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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Jan 22. 2019

따뜻한 생일상이 되기를 바라며

1월 셋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밥상

 1월도 반이 지났다. 무섭도록 춥던 작년에 비해 올해 겨울은 수월하게 지나가는 것 같다. 겨울인데도 나의 식탁에도 조금씩 생채소나 푸른 것들도 보인다. 

 배추와 무를 듬뿍넣고 크림스튜를 만들었다. 당근도 큼직하게 썰어넣으니 한층 더 든든하다. 여기에 무나물과 콩나물을 곁들이고, 윈터롤을 놓아본다. 겨울재료들을 넣었기에 스프링롤이 아닌, 윈터롤. 우엉당근조림과 찌듯 구운 채소들, 구운 두부를 넣어 만든 겨울 월남쌈이다. 식탁 한가운데에 라이스페이퍼를 적실 물을 담은 그릇과 속재료들을 올려두고 엄마가 수다를 피우며 윈터롤을 만들어 먹었다. 이 계절 식탁에 자주 오르는 우엉당근 조림도 이렇게 한끼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팝업식당을 운영한지도 어느덧 7주, 8주가 되어간다. 지난 주말, 이 공간에서 점심에는 마크로비오틱 쿠킹클래스를 진행하고, 저녁에는 식당영업을 하며 꽉채운 이틀을 보냈다.

 이번 쿠킹클래스의 메뉴

-압력없이 냄비로 지은 현미 기장밥

-당근 포타주 (식당 메뉴로도 늘 인기있는 시그니처 메뉴)

-무수분 채소찜

-무말랭이 해초 샐러드

 그리고 시식용으로 내어본 당근머핀, 캐럿라페, 샐러리잎과 당근의 깨무침까지. 주황색 가득한 식탁이었다.

 이번 쿠킹 클래스 주제는 마크로비오틱의 음양이론. 마크로비오틱의 음양이론은 암기하는 지식이 아니라 그 성질을 이해해가는 과정이 필요한 즐거운 놀이. 이런 테마에 맞게 같은 당근으로도 다양한 조리를 하고, 생채소부터 말린 것 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보았다. 식재료의 음양을 이해하기 위한 간단한 퀴즈시간에는 채소가 자라는 환경과 제철, 식재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알아가며 즐거운 질의응답을 이어가기도 했다. ‘쿠킹 클래스’ 이지만 마크로비오틱이라는 이름답게 요리를 넘어 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질 수 있어 수업을 진행하는 나 역시 즐겁다.


 이렇게 쿠킹클래스에서는 마크로비오틱의 기본, 그리고 대표적인 메뉴를 만들고, 저녁에는 또다시 식당영업을 위해 새로운 음식을 차려본다.

 지난주 팝업식당 오늘의 메뉴

-현미밥

-겨울 미네스트로네

-연두부 크림그라탕

-무말랭이 해초샐러드

-단호박팥조림

-깍두기

 우엉, 연근, 겨울무, 고구마 등 뿌리채소들로 만들어 본 겨울 미네스트로네. 뿌리채소의 달콤함과 땅콩의 감칠맛에 드라이 토마토의 산미가 더해지니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연두부 크림 그라탕은 메뉴로 선보일때마다 ‘두부로 어떻게 이런 맛이 나냐’는 평가가 단골멘트가 되었다. 


 지난 주말. 수강생분들도 손님들도 유난히 기쁜 말씀을 많이 남겨주고 가셨다. 배운 요리를 집에서 어머니께 만들어 드렸다는 이야기. 지난 한주간 현미밥을 태워가며 웃기도 하고 다시 생각하기도 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했다는 이야기 등. 내가 알려드린 음식을 다시 실천해 보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이렇게 요리 선생할 팔자인 것을 새삼 깨닫는다.

 하지만 요리사로서 손님에게 음식을 내고, 내가 만든 음식이 빈 그릇이 되어 돌아오는 것 또한 놓칠수 없는 기쁨. 막연히 이런 기쁨도 있지 않을까, 기대는 해보았지만, 식당영업을 해보기 전에는 이것이 이렇게나 큰 기쁨일 줄은 몰랐다. 예약이 많아 편하지 않은 자리에 안내해드렸는데도, 불편하 기색없이 정말 맛있다는 한마디를 건네주시는 손님. 요리하는 분의 정성이 담겨서 그런지 먹는 내내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는 손님. 무심코 건네주시는 한마디가 요리사에게는 큰 힘이 된다. 그렇게 앞으로 나도 외식할때 쑥스럽더라도 짧게나마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보기로 마음 먹어본다.

 영업을 앞둔 며칠전. 여러번 가게를 찾아주신 한 손님으로부터 받은 메세지. 포장용기를 챙겨갈테니, 식사메뉴도 포장을 해줄수 있냐는 요청이었다. 어떤 포장용기가 등장할지도 모르며, 특히 그라탕은 바로 오븐에 구워 내는 것이 가장 맛있기에 고민이 되었지만, 손님의 부탁에 응하기로 했다.


 그렇게 토요일 늦은 저녁. 마감을 조금 넘긴 시간에 손님이 뒤늦게 가게를 찾아주셨다. 마감을 넘긴 시간에 숨가쁘게 들어오고는 챙겨온 밀폐용기들을 꺼내 놓으신다.


 ‘내일이 생일이라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거든요’ 라며. 


생일날 먹고 싶은 음식으로 나의 음식을 찾아주셨다니. 요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평가중 하나가 아닐까. 다른 손님들은 가게를 떠난 늦은 저녁. 몇번이고 가게를 찾아주셨던 손님과 그제서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그리고는 상수동을 떠나 어딘가를 향할 나의 음식들을 포장해드렸다. 부디 즐겁고 따뜻한 생일 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조각글과 팝업식당운영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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