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연 Feb 04. 2019

봄. 그리고 도쿄의 마크로비오틱.

오랜만에 찾은 도쿄. 학교. 그리고 친구들

 12월,1월. 방학에 가까운 휴식기를 갖고 세달만에 수업을 듣기 위해 찾은 도쿄.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일본에서 보내고, 귀국후에도 출장과 수업으로 한달에 한번꼴로 일본에 다녀왔더니 세달만에 이 곳을 찾았을 뿐인데도, 무척 오랜만이게 느껴진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반겨주는 친구들이 있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거리를 가로질러 나와준 친구들. 예전과는 달리 채식을 지향하는 나를 위해 채소메뉴가 많은 음식점을 골라준다. 한국에서는 가족과 함께 살며, 한국의 오랜 친구들을 만나고, 때때로 도쿄로 돌아와 도쿄의 마음맞는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지금. 어찌보면 나에게는 최고의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유바를 마음껏 즐겼다. 콩물을 끓여 생긴 얇은 막을 모아 만드는 음식, 유바. 음의 성질이 강한 유바를 즐기는 것을 보니 확실히 이 곳은 한국보다 봄이 빨리 찾아왔구나. 유바로 부드러운 양상추를 감싸 고추냉이를 올리니 봄이 절로 느껴진다.


 오랜만에 수업을 들으러 왔다. 마크로비오틱 쿠킹스쿨 리마. 마크로비오틱의 창시자 사쿠라자와 유키카즈 부부가 설립한 이 학교에서 정규코스 중 최상위 코스인 사범과 코스를 밟고 있다. 한 달에 한번씩 이 사범과 수업을 듣기 위해 일본에 오가는 것이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동안 쌓였던 질문을 해소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는 시간은 퇴사를 하기 전부터 꼭 얻고 싶던 기회였다. 이렇게 오랜만에 찾은 학교에서 너무나도 소중한 수업들을 들었다. 짧은 시간안에 소중한 input이 너무 많아 이것을 정리하는 것이 버거울 정도.

아마자케, 누룩소금, 누룩간장 등 발효식품을 사용해 만든 런치코스
아마자케 효모를 사용해 만든 딸기 스무디
아마자케로 만든 드레싱을 올린 샐러드. 마요네즈와 같은 향이 나지만 절대로 텁텁하지 않다.

 큐슈에서 오래된 민가를 개조해 마크로비오틱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히라타 선생님. 레스토랑을 운영하시는 만큼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다양한 색깔의 아름다운 플레이트를 선보이셨다. 이 민가에서 누룩소금부터 미소까지 다양한 발효식품을 직접 만들며, 때로는 화려한 디저트까지 내보이는 히라타 선생님답게 이번 수업은 아마자케(감주)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와 봄에 어울리는 글루텐프리 마크로비오틱 디저트. 물론 모든 실습메뉴는 동물성식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비건. 빵효모로도 사용할수 있는 아마자케 효모와 바닐라빈이 한가득 들어 달걀없이 만들었다고는 믿기 어려운 두유 커스터드 크림에 나를 포함한 수강생들의 셔터가 끊이지 않는다.

두유와 두부로 만든 크림과 딸기를 올린 쌀가루 스폰지 케이크
두유 커스터드크림과 시트러스 젤리를 올린 컵 디저트와 코코넛, 딸기 판나코타까지
바닐라빈을 아낌없이 넣은 두유 커스터드크림

 오후 수업은 ‘맛’을 느끼는 원리와 ‘가열’이 ‘맛’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는 사토교수님을 초빙한 이론 수업. 리마는 쿠킹스쿨이지만 요리만을 하는 곳은 아니다. 이론이 없는 요리, 또는 요리를 동반하지 않고 혼자 겉도는 이론은 무용하다는 것이 리마의 철학.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조리실에서 앞치마를 내려두고 화면과 프린트를 마주하고 다양한 초청강사의 수업을 듣는다. 특히나 이번 수업에서 인상깊었던 내용은 전분이 호화하는 원리. 리마 스타일의 현미밥짓기는 바로 이 전분이 호화하는 원리를 그대로 따른 프로세스였다. 음양의 조화 뿐만 아니라 서양식 과학의 원리를 생각해도 더더욱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리마의 현미밥레시피. 이 소중한 레시피로 매일 밥을 짓고 쿠킹클래스까지 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조리대를 앞에 두었지만 프린트물을 놓고 화면을 바라보며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다.

