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고3때, 그날 따라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장마철. 신발은 물론이거니와 양말까지 젖었다. 교복치마를 길게 입던게 유행하던 시절, 긴 교복치마도 다 젖었고, 하는 수 없이 체육복으로 갈아 입었다.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공부를 시작하려고 갔건만, 장마 때문에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근데 더 억울한건, 내가 등교하는 시간에만 비가 내렸던 것. 친구들은 하나같이 멀쩡한 모습으로 등교했고, 머리도 살짝 젖어 있고, 젖어 있는 옷을 말리고 있는 내가 오히려 이상하게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장마’라고 하면, 양말까지 젖고, 눈 앞이 비로 흐려지고, 우산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정도의 비가 내렸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다. 양말 신고 단화를 신어도 될 정도의 비가 내린다. ‘장마’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저 비 오는 날로 칭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 옷도 젖고, 머리도 부스스해지고, 출근하는 날이면 버스도 엄청 막히고, 지하철에서는 남의 우산에 종아리 테러를 당하기도 하기 때문에. 근데 요즘엔 시원하게 쏴아아 비가 한바탕 내렸으면 좋겠다. 장마가 장마다웠으면 좋겠다. 그게 뭐든, 그것을 누군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그것다웠으면 좋겠다. 나도 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