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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Jan 15. 2019

마크로비오틱으로 식문화를 바라보기

1월 둘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밥상과 베이킹

 올해 겨울은 비교적 포근하게 지내고 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미세먼지… 하루가 멀다하고 환경부에서 미세먼지 경고 메세지가 날아와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미세먼지보다도 지난주 내 마음을 졸인녀석. 압력밥솥이 고장나버렸다. 좀처럼 압력이 차지 않고 김이 새어 나가는게 이상하다 싶었다. 덕분에 바닥은 타고 위는 평소처럼 쫄깃하게 지어지지 않아, 탄누룽지를 먹은 날도 있었다.

 친절하고 빠른 서비스센터 덕분에 빠른시일내에 냄비를 수리받을 수 있었고 한 시름 놓았다. 클래스도 앞두고 있던데다가 지난주에는 예약손님이 많아 압력밥솥이 꼭 필요했다. 그렇게 맞이한 토요일 영업. 점심때만 평소의 두배의 가까운 손님들이 팝업식당 오늘을 찾아주셨고, 그릇과 컵이 부족할 정도였다. 예약손님이 많이들 계셔 바쁠 것은 예상했지만 예약없이 찾아주신 분들도 많이 계셨다. 

 지난주 팝업식당 오늘의 메뉴

 -현미밥과 깨소금

 -돼지감자 포타주

 -취나물 현미 아란치니와 당근 퓨레

 -콜리플라워와 찐 고구마 피클

 -콜라비 깍두기

 -쑥갓단감 두부무침

 12월 부터 이 날을 점찍어 예약해둔 손님들이 많았다. 돼지감자 포타주와 아란치니는 개인적으로 무척 아끼는 메뉴이기도 해, 지난주에도 낸 메뉴이지만 예약해준 손님들을 위해 한주 더 내어보기로 했다. 특히나 노바키친의 곤드레 아란치니를 좋아했던 손님도 올 예정이었기에 아란치니를 꼭 다시 내고 싶었다.


 지구커리에서 나눔해주신 스파이스로 피클을 만들었다. 일반 피클은 설탕과 식초를 가득넣어 음으로 음으로 치우치는 음식. 과감하게 감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식초와 소금으로 피클액을 만들고, 단맛은 찐 고구마로 대체했다. 생양파를 곁들여 빵에 올리면 브루스케타로도 좋을듯 하다.

 디저트에도 신메뉴가 등장했다. 고구마 흑임자 머핀과 차이라떼 머핀. 찐고구마와 흑임자, 쌀조청으로 맛을 내어 어른들도 좋아할 머핀과 인도향 가득한 새로운 느낌의 머핀. 쿠킹클래스 디저트메뉴로 준비한 뿌리채소현미브라우니는 판매할 계획은 없었지만, 이것 역시 엄마가 맛을 보고는 판매해보기를 제안했다. 급하게 소량만 준비해보았는데곧바로 솔드아웃 되었다. 밀가루보다 양의 성질이 강한 곡식가루들을 사용하고, 버터, 달걀 대신 뿌리채소를 아낌없이 갈아넣어, 비건인줄 모를 정도로 촉촉한 브라우니의 식감을 살린 메뉴. 재료비가 비싸고 머핀, 스콘에 비해 만들때 힘이 들어가기에 판매하지 않고 있었지만 손님들과 클래스 수강생분들 모두 무척 좋아해주셨다. 힘은 들지만, 몸에 주는 부담이 적으면서도 놀라운 맛이기에 언제 다시 내어볼 날을 노려보아야 겠다.

 유난히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던 토요일 점심. 갓 수리한 압력밥솥과 가마솥이 총출동했다. 커플끼리 찾아주신 손님들께는 너무 뜨거워지실까 음의 성질을 살린 가마솥밥을, 토론을 위해 찾아주신 손님들께는 열띤 토론을 즐기시라고 압력솥밥을 내어 드렸다. 현미밥 하나를 두고도 성질이 다른 마크로비오틱의 세계. 어려울수도 있지만 퍼즐을 맞추듯 음과 양을 선택하는 마크로비오틱이 내게는 즐거운 놀이같다.

 애매하게 남은 겨울채소들로 미네스트로네를 만들었다. 우엉, 연근, 겨울 무, 고구마, 드라이 토마토에 구운 아몬드까지 넣고 소금을 뿌려 약불에 은근하게 끓여내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이런 따뜻한 수프 한그릇을 들고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보고 있자면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남은 채소들로 만들기에 좋지만, 막상 만들려 하면 필요한 재료가 많아 좀처럼 만들게 되지 않는 것이 이 미네스트로네. 어울리는 여러 채소들이 조금씩 골고루 남아있었기에 운좋게 따뜻한 겨울 점심을 즐겼다. 우리나라의 나물처럼 이탈리아의 미네스트로네 역시 이렇다 할 정의도, 정해진 레시피도 없다. 그 계절, 그 지역에서 남아도는 재료들로 끓여 먹던 이탈리아 서민들의 음식. 이탈리아의 농가에서는 이렇게 계절마다 다른 미네스트로네를 먹으며 삶을 버텨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마크로비오틱에서 말하는 신토불이 아닐까. 그 계절, 그 지역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몸을 환경에 적응시키는 것. 이탈리아의 신토불이이자 이탈리아의 마크로비오틱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현미밥에 된장국이 있어야만 마크로비오틱인 것이 아니다.

 첫수업을 했기에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압력없이 냄비에 밥을 짓고 표고채수비율을 늘려 봄동, 콜라비로 만든 된장국을 곁들였다. 물 없이 채소와 간장, 소금만으로 만들어 낸 무수분 야채찜도 오랜만에 등장. 내가 공부중인 쿠킹스쿨 리마에서 리마 선생님때부터 전해오는 이 메뉴는 ‘재료 본연의 맛’의 정수를 느낄수 있는 메뉴이기도 하다. 미트러버인 아빠도 ‘생긴 것부터가 맛있겠다’며 밥한끼를 해치우셨다.


 평소의 두배에 가까운 손님들을 맞이하고 종일 클래스로 정신없이 돌아간 주말. 예전같았으면 다음날부터 곧장 몸살기운에 드러누웠겠지만, 변함없이 뚝딱뚝딱 밥을 짓고 1시간 30분의 빈야사 요가까지 하고 돌아왔다. 풀만 먹고 힘은 나느냐며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렇게 밥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마크로비오틱을 만난후 체력이 더 강해졌다는 실감이 난다.


 바쁜 주말, 바쁜 일상을 마치고 어둑한 방에서 책을 펼치니 단숨에 소설 한권을 읽어 내려갔다. 바쁜 일과를 마치고 카라아게와 맥주를 찾던 내가, 이제는 요가를 하고 돌아와 소설을 읽다니. 사람이 어떻게 될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조각글과 팝업식당운영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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