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상상을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다. 수업 시간이나 밥을 먹다가도 곧잘 딴생각에 빠졌고, 잠에 들기전까지 상상을 하곤 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으니 가끔은 현실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몰두했다.
어떤 소재 하나가 떠오르면 덩치가 커질 때까지 이리저리 굴리고 다듬었다. 배경과 등장인물, 상황까지 나만의 세상을 구체적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몇 년을 혼자 놀았으니 그림 창작도 수월할 줄 알았다. 아이디어는 늘 넘쳐났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상상을 끄집어내어 창작물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미술 학원에서 처음 창작하는 법을 배우던 날. 그 막막했던 기분이 떠오른다. 나만의 생각을 표현해 도화지로 꺼내는 연습이 필요했다. 거친 아이디어가 종이 위에 표현되기까지의 과정은 꽤 험난하고 길었다. 조금씩 연습을 거쳐 결과물이 나올 때마다 새로웠다. 잘 나올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것도 분명 있다. 점점 나만의 표현 방법을 익혀나갔다.
이제는 능숙해졌을까? 그렇다. 상상 속에 일들을 글이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데 조금은 익숙해졌다. 능숙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내 생각을 표현할 수는 있게 됐다.
반대로 상상하는 게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든 만큼 표현의 스킬은 늘었지만 어릴 적 넘치던 상상력은 어째 줄어든 느낌이다.요즘은 예전처럼 상상을 많이 하지 않는다. 이제는 공상보다 현실에서 살아야 할 때가 더 많은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상상은 여전히 즐겁고 짜릿하다. 그 순수한 마음만큼은 사라지지 않도록 잘 돌봐서 언제든 꺼내어 보고 싶은 마음이다.