 일요일에는 요리실습 수업이 이어진다. 언제나 쾌활한 리마의 Bad Boy 오카다 선생님. 스스럼없이 손가락으로 소스를 찍어 맛보거나 나누어준 레시피와는 다른 레시피로 시연을 해, 때때로 운영진의 핀잔을 듣기도 해 리마의 Bad Boy가 되었다는 오카다 선생님. 하지만, 장난꾸러기 같은 선생님의 모습에 수업은 늘 활기가 넘친다. 마크로비오틱 중국음식이라는 이번 수업 테마에 맞춰 중국요리 쉐프가 쓸법한 쉐프모자를 쓰고는 웃어보이기도 하셨다. 

언제나 활기넘치는 오카다 선생님
마크로비오틱으로 조리한 중국음식. 전채부터 타피오카와 고구마를 사욯한 디저트까지.

 때때로 손가락으로 소스를 찍어 맛 좀 보면 어디가 어떤가. 가르쳐주시는 내용, 시연하신 음식의 맛은 절대 Bad Boy가 아니다. 기름을 가득 붓고 웍을 휘두르는 일 한번 없이, 만들어내신 중국음식들. 찌듯 익히는 마크로비오틱 특유의 조리로 만들어 내었지만 재료가 가진 식감, 수분감은 중국음식답게 살아있다. 전채에 밥, 메인요리까지 곁들였지만 뱃속이 편안한 중국음식. 이런 중국음식을 나의 수업, 나의 팝업식당에서도 내어보고 싶다.

기본 중의 기본. 우엉당근 조림을 기본식 레시피대로 만들어 본다.
자신의 체질에 맞춰 다양한 기본식 반찬들을 골라보는 시간.

 이렇게 응용식을 배우기도 하는가 하면, 사범에서도 기본으로 돌아와 기본식을 만들기도 했던 일요일 오후 수업. 현미밥, 된장국, 몇가지 기본 밑반찬같은 기본식단에 들어가는 메뉴를 만들고, 본인의 체질과 컨디션에 맞춰 식단을 구성하고 설명하는 수업이었다.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 나의 쿠킹클래스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 사범에 와서도 채수를 낼줄 모르거나, 우엉당근조림과 같은 기본적인 메뉴를 만들 줄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수강생이 속출하는 상황. 이러한 상황속에, 한국에서 쿠킹클래스를 진행하며 리마에서 배운 기본 중의 기본들을 수업에서 가르쳤기에 이 날의 에이스로 등극하는 명예를 얻었다. 한편,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런 기본적인 내용에 관심을 갖고 수업해 참석해 주었으며,  이런 내용에 공감해주었던 수강생들에게 다시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드 스케줄로 인해 몸이 지치고 목이 칼칼해 오는 것이 신경쓰여 연근이 들어간 메뉴를 골라보았다.

 이틀 연달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수업. 아침부터 저녁까지 요리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지치는 일. 이 강행군을 어떻게 3주동안 이어갔던 것인지...8월에 3주간 집중강좌를 들었던 나의 파워에 새삼 놀랐다… 도쿄의 친구들과 상큼한 생사케를 곁들이며 수업의 피로를 풀었다.

고기를 안먹는 나를 위해 가게에서 바꿔서 준비해준 기본안주. 일본 유채로 만든 겨자향 나물. 뿌리부터 줄기까지 튀긴 마늘까지. 이른 봄을 느끼게 하는 메뉴들

 설 연휴. 구정에 쉬지 않고 신정에 쉬는 일본에서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기에, 설마 올해에도 설에 일본에 있어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설 당일에는 모국에 있을 예정. 대학시절, 회사생활을 함께 지낸 친구들과 함께 도쿄에서 보내는 좋지만, 가족이 있는 집에서 따뜻한 떡국과 우엉잡채를 먹는 서울의 집이 벌써부터 그립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마크로비오틱 푸드 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매거진의 이전글 소금과 마크로비오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