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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Mar 07. 2019

서울보다 조금은 이른, 도쿄의 봄

계절에 변화에 따라 바뀌는 식탁과 그에 따른 마크로비오틱 섭생

 매달초, 도쿄에 마크로비오틱 수업을 들으러 다녀온다. 3월에도 어김없이 짐을 챙겨 도쿄로 떠났다. 밤비행기로 이동한 탓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보니 밤 11시를 넘긴 시간이 되어 있었다.

수업에는 가벼운 미소죽이 곁들여졌다.

 오랜만에 사쿠라자와 유키카즈 연구실장을 하고 계신 타카쿠와 선생님의 이론수업. 초급수업을 수강할 때부터 타카쿠와 선생님의 이론수업이 시작되어, 나는 이 이론수업의 1기 수강생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 수업은 그 이론 수업의 집대성과도 같은 수업. 많은 현상을 마크로비오틱의 음과 양으로 이해하고,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각자 마크로비오틱을 베이스로 생각해보는 철학수업과도 같은 시간. 정답이 정해진 문제를 풀고 열심히 해답을 보고 답을 맞추는 것에 익숙하던 우리에게는 어렵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연습은 어른이 될수록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을까. 요리교실의 수업을 들으러 왔지만, 인생에 대해서까지 생각해 보았다.

수업을 마친 뒤, 근처 카페에서 저녁식사. 학교 근처에 비건음식점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 이곳, 알래스카 츠바이는 매일 메뉴가 바뀌는 비건 플레이트를 내고, 그 밖에도 다양한 비건메뉴가 있다. 매주 메뉴를 바꾸며 직접 팝업식당을 운영해 보니 이곳의 대단함을 새삼 실감한다. 이 재료관리는 어떻게 할 것이며 이 설거지는 어떻게 다 할 것인가. 다양한 그릇이 필요할텐데 이 그릇은 모두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것인가. 메뉴구상도 보통일이 아닐텐데. 심지어 다른 메뉴까지 있으니! 오랜만에 일명 ‘업자’가 되어 이 곳을 방문하니 매장내 요소 한가지 한가지에 눈이 간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며, 경의를 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보니 주방구석구석에서 효율적인 오페레이션과 수납을 엿볼수 있다.

 둘째날 수업은 참신한 레시피와 예쁜 플레이팅으로 늘 인기인 히야마 선생님의 수업이 두번이나 있었다. 첫수업은 마크로비오틱의 대표반찬 중 한가지인 우엉당근조림을 활용한 레시피. 올 가을, 겨울. 나도 참 많이 해먹었다. 이 우엉당근조림을 베이스로 생선없는 어묵, 유부주머니, 알싸한 향의 볶음요리까지 만들었다. 몇일 연달아 우엉당근조림을 내다보면, ‘슬슬 매콤한 것이 당긴다’며 반찬투정을 하던 우리 가족에게도 새로운 즐거움이 생길 듯하다.

 오후 수업은 봄철 기념일을 위한 요리. 화려한 색의 주먹밥을 만들고 소금에 절인 벚꽃잎을 각종 요리에 사용하니, 한달 쯤 뒤 다가올 도쿄의 벚꽃시즌이 실감난다. 유난히 빚고 마는 등 할일이 많았던 이번 수업. 함께 경단을 빚고, 춘권을 말며 이야기 꽃이 피기도 했다.

 수업이 있던 날은 3월 3일, 일본에서는 ‘히나마츠리’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를 위한 날. 우연히 수강생 전원이 여자이기도 해, 우리를 위한 날이라 즐거워 하기도 했다. 세상이 일반적으로 여자에게 기대하는 바와 조금은 다른 성격과 삶을 살고 있지만, 나는 이 여자아이의 날에 태어났다. 일본에 살다가 10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마크로비오틱 수업을 듣기 위해 한국을 오가며, 여전히 엄마 생일, 설, 내 생일을 일본에서 보냈다. 조금 아쉬울 뻔 했지만, 마치 내 생일을 축하받기라도 하는 듯 화려한 음식을 만들었다. 수업을 마친 뒤에는 도쿄의 오랜 지인들이 생일 저녁을 함께 보내주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생일인데 데이트도 안하고 집에 눌러앉아 있는 것이 눈치가 보였을테니, 오히려 훨씬 알차고 마음 편한 생일을 보낸 듯도 하다.

죽순밥과 두부소스에 버무린 유채

 유난히 제철에 민감한 일본의 소비자들. 음식점 메뉴들도 봄옷으로 갈아 입었다. 어느덧 죽순 밥이 나오고, 유채를 사용한 요리도 많이들 보인다. 두릅, 땅두릅, 머위 봉오리등 봄채소 텐푸라도 이 계절 이자카야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메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런 채소들은 조금은 더 기다려야 하는 것들. 도쿄에서 서울보다 조금은 이른 봄을 만끽했다.

쇼고인 다이콘과 쇼고인 카부. 무의 일종.
산수유와도 같은 마이크로 토마토

 동네슈퍼에 가보니 이 곳에도 봄이 완연하다. 오랜만에 방문한 봄철 일본의 슈퍼에서 채소를 탐방하느라 시간이 가는줄 몰랐다. 봉오리와 꽃을 먹는 채소가 많이 나온 것을 보니 확연히 이곳의 봄은 서울보다 이르다. 햇양파까지 보았다. 뿌리는 짧고 주로 줄기를 먹는 품종의 우엉까지 나와있다. 뿌리를 주로 먹던 가을, 겨울과는 달리, 조금은 음의 성질이 더해진 줄기를 이 시기에 먹는 것은 마크로비오틱에 따른 섭생. 그 밖에 교토야채를 대표하는 쇼고인 카부, 쇼고인 다이콘이나 산수유를 떠올리는 마이크로 토마토 등. 동네슈퍼를 방문했을 뿐이데 제대로 재료 탐방을 하고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참 뒤에나 볼 머위 봉오리와 햇양파

 조금 길었던 이번 도쿄 일정. 중급 수업을 한번 더 듣기 위해서였다. 공부하고 연구할수록 마크로비오틱은 기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 이미 사범과 수업을 듣고 있고 한국에서는 쿠킹클래스까지 하고 있지만, 초급, 또는 중급 수업은 스케줄이 맞는다면 꼭 더 듣고 오려한다. 특히 이번 중급 수업에서는 기본중의 기본인 연근톳조림을 배운다니, 이 연근 톳조림에 대해 모아둔 질문을 쏟아내기 위해 수업을 한번 더 듣기로 했다.

 현미밥과 미소국, 뿌리채소조림과 연근 톳조림. 디저트를 곁들여지만 소박하디 소박한 시골만주. 미소국은 심지어 무, 당근, 파와 같은 기본 재료만으로 만든 것. 중급의 메뉴는 늘 이렇게 간소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중급의 식사가 가장 편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신체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식사.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요즘. 안 먹어서 몸에 힘이 없는 때 보다는, 전날 과식을 해서, 또는 외식이 잦고 화려한 음식을 너무 자주 먹어서 지치는 때가 더 많다. 실제로 몸이 무거워지기도 하고 너무 먹은 것을 소화하고 걸러내느라 내장도 지친다. 도쿄에서 외식이 잦았던터라 알게모르게 지쳐있던 내 몸. 고급호텔 마사지로 여정을 마무리짓는 동남아 여행처럼,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는 마크로비오틱 기본식으로 이번 도쿄 여정을 마무리지었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마크로비오틱 푸드 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매거진의 이전글 봄. 그리고 도쿄의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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