앉혀 놓을때면 냄비속 현미가 ‘아- 불이 은근-하니 따땃-하구나..’ 하고 좋아할 것 같아 괜시리 뿌듯하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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